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느덧 밤 10시 … 졸음이 쏟아진다.

보자니 그렇고 안 보자니 또 그렇다는 생각을 접지 못한 채로 텔레비전을 켰다. 빵빵 대는 음악소리와 함께 <대통령과의 대화, 질문 있습니다> 자막이 큼지막하게 떴다.

중앙무대에 대통령이 등장했다. ‘시간없다’를 연발하는 진행자의 채근 속에, 짤막한 질문과 장황한 답변의 연속. 대통령이 말하는 기나긴 문장에서 핵심을 찾기에는 나의 집중력이 부실한 것인지, 금세 졸음이 쏟아진다.

지루한 차에 노트북을 열었더니 ‘진보신당 칼라TV’가 생중계 중이라는 소식이 날아왔다. 들어가보니 조계사 안에서 촛불 시민들이 <대통령과의 대화>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대통령의 ‘나도 옛날에 비정규직이었다’, ‘농촌 살리는 딸기주스 공장’, ‘높은 대학 등록금은 은행 대출받으면 된다’ 등 답변이 나올 때 마다 “지금 동문서답 하냐”면서 촛불들의 야유가 쏟아진다.

생중계 게시판의 채팅창도 졸음이 올 틈이 없다. 대통령의 답변이 나올 때마다 코멘트가 순식간에 나온다. “구체적인 근거나 대책이 없으니까 무조건 ‘믿어 달라’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는 건가”, “패널들이 기가 막혀 추가질문 안 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사회적 합의로? 답은 없고 원론적인 얘기만 나오네” 등의 촌철살인 ‘대화’가 오간다.

#.2. 밤 11시가 넘어서고 … “거짓말 듣기 싫다”

조계사 앞 생중계를 보던 중 한 사람이 일어서서 마이크를 잡는다. “아무 대책 없이 자기 생각 가지고 자기 말만 듣느라 고생 많으시죠? 거짓말 듣기 싫은 분들은 지금 서울대병원으로 함께 갑시다.”

현재 서울대병원에는 지난 간밤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찬성하는 누군가에게 테러 당한 안티 이명박 카페 회원들이 위독한 상태로 입원해 있다고 한다. 한 무리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나서 자리를 뜬다.

이윽고 ‘촛불 시민’ 질문자가 스튜디오에 등장했다. 그의 ‘소통’을 묻는 속시원한 질문에 조계사에서는 박수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대통령 답변 첫 마디는 “참여는 했지, 주동자는 아니죠?”. 아뿔싸, 이건 말실수일까. 인터넷 채팅창에는 “대통령이 국민 협박하냐”, “주동자면 잡아가려고?”라는 멘트가 연달아 나온다.

소통을 묻자, 법치와 폭력시위 운운하는 답을 내놓다니. 대통령은 촛불 시민들과 ‘대화’ 나눌 마음이 없나 보다.

#.3. 밤 11시 44분 … 질문만 있고 답은 없다?

이거 100분 분량으로 방송한다던데, 11시30분이 넘어서도 끝나지 않는다. 인터넷 게시판과 조계사 앞 농성장에서는 “약속한 100분 넘었다”, “전파 낭비 그만하고 끝내”라는 함성이 쏟아진다.

11시44분. 이윽고 <대통령과의 대화>는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라는 마무리 ‘대담’으로 끝이 났다.

조계사 앞, 칼라TV 속 정태인 교수가 “여러분 고문당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오늘밤 잠 못 주무시겠죠?”라는 인사말로 칼라TV 2부 행사를 열었다.

정태인 교수와 진중권 교수는 “뭐 좀 그럴듯한 얘기가 있어야 얘기를 나눌 텐데, 참 난감하군요”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촛불 시민들도 부동산과 환율 문제 등 경제 문제를 질문했다. 정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은 정말 솔직한 사람이라는 걸 오늘 느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말하는 ‘서민을 위한 정책’에서의 ‘서민’은 대통령 주변의 대한민국 1%를 뜻한다는 것.

진중권 교수는 “문화와 관련된 얘기는 하나도 안 나왔다”면서 “70년대 개발식 완장 수준”이라고 말한다.

생각해보니 한창 뜨거운 이슈인 언론 문제나 종교 문제도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이날 <대통령과의 대화>에서는 질문이나 발표만 있었지 대화나 답변은 찾기 힘들었다.

KBS 스튜디오에 진짜 ‘대화’가 없었던 이유는 뭘까? 혹시 리허설을 열심히 한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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