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재보궐선거 공천 작업이 거의 마무리되면서 향후 전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특히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 주요 지역구 공천에 대한 당 내 반발의 강도가 심해지고 있어 이것이 어떤 상황으로 이어질지에 관심이 쏠린다.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9일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을 광주 광산구 을 지역구에 공천했다. 하지만 당 내에서 이에 대한 반발이 제기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세 가지 측면에서 권은희 전 과장 공천의 부정적인 효과가 언급되는 상황이다.

▲ 2013년 8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댓글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2차 청문회에서 증언중인 권은희 전 과장. (연합뉴스)

첫째는 이 결정으로 지난해를 뜨겁게 달궜던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권은희 전 과장 폭로의 진정성을 의심받게 됐다는 것이다. 권은희 전 과장은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인사들이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경찰 윗선의 수사 개입 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권은희 전 과장이 공천을 이런 식으로 받게 되면서 당시의 폭로에 어떤 ‘정치적 목적’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는 것이다.

▲ 조선일보 10일자 지면.

이런 문제에 예민한 <조선일보>가 이미 그런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조선일보>는 10일자 신문 1면에서 ‘보상공천’이라는 말까지 동원하며 권은희 전 과장과 공천을 결정한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를 공격했다. 권은희 전 과장이 폭로를 해준 대가로 공천을 해준 것 아니냐는 얘기다. <조선일보>는 또 2면에도 전병헌 전 원내대표가 “권은희 증언의 가치 반감시킨 공천”이라고 평한 것을 제목으로 뽑으며 지도부 결정에 대한 당 내 비판 여론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조선일보>는 <‘권은희 폭로’ 결국 野 공천 받으려는 계산이었나>라는 사설을 통해 권은희 전 과장이 폭로를 감행했을 때부터 정치적 배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는데 이번 공천으로 그간의 설들을 모두 추인한 꼴이 됐다고 지적해 이번 결정에 대한 비판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가히 예술적인 프레임 셋팅이다.

▲ 조선일보의 10일자 사설.

권은희 전 과장 공천이 야기하는 부정적 효과의 두 번째 포인트는 이 결정으로 인해 그간 일촉즉발의 상태였던 당 내 계파 간 갈등이 폭발지경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그간 당 내 비주류 인사들은 권은희 전 과장을 전략공천 하기 위해 기동민 전 서울시부시장을 광주 광산구 을에서 서울 동작구 을 지역구로 이동시켰고 이 때문에 공천 잡음이 극심해진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반복해서 제기해왔다. 그런데 권은희 전 과장이 결국 공천을 받게 됐으니 이러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게 된 것 아니냐는 반발이 제기될 수 있는 수준에 놓인 것이다.

그간 기동민 전 부시장 공천 논란을 둘러싸고 현직 의원들이 두 차례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기동민 전 부시장 공천이 결정되기 전 소위 민평련계와 정세균계, 기타 범친노, 박지원 의원 등 31명이 연명해 서울 동작구 을 지역구에 전략공천을 하지 말고 허동준 전 지역위원장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이다. 두 번째는 기동민 전 부시장 공천 결정 이후 같은 맥락에서 제기된 성명으로 의원 30명이 연명하였지만 앞서와는 달리 민평련계와 박지원 의원 등은 빠지고 정세균계 및 범친노계 의원들이 주축이 됐다. 기동민 전 부시장이 박지원 원내대표 시절 특별보좌관을 역임한데다 민평련계와 접점이 넓다는 측면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 전략공천을 받은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오른쪽)이 8일 국회 정론관에서 출마회견하는 도중 허동준 전 동작을 지역위원장이 거칠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무리 정당정치 역사에 잡음이 없는 공천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당 내 주요 계파에 속하는 현직 의원들이 나서서 연명해 몇 차례에 걸쳐 입장을 발표하는 것을 예사로 볼 일은 아니다. 이미 지난 6·4 지방선거때부터 지도부가 공천과 관련된 전횡을 저지르고 있다는 당 내의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즉, 당 내 일부 인사들이 이번 재보궐선거를 통해 지방선거 공천 논란의 ‘데자뷰’를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에 대한 비토 여론이 커져 재보궐선거 이후 조기전당대회를 예측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는 상황이다.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로서는 재보궐선거 결과에 따라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될 수도 있는 시점인 것이다.

이번 공천 결정으로 인한 부정적 효과의 세 번째는 대권 및 당권주자들의 진로에도 상당한 영향이 불가피하게 됐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의 예이다. 천정배 전 장관은 정치적 중량감이 상당한 인사로서 원내에 복귀하게 되면 최소한 당권 내지는 이후 대권을 겨냥한 행보에 시동을 걸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권은희 전 과장 공천으로 원내 복귀가 물거품이 돼 이후 정치적 전망이 그야말로 안갯속이 됐다. 조경태 최고위원 등이 이번 결정에 대해 “천정배 죽이기”라며 반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9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열린 '서울시, 전통상인·외국인·청년·청소년 명예부시장 위촉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권주자로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철수 공동대표의 운명이 갈리는 시점이라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기동민 전 부시장은 서울 동작구 을 재보궐선거 출마를 공식화하면서 박원순 시장의 정책을 서울에서 더 잘 뿌리내리게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자신이 ‘박원순의 사람’임을 만방에 강조한 것이다. 이로써 서울 동작구 을 재보궐선거는 ‘나경원 대 박원순의 리턴매치’를 연상케하는 구도가 형성됐다. 7·30 재보궐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구의 야당 대표선수로 박원순 서울시장이 각인되는 효과가 일어나는 것이다.

반면, 그간 유력 대권주자로서 주가를 올려왔던 안철수 공동대표의 경우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주요 지역구에 ‘새정치’를 전면에 내세우는 후보가 거의 존재하지 않게 됐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2012년 대통령 선거 때와 새정치민주연합 창당 시의 위세에 비하면 상당히 초라해진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 김한길 공동대표 뒤로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이 때문에 안철수 공동대표 측에서는 “김한길 공동대표에게 속은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까지 나온다. 괜히 안철수 공동대표의 측근인 금태섭 대변인을 덜컥 전략공천 하려다가 실패한 데 대한 불만이다. 공천 관련 비난은 안철수 공동대표가 뒤집어 쓰고 김한길 공동대표는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입장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인사들에 대한 공천을 무리없이 주장할 수 있게 된 것 아니냐는 얘기다. 실제로 경기 수원시 정 지역구에 공천된 박광온 대변인은 김한길 공동대표와 가까운 인사로 분류된다. 경기 평택시 을 지역구에 공천된 정장선 전 사무총장도 계파로서는 손학규계로 분류되지만 김한길 공동대표와도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재보궐선거 결과에 따라 이후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의 지각변동이 벌어질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는 모양새다. 재보궐선거에서 압승을 거둔다면 공천과 관련한 여러 상처들이 일단은 봉합될 수 있겠지만 수도권 등 주요 지역구에서 패배한다면 그간 쌓여온 모든 당 내 갈등이 한꺼번에 폭발할 수 있다. 물론 답답한 상태로 정체돼있는 것 보다는 폭발하는 게 나은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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