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며 예단하는 습성은 고쳐야 한다. 검색만 해도 나의 성향을 짐작하실 수 있었을 텐데…” 김옥영 작가의 인터뷰는 질책으로부터 시작됐다. (질책의 이유는 <‘이승만 다큐 강행했던 이’라는 문구의 폭력성에 대하여>(▷링크를 확인하시라)

이승만 다큐 논란이 컸던 당시 KBS 사측은 다큐를 방영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이승만 다큐 자문위원단>을 구성했고 여기에 김옥영 작가의 이름이 포함됐었다. 해당 자문단은 이승만 다큐에 “A+”라는 평가를 내렸다. KBS는 딱 거기까지만 밝혔다. 그 속에서 이승만 다큐의 문제점을 지적한 소수의 의견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그게 누군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김영옥 작가는 그 위원단의 소수자였다. KBS의 이승만 다큐가 기획부터 잘못됐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지난 3일 여의도에 위치한 김옥영 작가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미디어스> 기사에 대한 사과와 함께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싶다고 말했다. 또, 최근 벌어진 KBS사태 및 사장 선임에 대한 생각도 들어보고 싶었다.

“KBS는 이승만 다큐를 내보내야할 명분이 필요했던 것”

▲ 김옥영 작가ⓒ미디어스
김옥영 작가는 “당시 KBS는 이승만 다큐 문제로 시끄러웠다”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KBS 측에서는 방송을 내보내야할 명분이 필요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반대로 KBS 이승만 다큐와 관련해서 실무를 보는 아랫사람들은 해당 다큐를 안 내보내려는 명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처음 <이승만 다큐 자문위원단>에 대해 실무를 보신 분은 진보와 보수를 동수로 구성한다고 이야기했었다. 당시 진보학자들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설득을 했다. 그래서 나는 들어가서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회의 당일 가보니 거명했던 진보인사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 속에서 이승만 다큐 관련 이야기를 했었는데 기본적으로 생각자체가 다른 분들이었다”

김옥영 작가는 이승만 다큐가 KBS에서 못할 만한 아이템은 아니라고 말했다. “밖에서는 내용이 편향적이냐 아니냐, 방영되어선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며 “그런데 이승만이라는 아이템은 그 전에도 KBS에서 다큐를 만들었었다. 중요한 건 아이템이 아니라 관점”이라는 설명이다. 김 작가가 KBS에 “기획부터 다시 하라”고 의견을 밝힌 이유이기도 하다. ‘차지철을 통해서도 현대사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철학이었다.

“방송프로그램을 만들 때 상식적으로 필요한 절차들이 있다. 그런데 돌출적으로 기획하고 방송을 하려고 하니 안 되는 것이다. 현대사 관련 다큐를 많이 작업했는데 오랜 시간 준비를 했었다. 중요한 것은 해당 아이템을 다루는 것이 지금 이 시기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아니면 새로운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것을 위해 오랫동안 제작진들은 토론을 하고 자문을 한다. 특히, 시리즈물이라고 한다면 전체의 정체성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첫 프로그램을 방송하려고 한다면 어느 정도 라인업을 한 상태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승만 다큐는 그런 면에서 비정상적이었다. 그런 토론과 자문의 과정이 전혀 없었다”

KBS는 이승만 다큐가 문제가 되자 ‘시리즈물’로 기획된 것이라고 하며 김구 선생도 다룰 계획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그런 졸속이야 말로 KBS의 이승만 다큐가 왜 문제였는지를 보여준다는 것이 김옥영 작가의 설명이다. 그는 ‘시리즈물’로 기획됐다는 KBS 해명에 대해 “외부 비판이 심하니 임기응변 식 답변이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당시 이승만 다큐를 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김옥영 작가는 <이승만 다큐 자문위원단>는 이 같은 이유들로 ‘기명’을 요청했지만 해당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김 작가는 “도매금으로 넘어갈 것 같아 요구했던 것인데…이해는 간다”면서 KBS의 당시 태도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런 김옥영 작가는 논란이 됐던 KBS 이승만 다큐를 시청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김 작가는 “보나마나 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떤 방향으로 뻔하다고 본 것이냐’고 물었더니 김 작가는 “실무진들은 방어를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신문기사들을 보니 그런 바람들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우려대로 자문단은 방영하려는 명분으로 사용된 것이었다. A+라고 하지 않던가”라며 “이승만이라는 아이템도 흥미롭지 않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오히려 이런 의문을 던졌다. “이승만 다큐를 꼭 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냐"고.

30년 방송작가 생활 중 대다수를 KBS와 함께 했던 김옥영 작가다. KBS의 많은 사장들과 일을 했다. 길환영 사장의 해임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이명박 정부 이후 제작자율성과 정치적 독립이 많이 훼손됐다. 이 주장에 동의하느냐는 물었다. 김 작가는 “뻔한 걸 뭘 물어보느냐”고 답했다. 이어, “시청자들은 결과물로 판단한다. 그런데 그 결과물이 신통치 못했다”고 말했다.

“한 언론매체를 보니, 새노조 설문조사에서 구성원 대다수가 새로운 사장은 정치적으로 독립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동의한다. 언론사는 보도와 시사프로그램에서 어떤 아이템이 어떻게 나가느냐가 (정치적 중립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요즘 MBC <PD수첩> 등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방송사 사장은 철학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정권이 바뀜에 따라 철학이 달라질 수는 없는 것이다. 만일, 달라진다면 언론사 수장으로서 가치가 없는 것이다”

김옥영 작가는 “언론의 가치가 다른 이유로 인해 침해될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언론의 가치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비판의 기능이다. 언론사는 개인의 이익에 봉사하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KBS 새 사장, 시사프로그램 제 기능 할 수 있도록 살려야”

또한 김옥영 작가는 차기 KBS 사장에게 “고사중인 시사프로그램의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살려줘야 한다”며 “탐사를 통해 구조적인 문제를 밝혀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KBS가 약속을 어겨 김옥영 작가의 말대로 ‘도매금’으로 이승만 다큐를 밀어붙인 인물로 각인됐던 그는 재차 본 기자에게 “기자들은 글을 쓸 때 긴장을 해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사실 생각해보면 간단한 노력만하면 되는 것들이다. 개인에게 불명예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기자들은 늘 긴장을 해야 한다. 그런데 타성에 젖어서 기사를 썼다는 것이다. 그런 관행적인 타성에 대해 반성을 해야 한다. 특히, 정황들을 연결해 상관관계가 있는 것처럼 예단하는 것은 경계해야한다. 글 쓰는 자의 한 사람으로서 글을 쓰면서 ‘자기 자신에게 가장 엄격해야 한다’고 믿는다. 엄격한 글을 쓰시라”

이날 만난 김옥영 작가는 한마디로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인터뷰 하는 내내 자신이 하고 있는 글쓰기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뿜어냈다. 열정으로 김 작가는 3D콘텐츠 제작에 이어 최근 ‘패션과 권력’이라는 주제로 차세대 방송 UHD 콘텐츠 제작에 직접 나서는 등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여전히 현역에서 열정적으로 글을 쓰는 김영옥 작가의 모습을 보며, 타성에 젖었던 스스로를 반성하는 선물을 받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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