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 무노조 경영을 고수해 온 삼성에서 첫 ‘임금 및 단체협약’이 체결됐다. 28일 삼성전자서비스와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단체협약의 골격인 기준협약안에 합의했다. 전면파업과 삼성전자 사옥 앞 노숙농성 41일차, 삼성 내 첫 대규모 민주노조가 이룬 성과다. 노조는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 농성장에서 찬반투표를 열고 총 투표인원 610명 중 찬성 534표(찬성률 87.5%)로 단체협약을 체결키로 결정했다(재적 982명, 투표율 62.1%). 반대는 75표로 12.3%였다. 기권은 없다. 노사는 이날 밤 즉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조인식을 진행할 계획이다.

앞서 26일 노사는 ‘원청’ 삼성이 참여한 교섭에서 ‘실무교섭 주요쟁점’ 의견일치안을 합의한 바 있다. 삼성과 노조는 △삼성이 고 염호석씨 관련 애도·유감·재발방지 노력 내용과 교섭타결 보도자료를 내고 △2달 이내 폐업센터 소속 조합원에 대한 고용을 승계하고 △타임오프 9000시간(6명 이내 분할 사용) 및 사무실 보증금 1억 원 지원 등 노조활동을 보장하고 △급여체계를 ‘기본급(120만 원)+건당 수수료(기준 60건 이상 건당 2만5천 원, 다만 편차 인정)’로 표준화하기로 합의했다.

▲ 28일 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소속 조합원들이 단체협약 찬반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기준 단체협약’은 의견일치안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A4용지 총 14쪽짜리 이 단체협약은 1장 총칙, 2장 조합활동, 3장 인사, 4장 고용안정, 5장 임금, 6장 근로시간 및 휴일 휴가, 7장 남녀평등과 모성보호, 8장 산업안전보건, 9장 복지후생, 10장 단체교섭, 11장 노사협의회, 12장 노동쟁의, 13장 부칙으로 구성돼 있다. 전규석 금속노조 위원장과 한국경영자총협회 남용우 노사대책본부장(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교섭 대행)이 서명했다.

다만 각 센터별로 복지수준과 평균 수리건수 등이 다른 까닭에 각 센터 노사는 기준협약안을 바탕으로 임금 및 단체협약을 맺어야 한다. 단협 중 ‘복지후생’ 항목은 ‘각사 취업규칙 상 복리후생 규정 반영’으로 돼 있다. 센터 노사가 임금 및 단체협약서를 날인하기로 한 기한은 기준협약 체결 일주일 이내다. 노사는 임·단협을 7월1일부터 적용하기로 합의했다. 이밖에도 노사는 노조활동 관련 민형사상 고소고발을 취하하고, 각 센터 사장들은 구속된 노조 간부들에 대한 석방탄원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노조는 “절반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노조는 원청 사용자를 비공개 교섭 자리에 이끌어냈고,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와 을지로위원회(위원장 우원식 의원)가 삼성을 압박해 ‘전향적 교섭’을 이끌었다. 지난해 7월 “생활임금” 등을 요구하며 노동조합을 만든 뒤 천안센터 최종범씨, 양산센터 염호석씨 등 2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조는 지난달 19일부터 삼성 사옥 앞에서 노숙을 벌였다. 노사 간 상호쟁점에 관한 합의서에는 고 염호석씨와 관련해 ‘원청’ 삼성이 사과하는 것으로 명시돼 있다.

▲ 28일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 중 일부. (사진=미디어스)

이번 노숙농성과 단체협약 체결의 가장 큰 성과는 삼성이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노조활동을 보장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기본급 급여체계를 만든 것도 큰 성과로 볼 수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간접고용노동자들은 그 동안 기본급 없는 100% 성과급제(건당 수수료)였다. 게다가 이들의 월급에는 회사 경비로 처리해야 할 유류비, 통신비 등이 포함돼 있었다. 실무교섭 간사를 맡은 금속노조 경기지부 조건준 교육선전부장이 “수십 년 동안 교섭을 해오면서 노조도 사측도 정체를 제대로 모르는 임금체계는 처음 봤다”며 “이런 임금체계를 근본적으로 없애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권영국 변호사는 이날 <미디어스>와 인터뷰에서 “삼성에서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 자체가 큰 성과”라며 “특히 노동자들이 싸워서 교섭을 이끌어 단체협약 체결을 이끌어냈고, 삼성이 실질적으로 교섭을 지휘하도록 이끌어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사실상 전권을 쥐고 있는 원청인 삼성이 사용자성을 부정할수록 교섭이 지연되거나 교섭에 장애가 됐다”며 “이건 삼성이 직접 교섭에 나와서 노사문제를 해결하는 게 옳다”고 덧붙였다.

한편 노조는 30일 오전 서울에서 장례영결식을 진행한 뒤 염호석씨가 발견된 정동진에서 노제를 치를 계획이다. 노조는 이날 오후 양산센터로 이동, 이튿날인 7월1일 오전 노제와 행진, 11시에 하관식을 진행할 계획이다. 염호석씨는 유서에 “더 이상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보질 못하겠으며 조합원들의 힘든 모습도 보지 못하겠기에 절 바칩니다”, “저의 시신을 찾게 되면 우리 지회가 승리할 때까지 안치해 주십시오”, “지회가 승리하는 그날 화장하여 이곳(정동진)에 뿌려주세요”라고 썼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