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고공농성 5일째.

“살고 싶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네 글자가 펄럭인다. 그리고 그 현수막 위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2명의 얼굴이 보인다. ‘손을 흔들어’ 잘 견디고 있음을 표시한다. 지금 이순간에도 기업에 규제를 완화해주고 세금감면 혜택을 주어야 한다고 각종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는 와중, 대한민국 어느 한 켠에선 세금 감면 혜택도 받지 못한, 열심히 일한 대가로 하루아침에 해고된 노동자들이 “살고 싶다”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지난 4일부터 광주광역시에서 30미터 높이의 CC(폐쇄회로)-TV 철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로케트전기의 해고 노동자들 모습이다.ⓒ광주드림 임문철 기자
지난 4일부터 광주 치평동 한국은행 맞은편 사거리 30미터 높이의 폐쇄회로(CCTV) 철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로케트전기 해고 노동자 전성문씨와 이주석씨다. 어떻게 저런 공간에서 며칠을 보낼 수 있을까 싶다.

“사람이 앉아 있을 만한 공간이 없습니다. 누울 수도 없습니다. 몸을 구부려야 하는 고통이 큽니다.”
전화기 너머로 전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교통 관제용 CCTV 기둥을 감싼 연약한 지지대. 오래 있으면 허리에 무리가 올 수 있다. 그 곳에서 벌써 5일째 먹고 잤다.

“밤 낮 기온차가 심해요. 밤에는 추워서 정신이 없고 낮에는 너무 뜨거워 정신이 없어요. 바람이 불면 철탑이 흔들려서 어지러움증도 느낍니다.”
전성문씨는 고공농성과 동시에 단식농성도 벌이고 있다. 5일째 물과 죽염만 먹고 있다. 뜨거운 햇볕이 그대로 내리쬐는 철탑에서 조용히 웅크린다.

“다리도 저리고 허리도 아픕니다. 밤에는 추워서 잠도 안 옵니다. 두렵기도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 생각하고 올라왔습니다. 추석은 내려가서 웃으며 보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전성문씨보다 한 층 높이 있는 이주석씨.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동료들은 물과 간단한 음식을 밧줄에 묶어 올려보낸다. 화장실 문제도 동료들이 올려보낸 작은 통 하나로 해결해야 한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불면 바람을 맞는다. 이들과 지상을 연결하는 것은 제때 충전해서 올려주는 핸드폰이 전부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이들은 지금 왜 이렇게 극단에 몰려있을까.

10년 넘게 일했던 직장서 하루아침에 정리해고

지난해 추석을 앞둔 8월 말,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내세운 사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해고돼 지금 여기까지 왔다. 10년 넘게 일하던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된 것이다. 그러나 그 해고 이유 또한 석연치 않다.

▲ 천막농성장 앞. 이들은 지난해 추석에도 천막에서 보냈다.ⓒ광주드림
지난해 8월, 지역의 중견 기업인 로케트전기가 곧 구조조정을 단행할 것이란 이야기가 있고 나서 며칠 후 해고된 11명의 노동자들. 그들은 구조조정 명단이 발표되기도 전에 이미 자신들이 해고 대상자가 될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짐작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그들은 모두 민주노동자회 활동을 했던 공통점이 있었다.

“회사엔 노조가 있지만 10년째 한 사람이 위원장을 하고 있어요. 어용노조인 거죠. 현장을 바꿔보려고 민주노동자회라는 모임을 만들었어요. 해고된 사람들은 모두 민노회 활동을 했던 사람들이죠. 회사는 구조조정을 하기 한 달 전에 이미 회사 앞에 집회신고를 해놨더군요.”

민노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던 이들을 회사가 눈엣가시처럼 여겼다는 것. 당시 로케트전기의 구조조정은 ‘표적해고’라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퇴근 후 유인물을 뿌렸다는 이유로 벌점을 주고, 또 그 벌점을 이유로 해고 대상자가 됐기 때문이다.

회사가 정말 어려워 구조조정을 했다고 볼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해고된 노동자 11명은 10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을 받고 일했던 이들. 통상 고액 연봉자들이 우선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것과 반대다. 11명의 연봉을 다 합쳐도 해고 직후 회사 회장이 구입했다는 승용차 가격도 되지 않는다.

IMF때는 임금도 반납했고 회사가 어려울 땐 휴직도 했던 로케트전기 해고 노동자들은 한 순간 길 위로 냉동댕이 쳐졌지만 회사도 법과 제도도 이들을 외면하고 있다.

천막·고공농성·삭발·단식 1년

▲ 얼마 전 로케트전기 해고 노동자들은 회사 앞에서 원직복직을 촉구하는 삭발식을 가졌다. ⓒ광주드림 임문철 기자
추석 직후 해고돼 천막에서 추석을 보낸 이들이 다시 두 번째 추석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고공농성을 했고, 단식을 했고, 천막농성을 했고, 경찰서를 들락거렸다. 해고 노동자들에게 길 위의 1년은 시련의 시기였다.

회사 주변 1인시위와 출퇴근 선전전을 계속해 왔고 이리 저리 옮기며 천막농성을 계속했다. 종각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다 경찰에 의해 진압되기도 했으며 단식 농성으로 곡기를 끊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삭발식을 했다. 실업급여도 끊긴 지 오래, 생계의 어려움도 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사측이 걸어놓은 각종 고소고발도 발목을 잡았다. 1년의 시간 동안 법과 제도의 도움을 받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기도 했다.

하지만 노동위원회는 2명에 대해서만 부당해고로 인정했다.

힘들어도 표정만은 밝았던 이들의 얼굴에서 점점 그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진다. 좁고, 높고, 옹색한 하늘 위 공간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기업 프랜들리한 세상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 참 무서운 일이다.

자꾸만 극단으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의 현실에 ‘정치인’, ‘기업인’, ‘해당관청’은 눈감고만 있을 것인가?
“지금 이 시간 다들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P.S. 9일 오후 6시 현재.

로케트 전기 사측이 1년만에 처음으로 ‘대화’를 하자고 나섬에 따라 로케트전기 해고 노동자들은 고공농성을 풀었다. 그러나 단지 대화다. 대화의 내용이 얼마나 진전을 보일지는 아직 미지수다. 1년 동안 안해 본 것 없는 그들이 겨우 이제서야 대화할 수 있는 것도 모순이다.

다만 다시 죽을 각오를 하고 극단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동안 많은 투쟁 사업장들을 보면서 그 대화라는 것 또한 얼마나 길고 힘든 가시밭 길인지 알기 때문이다.

지역일간지 <광주드림>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광주드림은 한때 지역 문화잡지 <전라도닷컴>과 한몸이었으나 자본의 문제로 각각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지역신문이 지역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문법 한 조항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정기간행물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신문법 <제5조> 3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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