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로 죽은 자식 없으면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한 돈 10억 씩은 지금 받는다는거 아냐. 그래놓고 연고대를 보내겠다, 동생까지 대학 특혜를 달라는 거 아냐. 지금.”
“세상이 어떻게 되느라고 이러는지 몰라. 그거 책임을 왜 박근혜가 져. 유병언이가 져야지.”

대화는 격렬했다. 슈퍼마켓의 두 노인은 종편 채널을 틀어놓고 세상을 통째 저주하고 있었다. 객으로 보이는 노인은 앞섬을 풀어헤친 채 누구한테 들었을지 모를 아니 누가 말했건 상관없이 지금껏 살아온 경험을 버무려 만들어낸 자신의 세계를 시뻘겋게 늘어놓고 있었다. 그 울분을 주인 노인은 유병언이라는 또 다른 노인을 향한 저주로 맞상대하고 있었다.

사실의 아닌 것들의 적극적인 사실화. 그들이 보고 있는 종편 채널에선 세월호 특별법을 토론하고 있었다. 짧은 시간 봤지만 패널들의 주장은 여의도를 파국으로 몰고 간 활자들과 단단한 관련은 없어 보였다. 그들이 논하는 정국에서 정부의 책임은 자유로워 보였고, 파국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는 드러나지 않았다. 그들은 자유롭게 떠들고 있었지만 대단히 부자유스런 책임만 강변하고 있었다. 늘 그렇듯 정해진 궤도를 따라 예정된 결론으로 치닫는 이제는 익숙해진 그 ‘그러려니’가 문득 두려웠다. 한 변사체가 유병언으로 특정되기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이었다.

▲ TV조선을 위시로 한 종편 채널들의 지난 40여일은 온통 유병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병언은 악마였고, 이미 살인마였다. 그가 죽음으로 떠올랐다. 묻고 싶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의 무엇이 달라졌는가. (TV조선 화면 캡처)

그 변사체는 지난 달 12일 오전 9시 6분께 발견됐다고 한다. 경찰이 진즉부터 주목했던 순천의 한 개인 소유 매실 밭이었다. 그 변사체는 벌써 40여일 전에 경찰에 인지됐다. 다만, 경찰은 그 죽음을 누군지 알 수 없는 혹은 시급히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초라한 행색의 죽음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뜻밖의 범죄로 인해 죽었을지 모르는 시체를 사법용어는 건조하게 변사체라고 부른다. 알 수 없는 죽음. 확인되지 않는 시체.

그 변사체가 정말 유병언이 맞느냐는 의구심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그 전에 한 가지만 따져 묻자. 6월 12일이라면 종합편성채널들이 세상을 그야말로 온통 유병언이라는 ‘염천지옥’으로 물들이고 있을 때다. 많은 이들은 분명 봤지만 어떤 이들이 대체로 외면했던 탓에 이제는 뭉텅이로만 남아있는 무수한 프로그램들에서 유병언은 악마였고, 이미 살인마였다. ‘엄마’로 불리는 이들이 악마를 수호하는 망령으로 호명됐던 때고, 언론은 이름까지도 희화화하며 금수원에 땅굴 탐지기를 넣네, 음파 탐지기를 투입하네, 헬기를 수십 대 올렸네 내렸네 호들갑을 떨던 때였다.

실종자 수색은 나흘째 진척이 없이 12명에 멈춰 있었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사람들은 서서히 그러나 의식적으로 세월호 참사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고, 그 이격된 틈을 놓칠 리 없는 정치권이 지루한 공방을 시작했던 무렵이기도 하다. 진도에 국정조사 특위 상황실 설치가 지연된 날이었고, 팽목항에 내려간 수사관들은 낮잠을 자다 물의를 빚었던 날이었다. 수색에 투입된 민간 잠수부와 해경 간에 갈등이 있음이 폭로된 날이었다.

종편은 그 바다에 이제 누가 있건 없건, 유병언만 잡으면 될 것 같다고 떠들었다. 이 모든 부조리를,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처연함을 그들은 모조리 그냥 유병언이라고 불렀다. 그게 본질이 아니라는 목소리는 ‘세월호를 잊지말자’로 뭉쳐 번안됐고, ‘그렇다면, 유병언을 못 잡아도 된다는 것이냐’에 묻혔다. 인사 참사에 연달아 급소를 맞던 정권은 유병언을 향한 종편의 격전을 격렬하게 방관했다.

그 때 이미 유병언은 죽어있었다. 경찰의 설명이 맞다면, 6월 12일 이후 박근혜 정부의 공권력과 어떤 언론들이 했던 행위는 그야말로 ‘개수작’이었던 셈이다. 최고치의 현상금을 내걸고 사상 최대 규모의 수색을 한다고 했지만 유병언을 급습했던 현장에서 채 2.5km 범위를 감당하지 못했던 셈이고 그 현장에서 의문의 변사체를 발견하고도 인지할 감각조차 없는 흉내내기였다. 수백 개의 핸드폰으로 통신을 교란하며 각종 변장과 여성 편력 그리고 흡사 영화 007 제임스본드 급으로 묘사되던 유병언의 도피 행각 역시 정작 소주병 2개와 벙거지 모자로 버텨낸 개발자국의 시늉이었다.

▲ 언론은 유병언의 죽음을 두고 '세월호의 정점'이 죽었다는 식의 표현을 쓰고 있다. 과연, 그런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세월호 가족대책위 농성단은 유병언의 죽음이 알려진 22일 국회 본청 앞에서 참사 100일을 앞두고 안산분향소에서 서울광장까지 도보행진 계획을 밝히고 있다.ⓒ연합뉴스

언론은 유병언의 죽음을 향해 ‘책임의 정점’이란 수사를 보태고 있다. 과연, 그런가? 유병언이 잡혔는데 그렇다면 이 슬픔은 왜 해체되지 않고 응어리들은 어찌해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가. 유병언의 죽음 앞에 어찌해 종편들은 또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겠다, 없겠다 따위의 계산을 늘어놓고 있는 것인가. 지금, 금수(禽獸)는 누구인가.

종편이 만든 세상, 종편이 구축했던 세계에서 우리는 모두 유병언의 포로였다. 그 희대의 악은 믿기지 않는 죽음으로 세상에 떠올랐는데 정작 세월호 참사의 형국은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자식 이름을 목 놓아 부르는 것 외엔 달리 해본 게 없다는 절망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저 부모란 이름의 슬픔들은 급기야 굶고, 걷고 또 걷다가 농성장이 걷어차여도 끝내 주섬주섬 자리를 지키는 것 외엔 더 할 도리가 없는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병언이 죽었단다. 다시 묻는다. 이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누가 져야 하는가. 딱 한 사람 바로 그 사람밖엔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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