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7일 공화국 정부 성명으로 오는 9월 인천 아시안게임에 선수단과 함께 응원단을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의 느닷없는 제의(!)에 각 신문들은 평소 북한에 대한 관점과 정치적 성향을 그대로 드러냈다.

<경향신문>은 대북문제를 동북아 외교문제의 틀거리에서 바라보는 종래의 관점을 견지하는 가장 진취적인 모습을 보였다. <경향신문>은 8일자 사설 <동북아 평화 위해서도 남북대화 필요하다>의 첫 문장은 “지난주 한·중 서울 정상회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가운데 하나는 동북아에서 한국의 위치이다”로 시작부터 대북문제를 동북아 외교문제의 하위변수로 위치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이와 같은 판단은 어떤 측면에서는 상식적인 것일 수도 있으나 ‘반공 vs 민족’의 대결구도로 갈라서 있는 한국의 보수·진보 언론에서는 흔히 보이지 않던 것이다.
<경향신문> 사설은 “중국에 대해 경쟁과 협력을 하는 미국, 중국과 갈등하는 일본은 한국이 중국 쪽이 아닌, 미·일 동맹의 편에 확고히 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양측이 한국을 두고 경쟁하는 상황은 그리 나쁜 구도는 아니다”라면서 한국이 동북아에서 지금의 중간자적 위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국익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8일자 경향신문 6면 기사
<경향신문> 사설은 “다행히도 한국은 과거 동북아에서 영토적 야심을 보였던 중·일과 달리 평화를 주도할 수 있는 유리한 역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라면서 “얽히고설킨 동북아 갈등의 핵심은 바로 북한문제이고 그것은 한국이 아니면 풀 수 없다”라며 현재의 국제정세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국이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경향신문> 사설은 “그러나 지금 진정성이니 절차니 대표 자격이니 하는 문제로 시비할 때가 아니다. 요동치는 동북아 정세에 휩쓸려 갈 것인지 이끌어 갈 것인지의 선택을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다. 전략적 사고가 우선이다”로 마무리되면서 한국 정부가 북한의 제안을 수용할 뿐만 아니라 좀더 적극적인 대화제안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각 언론들은 <경향신문> 정도는 아니라도 이번 성명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밝혔다. <한겨레>는 같은 날 <남북관계 개선 적극 모색할 때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북쪽이 평화공세를 계속하고 있으나 태도가 이전에 비해 그다지 달라진 건 아니다”라면서 그 대화제의의 진정성은 의심하였지만 “남북관계를 전환하려면 우리 정부의 의지와 창의적인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북쪽을 비난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래서는 아무런 문제도 풀리지 않는다. 다른 나라들도 남북관계 개선에 반대하지 않는다. 정부의 발상 전환이 시급히 요구되는 상황이다”라면서 정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중앙일보> 역시 <북의 이중적 평화 공세, 그래도 대화는 해야 한다>라는 사설 제목에서 드러나듯 본질적인 측면에서 <한겨레>와 비슷한 관점을 취했다. <중앙일보>는 “북한 성명은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라고 북의 대화 제의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도 “북한의 태도가 이중적이라고 하더라도 정부는 대화의 장을 마련해 북한의 진의를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주문했다. “동북아 정세가 미·일과 중국의 대립 양상으로 요동치는 상황에서의 외교 공간 확대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라면서 큰 틀에서 <경향신문>의 판단에 공감하는 모습도 보였다.
▲ 8일자 동아일보 3면 기사. 신문들은 응원단 파견을 보도하면서 과거 이설주가 응원단으로 남한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심지어는 <조선일보> 역시 <北이 다급해진 지금 남북 대화 되살릴 방안 고민할 때>라는 제목의 사설을 냈다. <조선일보>의 같은 날 사설은 제목으로만 보면 <경향신문>, <한겨레>, <중앙일보>의 주장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막상 <조선일보> 사설의 내용을 살피면 “이런 막다른 처지에 내몰리면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를지 예측하기 어렵다. 정부는 북의 응원단 파견은 받아들이면서도 남북 대화 요구에 대해선 '진정성이 없다'며 유보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상황에서 정부의 제1 과제는 북의 모든 도발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하는 일이다. 이와 함께 지난 2월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 후 사실상 끊어진 남북 대화를 되살릴 방안에 대해 고민할 때다. 북한으로 하여금 지금의 외교적 고립을 벗어나려면 북·일 관계가 아니라 남북 대화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내용으로 다른 언론보다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다. 대화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은 했지만 도발에 대비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식이었다.
이런 와중에서 <동아일보>는 가장 보수적인 사설로 눈길을 끌었다. 대북문제에서 보수언론은 <중앙일보>가 다소 전향적인 입장을 취하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상례인데 이번 경우 <동아일보>의 보수성이 <조선일보>마저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동아일보> 사설 제목은 아예 <北 3대 세습정권, 북핵 움켜쥐고 응원단 보낸다니>라는 제목으로 다른 신문들의 시선과 격을 달리했다.
▲ 8일자 동아일보 1면 기사.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에 비해서도 보수적인 편집이 돋보인다. 이런 기조는 사설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사설 내용 역시 비록 응원단을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주변 정세의 격변기에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은 나라를 위태로운 지경에 몰아갈 수 있다. 정부는 냉철한 자세로 북의 속셈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미모의 응원단에만 혹했다간 또다시 뒤통수를 맞는 일이 생긴다”라고 주문했다. 현 시점에서도 대북유화책이 “나라를 위태로운 지경에 몰아갈” 선택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읽힌다.
이는 <조선일보>가 적어도 기민하게 정세를 살피는 언론인 반면 <동아일보>는 ‘냉전보수’의 텃밭에서마지막까지 '반북 정서'에 몰두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동아일보>는 ‘냉전보수’ 체질을 떨쳐내지 못한다면 ‘만년 3등언론’의 처지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때다. 지금의 <동아일보>는 그 한심한 기득권에 안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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