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기막힌 제목의 기사 하나를 접했다.

‘[차붐! 질문있어요] 월드컵 경험 발언 둘러싼 홍명보-이영표 설전의 속내는?’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2014 브라질월드컵과 관련, 여러 이슈들에 대한 질문들에 대해 차범근 축구해설위원이 답변해주는 형식의 기사였다.

그런데 제목에 ‘홍명보-이영표 설전’이란 말이 포함되어 있다. 이번 브라질월드컵을 통해 최고의 축구해설자로 떠오른 이영표 KBS 축구해설위원과 한국 축구 대표팀의 홍명보 감독이 설전을 벌였다고? 믿기 힘든 말이었다.

내용을 살펴봤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27일(한국시간) 한국이 벨기에에 패해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된 직후 홍명보(45) 감독과 이영표(37) KBS 해설위원의 상반된 견해가 큰 화제가 됐다. 홍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우리가 많이 부족했고 특히 내가 많이 부족했다"고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선수들은 아직 젊다. 미래가 촉망하다. 한국 축구는 발전해야한다. 선수들은 좋은 경험을 했다. 앞으로 더 도전하고 발전해야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위원은 "우리는 늘 월드컵에서 강한 상대와 싸웠다. 그런데 선수들이 이번에는 기대했던 것만큼 체력 준비를 제대로 못했고 경험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한 뒤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다. 선수들이 증명하지 못했다. 월드컵에 경험 쌓으러 나오는 팀은 없다"고 꼬집었다. 홍 감독의 발언을 이 위원이 정면으로 반박하는 듯한 모양새여서 그 의도에 많은 궁금증이 일었다. 차범근(61) SBS 해설위원은 이 논란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차붐! 질문있어요] 코너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Q : 한국이 16강에 탈락하기는 했지만 얻은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큰 실패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성공, 무엇이 있을까요.

A : 홍명보감독이 좋은 경험을 했다고 했는데, 이영표 위원이 월드컵은 경험 쌓으러 오는 게 아니라고 했다면서 누가 나한테 묻더라고. 홍명보 감독이 월드컵 출전을 경험 쌓기 위해서 나온 거라고 한 얘기는 아니었을 거야. 지금 상황에서 그나마 얻을 수 있는 게 있다면 경험이라는 거였겠지. 4년 후 월드컵에서 지금 대표팀의 주축 선수들은 선수로서는 아주 좋은 연령대를 맞이하게 될 거야. 또 유럽 구석구석에 유망한 어린 선수들이 많이 있는데 그 즈음에는 합류할 수 있을 것이야. 나야말로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경험을 소중하게 잘 썼으면 좋겠어. 홍명보 감독 역시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야.

여기까지 읽고 과연 이영표 위원과 홍명보 감독이 설전을 벌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사실 당시 홍 감독의 인터뷰와 이 위원의 코멘트는 포털사이트에서 ‘이영표 일침’이라는 키워드로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서 한참 동안 상위권에 랭크가 된 바 있다.

▲ 조우종 아나운서, 이영표 해설위원 KBS2 월드컵 중계화면 캡처
한 언론이 이영표 위원의 멘트를 홍명보 감독의 인터뷰 내용 가운데 ‘선수들은 좋은 경험을 했다’고 말한 부분을 반박하면서 일침을 가했다는 식으로 기사를 쓰자 수많은 언론이 이를 그대로 ‘받아쓰기’하면서 ‘이영표 일침’이라는 키워드가 포함된 수많은 기사를 쏟아냈고, 이를 수많은 누리꾼들이 검색을 하면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문제는 이영표 해설위원이 했던 멘트가 홍명보 감독의 인터뷰 가운데 ‘선수들은 좋은 경험을 했다’고 말한 부분을 반박하면서 홍 감독에게 ‘일침’을 가한 것이냐 하는 것이다.

만약 홍명보 감독이 인터뷰에서 “우리 팀에 어린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원래부터 이번 브라질월드컵에서 우리 팀의 목표는 월드컵 무대에 대한 경험을 쌓는 것이었다”고 말했다면, 이영표 위원의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라는 멘트가 ‘반박’ 내지 ‘일침’이 됐을 수 있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의 인터뷰 어디에서도 이번 브라질월드컵 대표팀의 목표가 16강 진출, 8강 진출이 아닌 단순히 ‘경험 쌓기’라고 한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홍명보 감독은 16강 또는 8강이라는 목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브라질월드컵에 도전했지만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그래서 대단히 실망스러운 지금의 상황이 어린 선수들에게 좋은 경험이 됐을 것이란 말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영표 위원은 홍명보 감독이 말한 내용 가운데 ‘경험’이라는 단어를 모티브로 월드컵 대회가 갖는 의미에 대해 원칙적인 코멘트를 던진 것이다. 당대 해당 국가의 대표팀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성취를 월드컵에서 이뤄야 하는 것이 맞는데, 우리 대표팀은 그렇지 못했다는 원론적인 평가를 내린 것뿐이다.

그렇다면 결국 이영표 위원의 말은 ‘일침’이니 ‘반박’이니 할 수 있는 수준의 멘트도 아니었고, 홍명보 감독과 ‘설전’을 벌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 홍명보 인터뷰 KBS2 월드컵 중계화면 캡처
그렇다면 언론에 의해 이영표 위원이 홍명보 감독과 대표팀 선수들에게 일침을 놓은 것으로 규정된, 홍명보 감독과 이영표 위원 사이에 설전이 벌어진 것으로 규정된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보기에 따라서는 언론이 홍 감독과 이 위원 사이에서 이간질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는 상황이다.

결국 언론은 고의든 고의가 아니었든 홍명보 감독과 이영표 위원의 멘트 내용을 잘못 해석한 것이고, 잘못된 해석을 바탕으로 자극적인 기사를 생산해냈다. 좀 더 단정적으로 말하자면 대단히 고의성이 짙다.

글쓰기와 말하기를 ‘업(業)’으로 삼고 있는 언론이 이런 식으로 고의성 짙은 오류를 범한 것은 그야말로 업무상 중과실이다. 만약 데스크에서 이런 식의 보도를 그대로 통과시켰다면 이는 그 언론사 전체의 수준이 그 정도 수준임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언론이 스스로의 수준을 깎아 내리면서까지 이 같은 부실한 보도를 쏟아낸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네이버라는 거대 검색 포털 사이트에서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른 ‘이영표 일침’이라는 키워드로 돈을 좀 벌어보겠다는 얄팍한 장삿속이 만들어낸 조직적 오보라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한 가지 가능성은 홍명보 감독의 대표팀 구성과 운영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일부 언론이 홍명보 감독을 브라질월드컵 16강 진출 실패의 희생양으로 삼기 위해 그의 멘트를 왜곡해 해석했고, 이를 이영표 위원이 반박하고 일침을 놓은 것으로 보도함으로써 홍명보 감독의 능력과 인식 수준에 흠집을 내고자 했을 가능성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 배경이 어느 쪽이든 성격상 비겁하고 한심한 행태라는 데는 별반 다를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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