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길환영 퇴진’과 ‘KBS 정상화’를 내걸고 파업을 벌였던 노동자들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1달 넘게 사장 공백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조대현 KBS 사장 내정자와의 교감 아래 진행된 것인지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 길환영 사장이 KBS이사회로부터 해임 제청되던 지난달 5일, KBS 양대 노조가 KBS 신관 IBC 계단에서 집회를 열어 'KBS는 국민의 방송이다' 손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지난 5월 벌어진 KBS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지난 18일 KBS로부터 징계 회부 통보를 받았다. KBS노동조합(위원장 백용규, 이하 KBS노조) 노조원 13명,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권오훈, 이하 새 노조) 노조원 21명, 비노조원 11명 등 총 45명에 이르는 규모다.

새 노조 소속이 21명으로 가장 많은데, 구체적인 이유는 △노조의 불법 관련(7명) △협회 제작거부 관련(6명) △사장 출근저지 과정의 불법 행위 관련(9명) △보직사퇴 의사표시 후 직무 미수행(3명) 등이다.

새 노조는 21일 성명을 내어 “부당 징계 선전포고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경고했다. 새 노조는 “류현순 사장 직무대행, 전홍구 부사장, 김대회 인적자원실장, 김윤로 노사협력주간, 안희국 법무실장 등은 길환영 사장과 함께 KBS를 떠나야 할 사람들”이라며 “차기 사장이 오기 전에 대규모 징계로 얻으려는 것은 무엇인가. 조대현 사장 제청자에 대한 충성맹세인가, 청와대에 대한 구애인가”라고 물었다.

새 노조는 “기자협회와 PD협회의 제작거부에 이은 양대 노조의 8일간 파업 투쟁은 최고의결기구인 KBS이사회의 길환영 사장 해임 결정으로 이미 정당성을 확보했다”며 “길 사장의 부역자들이 할 일은 길 사장이 재임기간 보도, 제작에 간섭한 사실을 먼저 규명하는 것이지 대규모 징계로 공정방송 투쟁에 재를 뿌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새 노조는 조대현 내정자에게도 “당신이 사장 제청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길환영 사장이 퇴진했기 때문”이라며 “만일 이번 징계회부에 관여했다면 노동조합을 짓밟고 사장이 되겠다는 선전포고로 간주하고 ‘제2의 길환영’과 전면전을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새 노조 관계자는 “징계를 예상 못한 것은 아니지만 왜 지금 시점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내부에서는 조대현 내정자가 사전에 메시지를 보냈거나, 이길영 이사장-전홍구 부사장 체제로 연결돼 있는 구 체제 사람들이 주도했거나 둘 중 하나인 것으로 보고 있다”며 “회사는 진술서 제출 요구만 한 상태다. (징계 결정 시기는) 아마 사장 취임 이후가 아닐까”라고 말했다. 새 사장 취임 후 인사위 회부가 번복될 가능성이 있는지 묻자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답했다.

KBS노조 “사측의 ‘불법파업’ 논리 근거 부족… 징계 시도 원천무효”

KBS노조도 21일 “무슨 권한으로 징계 운운하는가”라는 성명을 내어 사측의 징계 시도를 비판했다.

KBS노조는 “청와대 하수인을 자처한 길환영이 물러났고 이제 신임 사장이 대통령 승인절차를 기다리고 있는 이 시점에서 징계를 내리겠다고 하니 대체 누구의 지시인가? 그리고 대체 누가 무슨 권한으로 징계를 운운한단 말인가”라며 “이는 사측의 징계가 명백한 노조 탄압이자 길들이기 시도이며, 관련된 모든 사측의 모든 행위를 원천 무효라 규정한다”고 말했다.

KBS노조는 △공정방송 쟁취도 파업의 정당한 목적이 될 수 있다는 MBC 사례가 있는 점 △징계 대상자를 결정한 기준과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점 △류현순 사장 직무대행 혹은 조대현 내정자 모두 징계에 대한 권한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징계의 부당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류현순 직대가 징계회부를 결정했다면 충성맹세도 이런 충성맹세가 없다. 조대현 사장 후보가 지시를 내린 것이라면 더더욱 무효”라며 “징계 회부는 오히려 노조와 직원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KBS노조는 조대현 내정자가 KBS에 한 발짝도 들여 놓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KBS노조 관계자는 “길환영 사장은 청와대의 오더를 받았기 때문에 (사장 자리에서) 내려간 상황이었는데 그 사유로 징계를 한다는 것은 내용상으로 맞지 않다. 또 파업의 주체, 목적, 절차 등에서도 문제가 없다. 어디를 봐서 불법파업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KBS노조는 법률 자문을 받아, 법리상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 조대현 KBS 사장 내정자 (사진=KBS)
양대 노조가 지적했듯, 이번 징계 시도는 ‘누가’ 추진하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류현순 사장 직무대행이나 전홍구 부사장의 경우도 신임 사장이 들어서면 ‘물러날’ 이들이기에 현재 징계를 주도하는 것이 시기나 역할 상 적절하지 않고, 조대현 내정자의 경우 아직 재가를 기다리고 있는 대기 상태라 사장의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길환영 체제의 임원들이 조대현 내정자와의 교감 없이 KBS 노동자들을 징계하려고 한다면 구 체제의 ‘분풀이성 징계’로 비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조대현 내정자 역시 징계를 결정한다면 KBS이사회가 길환영 사장을 해임 제청하고, 대통령이 이를 재가해 사실상 KBS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해 준 바를 거스르는 것이기에 문제가 간단치 않다.

한편 조대현 내정자의 임명은 22일 오후 현재,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KBS이사회의 사장 임명 제청 후 정식 임명되기까지 2008년 이병순 사장은 하루, 2009년 김인규 사장은 4일, 2012년 길환영 사장은 14일의 시간이 소요됐다. 지난 9일 KBS이사회에서 임명 제청된 조대현 내정자는 내일(23일)로 14일째를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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