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코미디인가 현실인가. 박근혜 대통령과 이 정부가 사람들의 농담을 실현시켰다. 청와대에서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임을 반려하고 유임시키겠다고 밝힌 것이다. ‘참극’ 수준의 인사였던 문창극 이후 총리인선의 절차를 밟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새 총리인선이 박근혜 정부 레임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세간의 우려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이다.

정홍원 총리의 사임 표명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의 차원이었다. 정홍원 총리가 유임된다면 정권 차원에선 ‘6.25 전쟁 이후 최고의 사건’이라 불리는 이 참사에 책임지는 사람이 누구도 없게 된다. 잡힌 것은 승무원이요, 해체된 것은 해경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심지어 검찰은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였던 유병언조차 검거하지 못하고 있다.
이 ‘사태’가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박근혜 정부가 한국 사회의 개혁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자 진실이다. 오너일가가 경영하는 재벌중심의 한국 자본주의를 지금 상태로 유지하고 진압과 통제에만 유능할 뿐 수탈자에 대한 규제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에는 관심이 없는 국가기구를 보존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다. 혹은, 이것이 문제라는 것은 알고 있을지라도, 고작 대통령의 ‘수첩인사’를 포기할 수 없기에 그 문제는 제끼겠다는 의지의 표출이다.
▲ 박근혜 대통령은 26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낸 사의를 60일만에 반려하고, 유임시키기로 전격 결정했다. 지난 3월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박 대통령과 정 총리가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대통령의 보신과 안위가 국가공동체보다 위에 있다고 믿는 한심한 사람들이 나라를 통치하는 것이 작금의 실정이다. 박근혜 정부의 선택은 당장의 레임덕은 막을지도 모른다. 야권은 박근혜 정부의 결정을 성토하겠지만 국무총리에 대한 청문회 정국을 만들 수 없게 됐고, ‘김문수의 꿈’도 물거품이 되었다. 새누리당은 일단 대통령과 청와대의 통제에 고분고분 따를 것이다.
하지만 ‘87년 체제’의 시계는 대통령에게 5년 이상의 임기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가 무슨 짓을 하든 박근혜 대통령이 다시 대선에 도전할 수 있다면 그는 여전히 당선가능성이 높은 후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헌법에 의해 금지되고 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시시각각 끝나가는 가운데, 국가는커녕 제 당파의 이익조차 도모하지 않는 보수정당의 미래는 어두워져가고 있다.
어쩌면 정홍원은, 야당의 무능에만 기대는 ‘하루살이 정권’에 어울리는 ‘하루살이 총리’인지도 모른다. 하루에 하루가 겹겹이 쌓여 그는 ‘장수 총리’가 되어가는 중이다. 무사안일의 극치다. 그러나 임기를 ‘허송세월’한 후에 ‘시련’처럼 오는 레임덕은 지금 걱정하던 그것과도 다를 것이다. 그리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한국 사회의 시민들이 짊어지게 되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