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자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1면 탑 기사에 양손을 들어올려 인사하는 김무성 새누리당 신임대표의 사진을 썼다. 흡사 비상을 꿈꾸는 몸짓과도 같았다.

‘비박’으로 분류되던 김무성 의원이 ‘친박’ 서청원 의원을 꺾고 새누리당 대표가 된 상황에 대한 신문들의 기대는 한결 같았다.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도 않았다. <조선일보> 1면 기사 제목은 <박근혜黨 벗어나는 새누리黨>, 관련 사설 제목은 <김무성 새 대표, '새누리 혁신 마지막 기회' 각오 가져야>였다. <중앙일보>는 1면 기사 제목으로 <김무성 “청와대에 할 말은 하겠다”, 관련 사설 제목은 <김무성 신임 대표, 대등한 당청관계 만들라>로 가져갔다. <동아일보>는 1면 기사 제목을 <‘親朴→非朴’ 새누리 권력이동>으로, 사설은 매우 직설적으로 <김무성 대표, ‘마마보이黨’에서 벗어나 국정 주도하라>로 가져갔다.
▲ 15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오히려 중도언론과 진보언론이 보수언론에 비해 차분한 태도를 보였다. <한국일보> 1면 기사는 ‘조중동’의 그것보다 비중이 작았고 <與당권 비주류 손에 당청관계 변화 예고>로 다소 차분했다. 사설 제목 역시 <'김무성 여당' 청와대·야당 관계혁신 이뤄 내야>로 비슷한 톤이었다. <한겨레>는 해당 사안을 <김무성의 압승…친박의 몰락>이라는 1면 하단 기사에 다뤘다. <경향신문>은 1면 탑 기사에 <새누리당 새 대표에 ‘비주류’ 김무성 선출 / 집권 17개월만에 친박 몰락>을 배치했지만 역시 ‘조중동‘에 비하면 지면 비중이 약소했다.
이와 같은 지면 배치는 ‘박근혜 정부의 위기’가 ‘보수의 위기’로 확산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보수언론의 속내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브레이크 없는 행보’가 보수언론이 보기에도 위험해 보인다는 것일 테고, 오히려 새누리당이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것이 ‘레임덕’을 막는 길이라는 역설적인 결론을 내린 상황이라 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경우 임기의 절반을 지난 2010년 6월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되고 이를 주도한 정운찬 국무총리가 그해 8월 사퇴하면서 ‘레임덕’이 오기 시작했다. 이어서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를 총리로 내정했다가 낙마하자 이명박 대통령은 정국의 주도권을 상실했고 2010년 박근혜를 차기 대권주자로 인정한 소위 ‘8.21 회동’을 통해 정국을 추스렸다. 이때부터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서서히 ‘박근혜당’이 되기 시작했다.
▲ 15일자 경향신문 3면 기사
‘김무성 대표’ 체제의 임기는 2년으로 2016년 총선의 공천을 포함하게 된다. 7.30 재보선이 끝나고 나면 2016년 총선까지는 한동안 큰 선거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이끄는 새누리당이 대통령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에 따라 박근혜 정부 임기 중반의 정치 지형도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무성 대표는 5선의원이지만 두 번에 걸쳐서 당의 공천에서 탈락하는 고난을 겪었다. 2008년 총선에서는 ‘친박’의 핵심이라는 이유로 친이계의 공천에서 숙청당했다는 평가다. 그런 그가 2012년에는 ‘비박’이란 이유로 공천에서 탈락했다고 평가받는다. 2008년에는 친박임을 강조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어 당으로 복귀했다. 2012년에는 ‘비박연대’를 만들 것이라는 정계의 전망 속에서 불현 듯 백의종군을 선언하여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에 기여했다. 총선이 어그러졌다면 대선도 쉽지 않았을 거란 점에서, 김무성은 박근혜 정부 탄생에도 일정한 공로가 있다.
‘친박’으로 분류되던 그가 ‘비박’이 된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의 용인술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아일보>는 2013년 연재한 [비밀해제 MB5년]의 <무대와 공주> 편에서 상도동계인 김무성은 박근혜에게도 ‘머슴’이 되려 하지 않고 ‘동지’가 되려 했고 이것이 두 사람 결별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말하자면 김무성은 박근혜의 ‘영애의식’을 견딜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무대와 공주> 편은 <동아일보>의 [비밀해제 MB5년]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크게 화제가 되었다.
‘무대’(무성대장)이라 불리는 성격을 가진 김무성 대표는 확실히 대통령과 청와대의 결정에도 이의를 제기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 같다. 2013년 4월 재보선에서 어렵게 5선 의원이 된 그는 당선 직후 “야당의 체면을 살려주고 야당에 져주는 것이 국회를 원만하게 운영되고, 그것이 또 정권에 도움이 되는 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원내대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흔히 ”일점일획도 고칠 수 없다“(취임 초 정부조직개편안 당시 박근혜 대통령 발언)고 말하곤 하는 박근혜 대통령과는 스타일이 다르다. 그는 새누리당의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모습도 종종 보였다.
▲ 15일자 한겨레 2면 기사
그러나 그렇다고 김무성 대표의 취임 자체가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을 가져올 것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박근혜 정부 입장에선 이제야 겨우 여당 내에 대통령과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구심점이 생긴 것에 불과하다. 이는 다른 정권들은, 최근의 보수정권이었던 이명박 정부조차도 정권 초부터 가지던 ‘리스크’에 불과하다.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이 시작되었다기 보다는, 그간 새누리당이 여당치고도 지나치게 순치된 정당이었다는 평가가 오히려 합리적이다.
다만 김무성 대표 체제가 출범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가 야당의 의견을 전혀 수용하지 않는 강공 행보를 보인다면 ‘레임덕’은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김무성 대표로서는 청와대와 야당 사이에서 자신의 입지를 세우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세종시 원안을 고수해낸 박근혜의 역할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청와대의 독주를 제어하려는 시도 정도는 있을 것이다.
또한 그러한 시도가 오히려 보수정부의 통치와 정권재창출에 도움이 될 거란 것이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의 판단일 것이다. 15일자 신문 지면이 보여주는 이들의 의식이 정확히 그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자신들의 위기를 의식하고 있는지 여부는 일단 2기 내각 인선을 그대로 강행하느냐에서 보여지게 된다. 김무성 대표는 청문회 대응까지는 현 지도부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일단 밝혔다.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어떻게 될까. ‘무대와 공주’, 아니 이제는 ‘무대와 임금’이 써낼 새로운 드라마가 궁금하다.
▲ 2013년 5월 25일자 동아일보 5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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