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살아갈 용기>

저자 크리스토프 앙드레 지음 | 이세진 옮김

출판 더퀘스트 펴냄 | 2014.05.23 발간

거절을 못해서 생긴 일이었다. 1년 넘게 만난 적 없고 페이스북으로만 소식을 접하던 사람에게 갑자기 전화가 왔다. 사회적 의미가 있는 소셜 페스티벌을 하는데 재밌을 것 같으니 함께해보자는 것이었다. 설명을 듣고 “재밌을 것 같네요” 한 마디 했다가 회의에 나가게 됐고, 그러다 행사 당일 사회를 보라는 제의를 받았으며, 소셜 페스티벌을 홍보하면서 밝힌 참여하는 사람들 명단에 나까지 올라가 있었다…. 뭔가 발 빼기엔 애매한 상황이 돼있었다. 난 내가 거절을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거절 잘하고 잘 받아들이기 위원회(거잘잘받, www.facebook.com/geojeol)’도 만들고 위원장을 자처했는데….
나는 일을 크게 벌이는 걸 귀찮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작고 소소하고 헐렁하게, 해당 주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술이나 마시고 얘기나 나누는 모임을 원했는데, 그는 크게 홍보하고 꽉 짜인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려 했다. 그와 내가 가지고 있는 지향점이나 정서가 달랐기에 나는 그 행사에 크게 재미를 느끼지 못했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내적 동기가 부족했다.
그렇다고 그와 친한 것도 아니었고, 그 행사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내게 득 될 것도 없었다. ‘동원’됐다는 감각으로 회의에 나가고 행사에 가니, 가서도 투덜거리게 됐다. 투덜거리는 자신을 보며 또 자괴감이 들었다. 기왕 벌어진 일, 주어진 상황에 충실해야 할 텐데 나는 왜 이렇게 투덜거리고 현장에 나와 열심히 하려는 사람들의 의욕을 꺾는 걸까 반성하다가, 이게 다 애초에 거절을 못해서 생긴 일이라는 걸 환기했다.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들, 자괴감에 빠져있는 사람들, 자존감이 낮아진 사람들은 크리스토프 앙드레의 <나답게 살아갈 용기>를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크리스토프 앙드레는 자존감 관련 저서를 여러 종 낸 프랑스의 정신과 전문의이다. 국내 소개된 책으로는 <나라서 참 다행이다>, <사람들 앞에 서면 나는 왜 작아질까>, <안고 갈 사람, 버리고 갈 사람>, <화내도 괜찮아, 울어도 괜찮아, 모두 다 괜찮아> 등이 있다. <나답게 살아갈 용기>는 내가 읽어본 그가 낸 책 중(다 읽어보진 못했고 몇 권만 읽었다) 가장 쉽고 재밌었다. 틈틈이 만화가 삽입돼서 그런가?
특히 삽입된 만화 가운데 하나인 ‘거절 못하는 에르베의 하루’는 심금을 울렸다. 멀리 사는 친구가 차를 고장 났다고 태워달라고 하는 부탁을 거절 못해 피곤을 무릅쓰고 그를 태워주고(하지만 그 친구는 별로 고마워하지도 않고 차 안에서 담배까지 핀다), 사장이 일폭탄을 떠넘겨도 항변 한 번 못하고, 점심시간 식당의 종업원이 주문을 늦게 받은 데다가 요리까지 잘못 가져다 줬는데 종업원에게 안 좋게 보일까봐 팁까지 후하게 놓고 나오고, 보고 싶은 축구중계가 있었지만 여자친구의 하소연을 두 시간이나 들어준다. 이 분 최소 호구왕.
거절을 했으면 하루가 덜 고달팠을 텐데! 에르베씨처럼 고통 받지 않기 위해서는 '올바른 자기주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상사와 연봉협살을 하거나 상인에게 물건값을 깎아달라고 하면서 마음이 마냥 편하기만 한 사람이 있을까? 거절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나? 칭찬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나? 상대가 원하는 것,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을 감안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것,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을 지나치게 불안해하지 않으며 말하기, 이게 바로 ‘자기주장’이다. 따라서 올바른 자기주장은 공격적인 태도와 자기를 억제하는 태도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타인의 생각과 욕구를 무시해도 안 되지만 그것만을 고려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자기주장을 펼친다는 것은 고슴도치처럼 바늘을 곤두세우지 않되 만인의 신발털이 노릇은 집어치우는 것이다. 자기주장의 결여는 불안증이나 우울증 같은 심리적 문제들과 자주 결부된다. 그러한 문제들이 병적인 증상들까지 유발하지는 않더라도 절망적인 체념, 개인으로서의 자유와 자율성이 제한당하는 느낌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p.36-37)
인간이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자기의식(자기 자신에 대해 묻고 스스로 “나는 누구?”“여긴 어디?”와 같은 의문을 스스로 제기하는 것)’과 ‘타인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는 능력(지금 저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나한테 뭘 기대하는 거야? 저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과한 자기의식을 가지다가 ‘난 어떤 사람이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잖아! 내가 월 할 수 있지? 뾰족이 잘하는 것도 없잖아!’와 같은 부정적인 사고의 테크트리를 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과도한 자기의식을 가지고 상대방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다보면 자기주장이 부족하게 될 수 있고, 진정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못하게 된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볼까 걱정하고 사이가 나빠지는 것을 염려하며 거절이나 요구를 못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주장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자기주장을 잘 하는 것이 ‘자존감’을 높이는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 자존감은 자신과의 내면관계, 자기 자신에 대한 판단과 관계있는 말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들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이다. 글쓴이는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일단 자기주장을 잘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의 행동방식과 우리의 세계관, 자아관은 지속적으로 상호작용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행동을 바로잡으면 타자들과 주변 세계에 그 영향이 미치고 주체는 관찰자 또는 피해자 입장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나도 내 자리를 차지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어”)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상황을 바꿀 수 있어”)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p.44)
훈련법은 단순하다. 하고 싶은 말은 일단 해보는 거다. 그리고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감정을 직시하고, 그 감정이 어떻게 차츰 저절로 사라지는지 깨닫는다. 이런 훈련을 반복하며 소소한 성공을 거두고, 그것이 반복되게 되면 자신감이 붙고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다고 한다.
단 한 명의 행인에게 길을 물어봤는데 그 사람이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면 이따위 연습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 쉽다. 그러나 열 명의 행인에게 길을 물어보면 (보통) 그중 여덟 명은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줄 것이다.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에는 일회성에 그치지 않는 반복적인 시도가 이롭다. 실패를 참아내는 힘을 기르자. (p.74)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좀 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글쓴이는 “때로는 불완전하고, 때로는 바보 같은 소리도 하고, 뭔가를 멋지게 해내지 못하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조언한다. 제 때 거절을 못했다는 이유로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투덜거렸던 못난 나도, 있는 대로 받아들여야겠다.
참을 건 참고 요구할 건 요구하는 좋은 친구관계를 자기 자신과 맺어보라는 뜻이다. 좋은 자존감은 자기를 연인처럼 떠받드는 게 아니라 그저 가장 친한 친구 대하듯 솔직하지만 따뜻하게 다루는 것이다. 우리는 실패를 경험한 친구에게 “넌 바보천치야, 똑똑한 체하더니 잘됐구나!”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런 박정한 말은 사실도 아니거니와 친구를 더욱 기운 빠지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기 자신에게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사실 굉장히 많다. (p.75)
<나답게 살아갈 용기>에서는 이밖에도 ‘건강염려증’ ‘외모 콤플렉스’ ‘우울증’에 대해 언급한다. 요약하자면 완벽주의와 강박에서 벗어나라는 것, 자신이 그런 증상을 가지게 된 사연을 돌아보고 직시하며 극복하라는 것, 누구나 완벽할 수 없고, 실패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자기수용’을 하라는 것이다. 자존감 관련 챕터 내용과 상통한다.
결국 ‘나답게 살아갈 용기’는 남의 시선과 의견에 너무 휘둘리지 않고, 높은 자존감을 유지한 채 자기주장을 표하는 데에서 나온다. 나는 그런 용기를 갖는 것이 개인을 구원하는 일(더 이상 ‘불행한 호구’는 되지 맙시다. 호구로 살고 있지만 행복하다면 그건 뭐…존중하겠습니다)일 뿐만 아니라 사회를 혁신하는 초석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의 요구에 의심하고, 거절할 때는 거절한다면 불합리한 구조도 개선될 수 있지 않을까? 사회를 이루는 개개인들이 두려움 없이 ‘자기주장’을 펼치고 서로의 말을 귀담아 들으며 소통의 의지를 다질 때 더욱 ‘민주적인’ 사회가 될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거절 잘 못하는 호구왕, 남의 언행 하나하나에 의미부여하며 행동의 제약을 받는 사람들, 자주 고독을 느끼고 그걸 즐기며 자기세계에 깊이 침잠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거잘잘받’ 위원회(www.facebook.com/geojeol)의 문도 열려있다.)
잉집장
<월간 잉여>는 잉여를 위한 잉여에 의한 잡지입니다. 15호까지 발간됐습니다. 이름만 월간 잉여임. 갈수록 발행텀이 길어지고 있음. 발행인 겸 편집인이 게으른 탓입니다. 그 발행인 겸 편집인이 저임. 최근 이상한 웹진 커뮤니티 사이트도 만들었는데 놀러오세요. http://ingchu.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