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안산 단원고 학생들 40여 명이 학교에서 국회까지 걸어왔다. 15일 학교에서 출발해 광명에서 하룻밤을 지냈고, 16일 광명에서 국회로 향했다. 이틀 동안 47㎞를 걷는 강행군이었다. 단원고 학생 둘이 구급차에 몸을 실을 정도였다. 그러나 ‘성역 없는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이 행렬은 국회에 가까워질수록 늘었다. 낮 3시20분께 국회 정문 앞에는 300여 명이 모였다. 14일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한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들이 학생들을 맞았다.

▲ 16일 오전 광명 시내 행진 모습. (사진=미디어스)
▲ 16일 낮 삼성전자서비스 간접고용노동자들은 단원고 학생들의 행진을 격려했다. (사진=미디어스)

시민들은 마중을 나왔다. “사랑해”라며 학생들을 독려하는 엄마들도 많았고, “잊지 않을게요”라며 박수를 치는 시민들도 많았다. 삼성전자서비스 AS기사들도, 광명시 의원들도, 국회로 가는 길에 있는 몇몇 학교 학생들은 손수 만든 피켓과 플래카드를 들고 학생들을 맞이했다. 학생들도 반갑게 인사했다. 환영받지 못한 사람들은 기자들뿐이었다. 1박2일 행진을 공식적으로 취재할 수 있었던 매체는 JTBC 뉴스타파 한겨레 오마이뉴스 단 4곳이었다. 카메라는 멀찍이 떨어져야 했다.

<동아일보> 취재차량은 차에 붙인 ‘동아일보’ 마크를 떼어낸 뒤 학생들을 따라갔다. 한 사진기자는 “10m마다 매체를 확인해 힘들었다”고 말했다. 15일 밤에는 학생들의 숙소 건물에 들어가려던 <시사IN> 취재차량이 가로막힌 일도 있었다. 동행취재를 하던 한 기자는 “기자들이야 억울할 수 있겠다”며 “그러나 언론은 그 동안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제대로 짚지 않고, 눈물 나는 스토리를 뽑아내려고만 경쟁했다. 학생들과 가족들이 언론을 못 믿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 16일 오전 11시20분께 MBC 취재진이 단원고 학생들의 행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 MBC 취재진은 단원고 학생이 항의한 뒤에 현장에서 밀려났다. (사진=미디어스)

MBC는 현장에서 쫓겨났다. 16일 오전 11시20분께 광명대교를 건너는 학생들을 촬영하던 MBC 카메라 기자는 현장에서 학생들 항의에 현장에서 밀려났다. 캠코더를 든 단원고 학생은 MBC 기자에게 “왜 촬영을 하는 거에요? 어떻게 쓰실 거에요?”라며 물었지만 MBC 취재진은 대답을 않고 등을 돌렸다. 이후 MBC 취재진은 현장에서 떨어져 학생들을 촬영해야 했다. 같은 질문을 받은 CBS노컷뉴스 기자는 “이 행진을 꼭 기록해 보도하고 싶다”고 말하며 자리를 지켰다.

국회까지 같은 모습이었다. JTBC와 오마이TV는 선두에 서서 행진을 촬영했다. 일부 기자들은 동행취재를 했지만 대다수 기자들은 ‘동행’하지 못했다. 앞뒤를 오가며 조용히 메모하고 셔터를 눌렀다. 한 기자는 “항의를 받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언론은 학생들이 국회 정문에 도착했을 때 ‘안전거리’를 깼다. 적어도 100여 명에 가까워 보이는 기자들은 카메라로 학생들을 둘러쌌다. 가족대책위 관계자의 간곡한 부탁에도 기자와 학생의 거리는 좁혀졌다.

▲ 16일 오후 3시20분께 국회 정문 앞에 도착한 단원고 학생들. (사진=미디어스)
▲ 16일 오후 3시20분께 국회 앞에 단원고 학생들이 도착하자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학생들이 꽂은 깃발을 촬영하고 있는 기자들. (사진=미디어스)

언론은 그 동안 정부의 보도자료만 받아쓰기에 바빴고, 데스크는 눈물을 짜내는 이야기를 원했다. 1박2일 동행취재를 한 기자는 “마감시간이 없는 인터넷언론은 학생과 가족들에게 고민 없이 취재했고, 마감이 있는 신문과 방송은 시간에 쫓겨 무리하게 접근해 왔다”며 “세월호 참사는 이런 ‘눈물 나는 스토리’가 아니라 원인과 책임자를 제대로 찾아야 하는 문제인데 언론은 정반대였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지금 이 상황을 만든 것이 누군지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영방송사 기자들이 세월호 보도를 사과할 정도로 언론은 망가졌다. 국회는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한 조사위원회’의 추천비율 문제와 수사권 부여 문제를 놓고 다투고 있지만 언론이 보기에 이건 ‘정쟁’이다. 청와대 책임을 묻는 언론은 손에 꼽을 정도다. ‘성역’을 만들고 있는 또 다른 주체는 언론이다. 이날 단원고 ‘생존’ 학생들은 함께 살아나오지 못한 친구의 이름과 “보고싶다”는 말을 적은 깃발을 국회에 꼽았다. 단원고 학생들은 언론이 눈물이 아니라 권력을 취재하길 바라고 있다.

▲ 16일 오전 행진 모습. (사진=미디어스)
▲ 16일 행진 도중 한 학생이 응급차에 올라타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 16일 오전 광명시의회 의원들이 단원고 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해 나왔다. (사진=미디어스)
▲ JTBC 취재진은 16일 행진 내내 선두에 있었다. (사진=미디어스)
▲ 행진을 취재하는 기자들의 모습. (사진=미디어스)
▲ 16일 단원고 학생들의 행진 모습. (사진=미디어스)
▲ 서울 사람사랑학교 학생들의 손피켓. (사진=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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