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는 사회악

제목을 보고 클릭했을 사람들에게 미리 양해 말씀을 드린다. 이 원고는 일베(일간 베스트 저장소) 현상에 대한 비판, 평가 혹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 필자는 일베에 대해 별로 관심도 없다. 다만 사회적인 것들을 탐구하는 연재의 특성상 일베를 통해 사회(society), 혹은 사회적인 것(the social)이 무엇인가를 설명해보고자 한다. 일베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논란이 되기 때문에 비교 설명하기 좋은 적당한 대상이라 선택했을 뿐이다. 혹시라도 낚였다는 기분이 든다면 우선 (고승덕 전 교육감 후보처럼) 미안하다!!!

일베를 사회악이라고 평가하며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장의 옳고 그름 또는 그 가능성에 대한 판단을 잠시 멈추고, 이 주장은 일베를 사회의 부분으로 인정을 전제한다. 사회악도 사회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사회는 양면성을 가진다. 우리 사회에서는 밝은 부분보다 어두운 부분이 많고, 신문의 사회면을 보면 온통 부정적인 기사를 더 많이 접한다. 종종 우리는 이러한 부분을 놓치게 되는 것은 ‘사회적’이란 말이 갖는 마술적 효과이다. 사회적(social)이란 말을 쓸 때 엔 잠재적 부정성이 간과 된다. 마치 사회적이란 것이 긍정적이거나 대안적인 의미를 잠재하고 있다고 판단하게 된다. 일베도 일정한 사교 관계를 유지하며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하는 사회적인 관계를 유지할 뿐 아니라, 때론 사회적인 메시지도 전달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사회적’이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베는 반 사회적(anti-social)으로 보일 수 있다. 실제로 일베 게시판을 통해 패륜적이고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던 사건들이 벌어졌었다. 일반 사회의 도덕관념과 윤리의식에 반대하는 행위들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일부 사건과 이용자 때문에 전체를 평가하고 단정하는 일은 항상 조심스러워야 한다. 일베를 반 사회적이라고 느끼는 대부분은 정치적의 반대항, 혹은 입장들에 서 있는 불편함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5.18을 비하하는 것을 견딜 수 없는 상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일베는 다른 사회를 살아가는 낯선 존재들처럼 느껴지게 된다. 사회는 이렇게 다양한 사회적 군상들의 집합체이다. 일베는 그 사회 안에서 그들만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공유하는 사회적 과정을 통해 정서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중이다.

▲ 일베 전라도 비하 캡처
일베의 성취와 성과

최근에는 일베 사상(?)이 소수 일베충들만의 생각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반사회적이라고 느껴지는 주장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총리 후보자도 서슴지 않고 이야기하여 자진 사퇴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인선을 살펴보면 일베충들이 우리 사회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의심하게 된다. 오히려 일베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더 반 사회적으로 보는 집단과 계급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오히려 일베가 소신처럼 받아들여지기까지 한다. 사회적이거나, 반사회적인 것은 입장에 따라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일베가 논의 대상으로 격상 된 이유는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일베 게시글을 마치 설득력 있는 주장쯤으로 인용하며 보도하였기 때문이다. 언론이라는 이데올로기 장치에 의해 호명된 일베는 어떤 청년 보수 세력의 망탈리테(mentalites)로 포장되며 상징적 위상마저 쟁취하였다.

결국 일베를 좋게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은 일베를 대처하는 입장으로 무시하거나, 적대적으로 바라보거나, 상대주의적인 예외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선택하게 된다. 대부분 무시하는 것이 에너지를 덜 소모하는 편리한 선택이다. 적대적인 입장으로 일베를 ‘사회적 (적대) 대상’으로 설정하며 사회와 반사회적 구도로 상징투쟁에 참여하는 것이다. 일간 워스트와 같은 사이트를 통해 일베를 조롱하면서 냉소하지만 아직까지 일워는 일베처럼 강력한 공동체를 형성하지도 사회적인 영향력을 갖지 못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로 기능할 뿐이다. 상대주의적인 입장은 일베를 ‘문화적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불편하지만 용인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크게 보면 무시하는 입장과 다르지 않다.

사회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cultural) 모두 단지 사건이나 현상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상징 투쟁이나 진화과정을 통해서 사회, 문화적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일베는 여러 논란과 관심을 통해 우리 사회 내에 구조화되었고, 지속적인 그들의 행위는 문화가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그들 나름의 문화 생산을 통해 사회를 교란시키는 사회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강한 정서적 공동체로서의 일베

일베의 분명한 성취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언어세계와 스타일을 개발하고 공유해 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서 스스로 일베충이라는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였다. 이는 하위 문화적 행태로 상징적 저항 행위라 싫지만 인정 할 수 있다. 이러한 행위들이 다른 사회의 행위로 전이 될지 집단 내부적 의례 행위에 머물지는 지켜보아야 한다. 하지만 일베의 용어가 이미 일부 연예인들이나 청소년들의 은어로 활용된다는 것에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일베는 온라인의 특성상 자유롭게 노출되면서 특정 정서를 공유하는 담론 공동체적인 지위를 지니게 되었다. 어쩌면 왜 일베충들이 우리 사회에서 등장하였고 그들은 왜 그러한 공감대를 형성하였는지를 분석은 의미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을 새로운 우익 세대가 탄생하였다고 평가하며 해석하는 것은 과도한 면이 있다.

한국의 온라인 커뮤니티의 생성되고 해체되는 역사 속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무리(디씨의 막장갤러 등)들이 자연스럽게 뭉쳐진 경우일 뿐이다.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한 때 주목을 받았고, 유행하기도 했지만 그 자체가 사회를 대체하거나 중심적인 위치를 갖지 못하고 주변화 되거나 소멸하였다. 일베 역시 언젠간 소멸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베가 한낱 온라인 커뮤니티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해 보인다. 일베에서 여러 정치적인 오프라인 행동이 제안되지만 그러한 행동들이 구체적으로 실천된 경우는 별로 없다. 하지만 일베충들은 기존의 온라인 커뮤니티와 달리 자신들의 비뚤어진 가치관을 공유하며 그들만의 사교적 상징 행위와 언어를 창조하며 지속적으로 사회화(socialize) 하고 있다. 그들의 끈질긴 생존력은 바퀴벌레에 비유할 수 있다. 일베가 다른 사이트와 달리 쉽게 수명을 다하지 않을 것 같아 우려스럽다. 게다가 설령 일베가 없어진다 하더라도, 드러난 일베충들은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하여 다른 어디론가 이동할 뿐,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커뮤니티를 넘어 공동체화 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젠 일베 혹은 일베충과 같이 살아가는 법에 익숙해져야 한다.

우리가 일베에게 배워야 할 점들

굳이 불편하게 일베를 꺼내 이야기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하나의 공동체로서 인정받고 완성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사회화 과정과 노력이 중요하다. 하나의 사건으로 사회나 공동체는 구성되지 않는다. 공동체의 구성은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며 독특한 문화를 창출하는 과정 속에서 이룩될 수 있다. 그러한 결과로 일정한 사회에 영향력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지난 세월호 사건 이후 온라인상에서는 많은 애도와 추모의 움직임들이 있었다. 용감한 청년들과 시민들은 청와대를 향해 가다가 연행되기도 하였다. 여전히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움직임과 행동이 있지만 이러한 분위기조차 사그라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일베가 자신들이 겪어보지도 않고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 역사적 사건을 반복적으로 조작하면서 끊임없이 들춰내어 그들만의 사회적인 것들을 재생산하는 점에 비한다면, 우리는 이미 벌어진 세월호 사건을 쉽게 소비하거나 망각한 건 아닐까.

일베는 내용과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원치 않더라도 사회에 일부에 기생하며 (반) 사회적인 것을 사회화하기 위해 그들만의 사회적 생산을 통해, 우리 사회를 (자신들의 의지대로) 변화시키려는 공동체 활동을 지속 하고 있다. 이에 비한다면 세월호 사건 이후 정서적인 공감을 형성하였지만, 이후 어떤 노력을 하였는지 반성하게 된다. 어쩌면 앞으로 세월호의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한 각자의 다짐을 실천하기 위해 배워야 할 점은 일베의 끈질기고 반복적 노력과 끊임없는 재생산 능력이다.

※ 이 글은 문화연대가 격주간 발행하는 뉴스레터 '문화빵' 42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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