‘유병언 변사체’를 발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는 경찰의 공식 발표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는 보도가 뒤따르고 있다. 타살의혹은 애교이며, <연합뉴스>는 심지어 경찰 내부 반응을 따와 변사체가 유병언 전 청해진해운 회장 본인이 맞는지도 의심이 간다는 보도를 하고 있다.

물론 이 사건의 전말에 대해선 미심쩍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언론과 네티즌들로부터 제기된 수많은 것들 중 핵심적인 것만 추려 봐도 의혹은 차고 넘친다.
‘유병언 미스터리’… 끝없는 의혹들
첫째, 지난 5월 25일 순천 송치재에서 달아난 것으로 알려진 유씨가 17일만에 백골 상태의 변사체로 발견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이 있다.
둘째, 위 의혹을 억지로 이해해서 5월 25일 직후 사망했고 날씨가 매우 더워서 부패가 빨리 진행했다 친다면, 10여일 넘게 매실밭에서 주인에게 발견되지 않은 상태로 시신이 부패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의문이 제기된다. 이로부터 시신이 발견된 매실밭은 사망한 장소가 아니라 유기된 장소일 거라는 타살설이 정황적으로 제기될 수 있다.
▲ 유병언 전 세모그룹회장으로 추정되는 변사체가 발견된 가운데 우형호 전남 순천경찰서장이 22일 오전 순천경찰서에서 유 전 회장 추정 변사체와 관련한 수사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우 서장은 이날 변사체의 지문이 유 전회장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셋째, 수많은 경찰인원의 수색이 있었던 순천에서, 변사체가 발견되었을 때 그 시체가 유병언 전 회장이란 의심을 하고 유류품을 수색하지 않았을 거란 예측이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넷째, 위 의혹을 억지로 이해해서 시체가 유병언 전 회장처럼 보이지 않았을 것이라 친다면, 정말로 이 시체가 유병언 전 회장의 것이 맞냐는 새로운 의혹을 제기할 수 있다. 신고자와 경찰은 모두 이 시신을 노숙자의 것으로 인지했다. 유벙언 전 회장의 인상착의와도 다르다고 보았다. 구원파 신도들 역시 유 전 회장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서 부인하고 있다.
다섯째, 유병언 전 회장이 알려진 것과 달리 혼자서 도주하다가 죽어있는 상황이 수상쩍다. 만일 유병언 전 회장이 맞다면 그의 주변에 있다는 자금과 측근들의 행방은 어찌된 것인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로부터 구원파 신도들에 의한 타살설이 정황적으로 제기될 수 있다.
여섯째, 첫 부검 때는 지문이 확보되지 않았던 시신에서 갑자기 지문이 확보되었다는 것 역시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시체의 신원은 확실할 것… 사인은 알기 어려워”
그러나 황당한 일도 터져 나올 수 있는 것이 인간세상이다. 애초 세월호 참사 자체가 황당의 극치이지 않았던가. 애꿎은 것은 경찰이 이 의혹들에 해명하려 하면 할수록 자신들의 무능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라는 점이다.
복수의 기자들은 발견된 변사체가 유병언 전 회장일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의심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한 기자는 “국과수 조사 결과를 조작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그 기자는 “(DNA 검사를) 모계와 직계를 다 맞춰본 것으로 안다. 이쯤되면 100%라고 봐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 기자는 “사태는 지극히 단순하다. 검경이 엄청나게 무능한 것이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문제는 본인인 게 확실하다 해도 사인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각종 음모론이 창궐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데에 있다. 음모론에는 지금껏 검찰에서 흘러나와 언론이 덧붙인 각종 요소들이 동원된다. 이를테면 20억원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병언일 가능성이 희박하다든가 구원파 사람들이 20억원을 가져가고 그를 살해했을 거라는 추측 같은 것들이 그렇다.
어쩌면 그간 검찰이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그리고 언론이 조회수 장사를 위해 써제낀 ‘소설’들이 ‘유병언 검거 실패’라는 파국을 맞아 음모론으로 되돌아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기자는 “20억원도 정확히 확인된 것이 아니고, ‘신엄마’니 ‘김엄마’니 밀항도 마찬가지다. 망명설이나 체코 대사관 망명 타진설 등 수많은 루머가 언론보도를 통해 양산되었다. 사실상 언론이 쓴 ‘소설’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소설을 구성했던 요소들이 해명해야 할 ‘빚’이 되어 국가기관의 신뢰를 훼손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은 그러기나 말기나 이 새로운 상황에 맞춰 또 다시 신나게 ‘소설’을 써제끼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기자들은 유병언 전 회장의 죽음을 국가권력이 기획했다는 음모론에는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왜냐하면 유병언 전 회장의 죽음으로 박근혜 정부의 입장이 대단히 난처해졌기 때문이다. 한 기자는 “자살이든 타살이든 이건 박근혜 정부 입장에서 최악의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유는 유병언 전 회장의 죽음으로 사실상 검찰 수사가 종결됐고 구상권 청구도 할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 22일 오전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실린 앰뷸런스가 들어간 서울 양천구 신월동 서울과학수사연구소 앞에서 경찰들이 경계를 서고 있다. (연합뉴스)
유병언이 살인자? 정권과 검찰의 부적절한 공모
돌이켜보면, 유병언 전 회장에 대한 ‘소설’이 난무하는 상황은 우리의 국가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면피하는 것과 크나큰 관련이 있었다. 참사 며칠 후 박근혜 대통령은 이준석 선장 등 승무원을 “사실상 살인자와 같다”라고 비판했다. 이는 대통령이 검찰과 보수세력에게 제시한 ‘가이드라인’ 역할을 했다.
선장과 승무원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았던 시국에 ‘유병언’과 ‘구원파’가 등장했다. 진보언론이 해경과 언딘의 부적절한 대응이나 유착관계에 대한 보도를 쏟아낼 때 보수언론은 오대양 사건과 구원파와 청해진해운과 유병언을 말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규탄하는 시위로 물의를 일으켰던 엄마부대 봉사단의 ‘막말’에 등장했던 것도 ‘유병언’이었다. 유병언 전 회장의 재산이 3조가 된다면서, 그 재산으로 보상받으면 된다는 논리였다.
이들은 유가족들이 과도한 ‘보상’을 받으려 한다고 질타한다면서 그 ‘보상’을 유병언 전 회장으로부터 받으라는 식의 해괴한 논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보상’보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에 관련된 세월호 특별법을 지지하는 이들에게만 해괴할 것이다. 애초 이들이 비판하는 것은 ‘과도한 보상’이 아니라 ‘국가로부터의 보상’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병언 전 회장이 사망함으로써 정권과 검찰의 노림수는 어긋났다. 검찰은 유병언 전 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조세 포탈 등의 혐의로 수사 중이었다. 특히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는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를 적용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유병언 전 회장에 대한 구상권이 집행되기 위해선 그를 법정에 세워 책임 관계를 명확하게 입증해야 한다. 사망자에 대한 통상적인 대응인 ‘공소권 없음’ 처분이 내려지면 세월호 침몰사고에 대한 직·간접적인 책임은 모두 물을 수 없게 된다. 형사상 구상권 청구는 불가능해지고 남은 것은 민사상으로 약간의 추징을 하는 길 뿐이다.
▲ 유병언 전 세모그룹회장의 시신이 전남 순천에서 발견한 가운데 유씨가 도피 중에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메모를 검찰이 확보해 법원 증거물로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메모에는 도피 당시 심경, 검찰 수사와 언론 보도에 대한 반감 등이 담겼다.2014.7.22 << 시사IN 제공 >> (연합뉴스)
‘유병언 미스터리’를 넘어서야
애초에 유병언 전 회장에게 과실치사상죄를 적용하려는 수사 방침이 무리한 것이 아니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기자는 “유병언이 세월호 참사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면 이건희는 삼성 반도체공장 노동자들의 죽음에, 이우일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을 것이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특정한 사건에 대해서만 법논리가 어그러지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 기자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말하는 기업살인법 같은 것에 대한 공감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행법와 관례를 볼 때 검찰은 여론을 의식해 무리하게 수사하고 법원이 무죄를 선고할 경우 국민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라고 반발하는 식의 ‘쇼’를 생각할 작정이었다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에 대해선 다른 의견도 있었다. 다른 기자는 “법리적으로는 무리한 의견이라는 많지만, 막상 기소해서 재판을 가져가면 법원도 무죄를 때리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그 기자는 “아마도 검찰은 직접적 지시관계, 그러니까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을 무리한 선박 증축으로 볼 때, 그것을 지시한 사람이 유병언이었단 식의 논리를 구성하려고 했을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주어진 정황들을 조합해 보건대 그건 유병언 전 회장에 대한 정부와 검찰과 언론과 보수적 유권자들의 관심은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국가적 적폐, 국가권력의 책임을 은폐하는 기능을 했음이 분명하다. 차제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도 ‘유병언 미스터리’에 대한 음모론적 해석이 아니라 참사의 명확한 진상규명과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제도의 확립이다. 참사에 대해 기업가의 책임을 물어야 할 수 있지만, 그것 역시 책임을 묻기 위한 관련 제도를 개혁하는 국가의 역할이란 측면에서 고민해야 할 것이다.
처음부터 유병언 수사의 양상이 마음에 안 들었다는 한 기자는 “검찰의 ‘쇼’를 보며 기소독점주의의 폐해를 느끼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 기자는 “검찰은 지금도 ‘경찰의 무능’으로 사태를 마무리할 궁리를 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전망했다. 마침 박근혜 정부도 순천 경찰서장을 직위해제하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으니, 정권과 검찰의 부적절한 공모는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 경찰이 '세월호 실소유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됐다고 발표한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청 민원실 입구에 유 전 회장과 아들 대균 씨의 수배전단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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