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9월8일 쓴 것입니다. SBS가 ‘대통령과의 대화’ 중계방송을 취소하고 정규편성 프로그램인 ‘식객’을 방송하기로 뒤늦게 결정했으나, 이 글을 쓸 당시의 정황에는 변함이 없기에 본문을 수정하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지난 베이징올림픽에서 방송사들은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샀다. 일부 인기 종목과 우리나라 선수의 메달 획득이 확실시 되는 경기에만 집중해 중복 편성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베이징올림픽 기간 내내 이같은 비난은 계속됐지만 방송사들의 중복편성은 폐막식에 이르기까지 전혀 개선되지 않고 베이징올림픽은 막을 내렸다. 광고수주를 위한 시청률 경쟁이 빚어낸 결과다.

과다한 시청률 경쟁으로 베이징올림픽에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방송사들이 이제는 ‘대통령과의 대화’에 올인 한다. KBS, MBC, SBS, OBS 등 지상파 4개 채널과 YTN, mbn 등 보도전문 케이블 채널 2개에서도 생중계된다. 6개 채널 동시 생중계는 아마도 지진 등과 같은 국가 차원의 대형 재난이나 재해 등이 일어난 경우에나 가능할 법한 일이 아닌지 싶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주관사인 KBS하고만 생중계를 계획했으나 다른 방송사에서 생중계를 요청해와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청와대의 이같은 해명을 그대로 믿는 시청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 6개 방송사들은 과연 베이징올림픽과 마찬가지로 시청률 경쟁 차원에서 모두가 생중계에 참여한 것일까. 산술적으로 우리나라 전 국민이 시청한다고 가정해 시청률 100%를 6개 채널로 나누면 16.7%가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민 100%가 그 시간대에 TV 앞에 앉아 있기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시청률은 이보다 훨씬 낮을 수밖에 없다.

이 정도의 시청률을 위해서 방송사들이 ‘대통령과의 대화’에 올인 한다는 것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특히 SBS의 경우 ‘대통령과의 대화’ 시간에 시청률 20%를 넘나드는 인기 드라마 ‘식객’의 마지막편 방송이 예정돼 있었다. 시청률만을 위한 것이라면 ‘대통령과의 대화’가 아니라 드라마 ‘식객’을 방송하는 것이 옳은 선택일 것이다. 현재 SBS 홈페이지에는 ‘식객’을 그대로 방영해 달라는 네티즌들의 항의성 게시글이 잇따르고 있다.

그렇다면 시청률이 아닌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일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 지난 6일 베이징에서 개막된 장애인 올림픽이 3일째를 맞고 있지만 개막식을 포함해 생중계를 방송한 곳은 단 한곳도 없었다. 대회 기간 중 생중계를 예정하고 있는 방송사도 없는 상태다. 그나마 KBS만이 개막식이 있은 지 3시간여 후에 녹화 방송을 내보낸 것이 전부다.

장애인 올림픽에도 베이징올림픽에서처럼 감동이 있고, 문대성 IOC선수위원과 마찬가지로 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 선수위원에 도전하는 김임연 선수도 있다. 또한 박태환 선수처럼 최근 주목받는 수영 선수 김지은과 육상선수 홍석만이라는 스타도 있다. 시청자들 중엔 이런 선수들의 장애를 뛰어넘는 인간 승리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사들이 장애인 올림픽을 외면하는 이유는 단지 장사가 안된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을 볼 때 6개 방송사들이 이번 ‘대통령과의 대화’에 모두가 생중계를 희망한 것은 국민의 알권리나 장삿속과는 무관한 ‘제3의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그 제3의 이유가 혹 방송사들이 권력의 감시견(watch dog) 대신 알아서 애완견이 돼 꼬리를 흔듦으로써 뭔가 이득을 취하거나 최소 불이익을 받지 않겠다는 뜻은 아닌지 묻고 싶다. 아니면 벌써 은근한 외압이라도 받아 겁을 집어먹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오늘의 방송사들, 여러모로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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