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시그널>을 본 단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포스터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었거든요. "2014 선댄스영화제 최고의 화제작" 선댄스는 제가 가장 가고 싶은 영화제이며, 그만큼 어느 정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더 시그널>을 소개하는 문구가 명백한 사실인지 아니면 흔하디흔하게 보는 홍보용 과장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드나드는 해외 사이트에서는 좀처럼 언급되는 걸 보질 못했으나, 뭐 선댄스 현지에서는 화제가 됐을 수도 있으니 속는 셈 치고 보자는 요량으로 극장에 갔습니다. 그로부터 1시간 30분이 흘러서 저는 진짜 속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만약 <더 시그널>이 선댄스에서 화제가 됐다면 그럴 만한 요소은 더러 있습니다. 일부 만화적인 연출은 특히 재미있더군요. 문제는 음모론부터 시작해서 기성품으로부터 가져온 식상하고 상투적인 소재 투성이라는 것입니다. 그걸 죄다 끌어모은 바람에 <더 시그널>을 보면서 절로 연상할 수밖에 없는 영화가 한둘이 아닙니다. (차마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밝히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이 약점을 만회하기 위해서 <더 시그널>은 로맨틱하고 드라마틱한 요소를 집어넣었습니다. 주인공의 감정이나 잠재의식을 다루고 있는 프롤로그는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부각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아쉬운 연출로 인해서 이것이 비로소 잘 드러나야 할 마지막에 이르면 거품만 남습니다.

"꿈보다 해몽"이지만 굳이 풀이하자면 <더 시그널>은 젊은 세대에게 보내는 도전의식 고취용 영화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한계에 좌절하고 사회가 고정한 틀에 갇힌 채로 살아가는 나약한 우리 자신의 은유로 볼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꿈보다 해몽이라서 애써 영화를 포장하는 것 밖엔 안 될 것으니 생략하겠습니다.

실상 <더 시그널>은 빈약한 아이디어로 이뤄졌습니다. 일단 중반부에 접어들자마자 이 영화는 장편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훤히 보입니다. 결말을 보면 확신할 수 있을 만큼 각본 자체에 이야깃거리가 별로 없습니다. 사정이 이 모양이니 드라마와 로맨스는 실질적으로 영화의 상영시간을 늘리는 목적만 가진 것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가만 지켜보노라면 <더 시그널>은 종국에 가서 반전에 거의 전적으로 의지할 영화라는 걸 눈치 채는 것도 아주 쉽습니다. 그리고 그 반전이 무엇일지 알아차리는 것마저 어렵지 않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짠~"하고 보여주자 "그래서 뭐?"라는 반감만 생겼습니다. 영화는 내내 으리으리한 반전과 결말을 갖춘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하지만 파장은 미약하기만 합니다. 딱 하나, 저예산으로 제작했을 걸 감안한다면 윌리엄 유뱅크 감독에게 <더 시그널>보다 나은 차기작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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