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이스라엘이 매일매일의 공습에 더해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했지만 다시 철수한 모양이다. 그러나 여전히 중무장한 채로 대규모 병력을 유지하며 가자-이스라엘 국경에 대기 중인 상태다. 한쪽으로 휴전을 얘기하면서 다른 쪽으로는 지상군을 투입했다 뺐다 하며, 이 침공을 계속하는 것도 중지하는 것도 모두 이스라엘의 선택에 달렸음을 모두에게 자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인명 피해가 대규모로 이어지면서 한국 언론들도 앞 다퉈 상황을 진단하고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라며 하마스와 이스라엘에게 이번 전쟁이 줄 득실을 따지고 있다. 그런데 어느 것 하나 팔레스타인, 특히 가자지구(Gaza Strip)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설명해 주지 못 하고 있다.
현 상황을 이해하려면 팔레스타인 지역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이스라엘은 1948년에 건국됐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건국된 땅의 이름은 원래 ‘팔레스타인’이었다. 이 원래의 팔레스타인은, 오늘날의 팔레스타인과 구분하기 위하여 ‘역사적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른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땅에는 원래 팔레스타인인들-다수의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유럽의 시오니스트 유대인들이 이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 국가’를 설립하겠다며 테러, 협상 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이용해 팔레스타인인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하고 추방해 절반가량의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을 건국하고 만다. 이 때 살아남은 많은 이들이 난민이 되었고, 이들 절대다수는 지금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이스라엘이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스라엘 건국 후에도 팔레스타인은 여전히 국가 설립 없이 가자지구와 서안지구가 각각 이집트와 요르단의 점령 하에 있었다. 주변 국가들과의 긴장 속에서 1967년 6월 3차 중동 전쟁을 벌인 이스라엘은 크게 승리해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점령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얘기를 하려면 최소한 1967년 점령 얘기부터 해줘야 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점령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점령은 의견이 갈릴 만한 평가의 문제가 아니고 ‘사실’의 문제이다. 이스라엘이 좋고 싫고를 떠나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여기서 말하는 팔레스타인은 점령과 함께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의 22%로 더 줄어든 팔레스타인이다. 지금은 그나마의 22%도 유지되지 못한 채, 섬처럼 조각나서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는 서로 맞닿은 곳이 없고, 그나마의 서안지구는 소위 ‘평화협정’이라는 것을 통해 갈갈이 조각나 60%이상이 이스라엘 군대의 통치를 받는 상황이지만 말이다.
이스라엘은 점령과 영토 확장을 통해 가자와 서안을 갈라놓은 뒤 양쪽에 다른 정책을 편다. 가자는 봉쇄하고, 서안에는 불법 ‘정착촌’을 만든다 ─ (불법 정착촌 문제는 ‘링크’를 참조 ) 봉쇄를 통해 이스라엘은 지금 이 순간까지 가자를 성공적으로 고립시키고 있다. 가자 봉쇄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항상 쓰는 카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하마스’다.
이스라엘의 대대적 가자 침공의 원인, 파타와 하마스 통합 막기 위해
팔레스타인의 대표적인 저항 세력이자 정치 세력인 하마스와 파타가 결별한 직후인 2007년 6월, 이스라엘은 테러 조직 하마스가 무기를 수입할 수 있는 루트를 막아 이스라엘로 로켓포를 쏘지 못하게 하겠다며 가자지구를 육해공으로 봉쇄한다. 하지만 가자에는 하마스 조직원들이나 지지자들만 사는 것도 아니고, 180만 명이 살고 있는 땅을 완전히 봉쇄해 일체의 물자 반입을 차단하는 것은, 제4차 제네바 협약이 금지하는 ‘집단 처벌’에 해당한다. 이스라엘은 간혹 이집트와의 국경을 열어주며 물자 반입이나 병원 치료가 급한 이들의 이동을 ‘허용’하며 봉쇄가 비인도적 조치가 아니라고 항변했는데 턱없이 부족한 그 허용마저도 몹시 불합리하게 이뤄졌다. 이스라엘이 반입을 금지하고 허용하는 데에는 특정 기준을 찾아볼 수 없는데, 예를 들어 어느 시기 참치캔은 허용하지만 과일 통조림은 안 되고, 커피는 되지만 초콜릿은 안 되는 식이었다.
여담으로 가자지구는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집트와도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이집트 역시 가자지구와의 국경을 봉쇄하고 매우 제한된 물자와 인원의 통행을 허가해 왔다. 가자를 고립시킨 책임은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함께 나눠져야 하며, 이 둘이 가자 봉쇄를 작당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미국이 있음을 지적해 둔다.
이에 세계적으로 가자 주민들에게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려는 시도 높아지는 가운데 침공 후에도 여전히 봉쇄 중인 가자지구에 의료품, 생필품, 건설자재 등 물자를 전달하기 위한 선박들이 조직되는데, 2010년에는 가자로 향하던 비무장 구호 선박을 이스라엘군이 공해상에서 공격해, 비무장한 국제 활동가 10명을 살해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런 문제들로 이스라엘은 유엔 인권위원회를 비롯해 국제사회로부터 수많은 규탄을 받지만, 안보리 의결마다 번번이 이스라엘 규탄 의제에 반대하며 항상 이스라엘을 비호해 준 미국을 등에 업고, 이스라엘은 2012년 11월에 또 가자 지구를 공습한다. 그리고는 지금 또 공습하고 지상전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중동의 화약고’ 따위가 아니다. 이스라엘이 1967년에 팔레스타인 전역을 점령하고, 점령군으로서 기능하기 때문에 이에 저항하는 이들이 생기고 하마스 등 무장 세력들이 생겨난 것이다. 인과적으로나 시간상으로나 이스라엘의 점령이 앞서는 것이다. 그런데 국내 언론들은 점령 얘기를 쏙 빼고 ‘분쟁’, ‘충돌’ 등의 중립을 가장한 단어들을 선택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문제의 원인을 짚는다며, 하마스가 떨어진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보복을 계속할 것이라는 둥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다. 이것이 단지 국내 언론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외신을 받아쓰기해와서인지, 점령 상태를 몰라서 그러는지, 아니면 알면서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다.
국내 언론, ‘점령’ 쏙빼고 ‘분쟁’, ‘충돌’로만 보도
요즘 국내 언론만이 문제가 아니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중립을 가장한 편향 보도로 BBC와 뉴욕 타임즈 등 거대 언론사들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언론을 통해 팔레스타인을 접할 수밖에 없는 개인들은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고 있고, 그 전쟁에서 아이언 돔이라는 성능 좋은 무기를 통해 이스라엘이 승리하고 있다는 잘못된 내러티브를 가질 위험이 크다. 언론이든 개인들이든, 모든 상황이 점령에서 비롯됨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단지 학살 중단을 넘어 이스라엘이 점령을 중단하고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철수하도록 만드는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