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이준석 전 비상대책위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당 혁신기구 ‘새누리를 바꾸는 혁신위원회’(새바위)를 신설해 30일 발족식을 개최했다. 새바위는 조동원 홍보기획본부장의 건의를 윤상현 사무총장이 받아들여 출범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동원 홍보기획본부장은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광고 카피를 만들었던 이로, 최근 몇 년간 새누리당의 혁신을 주도해왔다. 이번 6.4지방선거에서는 ‘1인 피켓’과 ‘박근혜 마케팅’을 제안해 선거 막판 새누리당의 참패를 막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새누리, 정말로 위기의식 있다
새누리당 윤상현 사무총장의 발언을 보면 새누리당의 위기의식이 느껴진다. 윤상현 사무총장은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새누리당과 정부의 위기는 바로 대한민국의 위기"라며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 새누리당과 정부가 혁신, 또 혁신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윤상현 총장은 "지난 2012년 당명을 바꾸고 당 색을 바꾸고 당의 정강정책을 바꾸고 상향식 공천을 도입하는 등 나름대로 지속적으로 혁신 과제를 실천해 왔지만 당내 수직적·권위주의적 문화에 대한 변화가 미진해 국민들이 아직까지 새누리당의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며 "치열하게 반성하고 혁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윤상현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30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새누리당과 정부가 위기"라면서 당과 정부의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윤 사무총장은 "새누리당과 정부에 대해 고언을 드린다"면서 이같이 밝히고 "우리는 민심을 읽지 못하고 있고, 민심의 요구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이어서 윤상현 총장은 "오늘 새누리당을 바꾸는 혁신위원회, '새바위'를 출범시키려 한다"면서 "우리 스스로 우리 당에 혁신적인 실천 과제들을 제시하고 실천함으로써 '새누리당 2.0' 시대를 열어야 한다. 혁신하면 생존할 것이고 혁신하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총장은 새누리당의 현실에 대해 "우리는 민심을 읽지 못하고 있고, 민심의 요구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라고 정리하면서, "새바위에서는 전당대회 당 대표 후보들에게 국민들과 당원들을 대신해 혁신 과제를 제시하고, 후보를 검증하고 선출된 당 지도부에게 당과 정치 혁신을 위한 실천 방안을 약속하도록 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로 직전 선거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을 앞세워 간신히 선거를 방어했던 새누리당이다. 윤상현 사무총장의 발언은 지방선거 이후 총리 인선의 난맥에서 온 지지율 하락의 국면이, 새누리당으로 하여금 대통령과 거리를 둘 것을 고민하게 만들었다는 인상을 준다.
새누리당 사정을 아는 한 관계자는 “박근혜 리더십이 최악으로 가는 상황에서, 당의 거리두기 방법에 대한 고심의 한수가 아닐까 싶다”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새누리당에는 젊은 의원들 중심으로 이대로 가면 당이 소멸할 거라는 위기의식이 있다. 아직 집권초기라 대놓고 반발하긴 어려운데, 뭔가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야겠다는 절박함은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된다. 근본적으로는 2017년 정권 재창출을 위한 움직임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야권이 새누리당의 새바위 설치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이유를 보여준다. 새누리당은 이권을 중심으로 강하게 결속되어 있다. 야권이 이념 지향이나 운동권 인맥에 따라 분열되어 있는 것과는 다르다. 권력을 상실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그럴 가능성이 보이면 어떻게든 개혁의 시늉이라도 낸다. 야권은 이를 ‘쇼’라고 매도할 수도 있지만, 야권이 유권자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자성해봐야 하는 부분도 있다.
빅데이터 분석으로 민심을 살피는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새누리당의 ‘쇼’가 거듭 반복되었기에 식상하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런데 실패보다 더 안 좋은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야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황이라 봐야 한다. 이영표 해설위원이 알제리전 전반 끝나고 ‘상대가 무엇을 하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것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야당이 아무것도 안 하는 상황에서 새바위가 경쟁력을 가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새바위를 기존 정치논리로 과소평가 해서는 곤란하고 하나의 흐름으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준석 위원장’, 새누리 이미지 쇄신할 수 있을까
새바위의 구성보다 흥미로운 상황은 이준석 전 비대위원이 위원장으로 나섰다는 사실일 것이다. 새바위는 이준석 전 비대위원을 위원장으로 하고 총 12인의 인사로 구성했다. 위원에는 정병국 의원(4선), 황영철 의원(재선), 김용태 의원(재선), 강석훈 의원(초선이며 초정회 간사), 조동원 당 홍보기획본부장, 김철균 제18대 대통령선거 선대위 SNS 본부장, 이윤철 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김대식 열린연구소 대표, 윤보현 전업주부, 고준 당 사무처 차장, 최기영 LG유플러스 사원 등이 이름을 올렸다. 정치인과 당료, 유권자 등이 고루 포진된 구성이다.
▲ 2013년 4월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성산동 CGV 상암에서 열린 tvN 리얼리티쇼 '더 지니어스:게임의 법칙' 제작발표회에서 이준석 새누리당 전 비대위원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준석 위원장은 혁신위원장 선임이 기사화된 후 페이스북에 자신의 심경을 남겼다. 이준석 위원장은 혁신위원장을 “허울 뿐일 수도 있는 직책”이라고 평하면서 “합리적인 논의를 통해 제시되는 혁신의 방안들이 빠른 의사결정을 통해 구체화 되거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바로 활동을 중단하고 내 일상으로 돌아가겠다”라고 설명했다.
이준석 위원장은 그간 새누리당으로부터 재보선 공천 제안 등 다양한 제안을 받아왔으나 “새누리당이 진정한 쇄신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이런 모든 제안을 완강히 거부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은 “하지만 문득 든 생각이 내가 많은 것을 잃어가면서, 내 손으로 의결했던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의 변화라는 그 정치실험이 2년만에 실패로 드러난다면 나에게 매우 아픈 기억일 것 같다”라며 제안을 수락한 이유를 밝혔다. 이 위원장은 “그래서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새누리당에 쓴소리를 던지기로 했다. 처음 구성되었다는 위원회 명단을 받아들고, 더 쓴소리를 했던, 할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건의했고 그 명단도 넣었다”라며 저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이준석 위원장은 새누리당에 요구할 사안들도 페이스북에 정리해서 올렸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0. 6월 4일 지방자치선거에 대한 '예상보다 선전'이라는 당내일각의 모호한 평가를 접고, 민심의 가혹한 심판이었다는 평가를 통해 쇄신모드로 당이 돌입해야 한다.
1. 2012년에 약속되었던 민생 공약들의 파기 및 후퇴에 대해서 지속적인 이행을 촉구할 것이고, 불가피하게 철회했다면, 그 과정에 대한 설명을 국민들에게 성실히 할 것을 요구하겠다.
2. 지난 총선에서 의혹제기인사들에 대한 탈당 권고등을 통해 확보했던 새누리당의 도덕적 우위를 무너뜨린 표절판명 인사 등의 명분도 실리도 없는 복당 등에 대해서 반성하고 다시 윤리적 기준을 강화할 것을 요구하겠다.
3. 전당대회의 결과에 따라서 혁신위원회의 논의물들의 반영여부가 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당권주자들에게 혁신위원회의 결정사항들에 대해서 상세히 전달하고 수용여부를 확인하겠다.
4. 당이 더 이상 대통령에게만 의존하고, 사실상의 읍소마케팅으로 선거를 치르지 않도록 하겠다. 당당한 보수의 정책들로 승부할 수 있도록 권고하겠다.
5. 혁신위원회의 모든 회의와 활동은 SNS와 여타 미디어를 통해 투명하게 공개하겠다.
이러한 요구조건들을 제시하면서 이준석 위원장은 “(위에 제시한 것들은) 어차피 새누리당이 받아들일 의지가 있는 개혁들이면 열흘 만에 할 수도 있는 개혁들이고, 의지가 없다면 몇 년을 옆에서 지적해도 안 될 개혁들이다. 미련 없이 하고 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새누리당이 이준석 위원장을 선택한 것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혹자는 ‘새대매매정치’라는 신랄한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20대 지지층의 이탈을 감지한 새누리당의 ‘정치쇼’라는 것이다. 새누리당 소속 여의도연구원이 최근 대학생 1695명을 대상으로 한 대면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20대 대학생의 선호율은 1.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충격적인 조사 결과를 타개하기 위한 새누리당의 '몸부림'이 이번 인선이지 않겠냐는 시선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쇼라도 할 수 있는게 어디냐. 야권에서는 서른 살 청년에게 혁신기구의 수장을 맡길 수 있는 정당이 있느냐”라는 반응도 존재한다.
새정치민주연합 관계자들의 반응도 엇갈렸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관계자는 “야권은 청년을 내세우지 못한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라고 반박했다. 그 관계자는 “따져보면 비례대표에 청년 몫을 넣어 실질적인 청년세대 국회의원을 만들어낸 것은 새정치민주연합이다. 새누리당은 이준석이나 손수조처럼 비대위원을 잠깐 시키거나 승산이 적은 지역구에 출마시켜 소진시켰을 뿐이다. 억울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른 관계자는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되어 확실히 부러운 부분이 있다”라고 반응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변하지 않는다면 레임덕 가속화할 듯
‘새바위’와 ‘이준석 위원장’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의 문제와 상관없이 이들이 새누리당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 것인지를 전망한다면 썩 긍정적이지 않다. 김종인과 이상돈, 이준석이 비상대책위원이었던 2012년의 새누리당은 정말로 혁신을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당시의 약속이 지향했던 정책적 방향이 모두 뒤집힌 2014년의 새누리당에서 이준석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허울 뿐일 수도 있는 직책”이란 자평이 겸손이 아닐 수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준석 위원장은 정치적 경험은 풍부하지 않을지 몰라도 단순히 ‘포장지’ 역할이나 하고 말 사람은 아니다. 그가 페이스북에 제시한 제안은 구체적이고, 그는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언제라도 그만둘 수 있다고 천명한 상태다.
▲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30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인사청문제도 개선의 필요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생 공약 파기 및 후퇴 해명, 윤리 기준 강화, ‘대통령 의존’ 탈피 등의 요구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지금의 정책방향과 통치 패턴을 정반대로 되돌린다는 것에 가깝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를 수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제로’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이 그러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거리를 두고 이러한 요구를 꾸준히 내세울 수 있을까? 그도 어렵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는 대통령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뿐더러 윤리 기준 강화와 같은 문제는 대통령 보다는 오히려 새누리당에게 더 위협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쇼’도 어느 정도는 그럴듯해야 사람들을 속일 수 있다. 새누리당 입장에서 최선의 플레이는 7.30 재보선 때까지는 이준석 위원장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을 것처럼 구는 것일 게다. 그러나 만약 이준석 위원장이 ‘적당한 수준’에서 속아 주지 않고 도중에 혁신위원장의 자리를 박차고 나오기라도 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런 ‘파국’으로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개혁 요구안의 수용이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재보선을 치르고 참패를 할 가능성은 제법 높다.
그럴 경우 ‘새바위’의 결성은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을 막기는커녕 가속화 페달을 밟는 기제로 작용할 수도 있다. 결국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선택이다. 현재와 같은 통치기조로는 결단코 레임덕을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을 대통령이 해야 한다. 그리 하지 못한다면, 정권재창출에 위기의식을 가진 새누리당이 무언가를 해보려고 한들 더욱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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