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한국일보>는 리서치코리아에 의뢰해 실시한 7.30 재보선 관심지역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는 동작을의 대진표가 결정된 9일부터 이틀 동안 동작을 유권자 501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유선전화 임의걸기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조사의 응답률은 동작을에서 9.1%였고 표본오차는 95%신뢰수준에 ±4.4%포인트다.

이 조사에 따르면, 최대 관심지역으로 꼽히는 서울 동작을에서 새누리당 나경원 후보가 다자구도는 물론 야권단일화를 가정한 조사에서 상대 후보를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나경원 후보는 두 경우 모두 50% 이상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자대결을 나경원 vs 기동민(새정치민주연합)으로 상정할 경우 53.9% vs 36.4%(무응답 9.8%)로 나타났고, 양자대결을 나경원 vs 노회찬(새정치민주연합)으로 상정할 경우엔 54.8% vs 37.0%(무응답 8.3%)로 나타났다.
▲ 11일자 한국일보 1면 기사
나경원 압도 결과, 지명도 차이인가 공천 파동 후유증인가
나경원 후보의 일방적인 우위로 나타난 이 여론조사 결과는 두 가지 이유로 해석되고 있다. 하나는 후보 간 인지도ㆍ지명도의 차이가 반영된 것으로 보는 해석이다. 또 다른 하나는 새정치연합의 공천 파동이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해석이다. 두 가지 해석 모두 약간의 난점이 있다. 만약 나경원 후보의 일방적인 우위가 인지도ㆍ지명도의 차이의 반영이라면, 어째서 인지도가 기동민보다는 나경원에 가까운 노회찬 후보도 기동민 후보와 마찬가지로 나경원 후보에게 압도당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또 마찬가지로 그것이 새정치연합의 공천 파동의 문제라면, 역시 공천 파동에 무관한 노회찬 후보의 지지율도 비슷하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여론조사를 해석하려면 적어도 한 가지 가설을 더 투입해야 한다. 나경원 후보와 기동민 후보의 양자대결과 나경원 후보와 노회찬 후보의 양자대결의 수치를 면밀하게 보자. 얼핏 기동민 후보와 노회찬 후보의 수치는 해석하는 게 무의미한 수준으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차이는 같은 샘플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해석할 여지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노회찬 후보가 양자대결시 기동민 후보보다 많은 지지율을 얻지만, 노회찬 후보가 출전했을 경우 나경원 후보의 지지율은 오히려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조사에서 나경원 후보와 기동민 후보의 격차는 17.5% 포인트가 되지만 나경원 후보와 노회찬 후보의 격차는 오히려 17.8%로 올라간다.
이 수치는 어찌 봐야 할까. 표면적으로 볼 때, 노회찬 후보가 기동민 후보보다 후보 경쟁력은 있으되, 비토층도 더 탄탄하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노회찬 후보가 ‘진보’ 후보로 분류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11일자 한국일보 5면 기사

진보 후보 노회찬의 '비토요인', '공천 파동' 기동민의 한계

생각해봐야 할 점은 더 있다. 노회찬 후보는 2012년 총선에서 노원병 지역구에서 57%의 득표율로 여유 있게 당선된 바 있다. 이때는 이 지역구에서 두 번째 도전이었다 하더라도, 노회찬 후보는 노원병에 처음 나온 2008년 총선에서도 40.05%를 획득하여 43.10%를 획득한 당시 한나라당 홍정욱 후보에게 근소하게 밀렸다. 이때는 민주당 후보가 일부 지지율을 잠식했고, 양자구도라면 노회찬 후보가 충분히 승리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나경원 후보의 인지도는 높다. 하지만 노회찬 후보도 2008년이나 2012년엔 그에 못지 않은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두 사람은 이 지역구에 처음 도전하는 외지인이란 점에서 차이가 없다. 게다가 동작을은 노원병과 마찬가지로 서민들이 많이 사는 야권성향이 강한 지역이다.

이 모든 정황을 추스르면 2008년과 2012년의 노회찬과 2014년의 노회찬을 달리 보게 하는 강력한 비토요인이 존재한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2012년의 ‘통합진보당 사태’에서부터 2013년의 ‘이석기 내란음모 의혹 사건’을 통해 형성된 ‘진보정당’에 대한 비토일 수밖에 없다.

기동민, 인지도 문제 아닌 나쁜 방식의 지명도 문제
‘진보정당’의 문제는 따로 말하기로 하자. 이렇게 볼 경우 새정치민주연합과 기동민 후보의 문제가 보인다. 결국 동작을 민심은 비슷한 성향의 노원병에서 50% 이상의 지지를 얻던 노회찬을 37%까지 끌어낸 그 비토성향 만큼이나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천 파동에 실망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인지도ㆍ지명도의 차이’를 말하지만 기동민 후보는 이번 공천 파동에서 ‘서울시 정무부시장’이었단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고 봐야 한다. 인지도ㆍ지명도의 격차가 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기동민 후보의 인지도ㆍ지명도가 나쁜 방식으로 올라갔다는 사실이 문제인 셈이다.
▲ 7·30 재·보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서울 동작을(乙) 후보로 전략공천된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오른쪽)이 8일 국회 정론관에서 출마회견 하던 중 허동준 전 동작을 지역위원장의 거친 항의에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새정치민주연합은 ‘인지도ㆍ지명도의 격차’라는 해석에 안주할 게 아니라 위기의식을 느껴야 할 필요가 있다. 단지 ‘인지도ㆍ지명도의 격차’가 이 여론조사의 원인이라면 기동민 후보 개인이 열심히 뛰고 그가 서울시 정무부시장이었음을 설명하는 것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그린 그림이 바로 그것으로, 그들은 동작을에서 ‘박원순 바람’의 덕을 보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새정치민주연합의 처신에 실망한 것이라면 답이 없다. 후보 개인의 인지도나 매력이 상당해도 정당이 비토당하면 쉽게 낙마하는 것이 정치권이다. 인지도가 높지 않았고 지역 사람도 아닌 후보가 나왔는데 정당의 처신도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다면 사실 선거는 해보나 마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정치적 기회가 주어지는 데에도 거듭 걷어차는 현재의 모습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당 대표단의 리더십이 책임을 져야겠지만, 섣불리 당대표를 비난하는 당내 구성원들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공천 내홍이 계파갈등과 관련이 있다는 세간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여기에 관여한 이들은 당대표단 뿐만이 아니다. 손쉽게 당대표단을 비난하려 할 것이 아니라 당 체질을 싹 뜯어고치는 방법을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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