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 줌이었다. 5월17일 강릉 정동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삼성전자서비스 경남양산센터 노동자 염호석씨는 정동진 바다에 뿌려졌다. 그는 유서에 “저의 시신을 찾게 되면 우리 지회가 승리할 때까지 안치해 주십시오. 지회가 승리하는 그날 화장하여 이곳에 뿌려주세요”라고 썼다. 부모에게도 같은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그의 죽음으로 동료들은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무기한 노숙농성과 파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40여일 만에 이겼다.
염씨의 죽음으로 촉발된 싸움은 결국 ‘절반의 승리’로 이어졌다. 원청 삼성은 28일 단체협약 조인 직후 염씨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면서 사과했다. 비록 비공개이지만 교섭 과정에 삼성이 앉은 것도 성과 중 하나다. 이들의 동료는 없던 기본급을 받게 됐고,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받게 됐다. 가장 큰 성과는 삼성에서 대규모 민주노조가 생겼고, 첫 단체협약을 체결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76년 무노조경영을 해온 삼성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
30일 동료 천여 명은 영정과 유골함을 들고 정동진에서 제사를 지냈다. 그의 사연과 유서를 담은 축문을 읽어내려갈 때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몇몇은 바닷가를 바라보며 연신 담배만 태웠다. 서울에서 들렸던 함성소리는 반의반으로 줄어 있었다. 제사의 마지막, 바다를 보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때 이미 몇몇은 울기 시작했다. 하얀 화선지가 전부 타들어갈 때까지 움켜쥔 동료도 있었다. 염씨의 어머니 김정순씨를 안고 우는 동료도 있었다.
염호석씨를 바다에 흘려보낸 사람은 염씨의 의형제이자 그와 가장 가까운 경남양산센터 선배 AS기사 염태원씨다. 그는 동생을 바다에 뿌리며 울부짖었다. “호석아,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나이 마흔이 넘은 형은 동생을 계속 하늘을 보며 울었다. 그새 물에 닿은 염씨는 흘러 내려갔다. 바닷물도 하늘도 유독 파랬다. 죽은 지 44일 만에 치러진 장례식, 영결식, 노제… 염호석씨는 동료의 배웅을 받으며 그렇게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