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거취 문제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23일 <중앙일보>는 자사 출신인 문창극 후보자를 방어하기 위한 사실상 마지막 초특급 수비를 보여줬다.

23일자 <중앙일보>는 1면에 <류근일·서경석·김동호 등 482명, “문창극 총리 후보자 청문회 해야”>라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다. 보수단체 관계자들이 문창극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막기 위해 나섰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배치는 그간의 1면 편집과 비교하면 문창극 후보자를 방어하겠다는 상당히 적극적인 의지가 엿보이는 지면이다.

▲ 23일자 중앙일보 1면.

<중앙일보>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정치6, 7면에서 낯이 뜨거울 정도의 수위로 문창극 후보자의 방어를 위해 나섰다. 이 지면만 보면 문창극 후보자의 일본 식민 지배 관련 발언이 KBS의 일방적 보도로 왜곡됐으며, 이를 MBC에서 지난 20일 방송된 긴급대담을 통해 뒤늦게 알게 된 국민들이 일제히 문창극 후보자를 지키기 위해 떨쳐 일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 23일자 중앙일보 지면.

같은 소식을 다룬 <조선일보>의 지면을 보면 <중앙일보>의 이와 같은 지면 편집이 얼마나 공격적인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조선일보>는 문창극 후보자 관련 기사를 6면에 실었는데 문창극 후보자의 자진사퇴 또는 지명철회 요구를 점치고 있으며 박근혜 대통령 역시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중앙일보>가 1면에 보도한 보수인사들의 성명 소식은 6면 구석에 아주 작게 실려있다. 이 기사가 오직 2개의 문장으로 구성돼있다는 점은 <조선일보>가 이를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취급한 것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 조선일보 23일자 6면.

이외에도 <중앙일보>는 오피니언30면에 이철호 수석논설위원의 <총리후보 ‘인격살인’ 악순환 끊자>는 제목의 칼럼을 배치해 문창극 후보자를 옹호했다. 내용만 보면 어지간히 억울한 모양이다. ‘언론은 그냥 팩트만 보도하고 청문회와 국민 심판에 맡겨야’라는 발문은 애잔한 감정까지 불러 일으킨다. KBS가 팩트가 아닌 무엇을 보도했단 말인가?

▲ 23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이철호 수석논설위원의 칼럼.

<중앙일보>와 보수인사들은 KBS가 문창극 후보자의 강연 내용을 맥락에 맞지 않게 일부만 편집 보도해 사실을 왜곡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강연 동영상 전체를 본 사람들 중에는 식민지 관련 발언보다 더 심한 발언이 있다고 지적하는 경우도 있다. “하나님이 중국을 터치해야 한다”고 말한 부분이 대표적이다. 일본, 북한과의 외교적 긴장이 첨예한 상황에서 이런 발언을 스스럼없이 내놓고 이에 대한 해명이나 적극적인 사과도 하지 않는 국무총리가 과연 외교적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장담할 수 있는가?

동영상 전체를 보고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은 아마 문창극 후보자와 같이 기독교 신앙과 반공주의가 결합된 극우적 세계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중앙일보>는 최근까지 상대적으로 중도적이고 세련된 논조를 보여주려 애쓴다는 평을 많이 받아왔다. 그것은 <중앙일보> 나름대로의 ‘생존전략’이었겠지만 문창극 후보자의 사례 앞에서는 이러한 ‘생존전략’은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진다.

그 이유는 오로지 자사 출신 국무총리 후보자를 그냥 버려둘 수는 없다는 어떤 의지 때문일 것이다. 이는 잘 되면 권언유착이고 안 돼도 전관예우(?)다. 문창극 후보자가 만에 하나 총리가 되면 <중앙일보>는 등에 날개를 달게 될 것이고 총리가 안 되더라도 상식에 벗어난 논조로 문창극 후보자를 방어한 ‘의리’는 주류 언론계에 오래 남는 선례가 될 것이다. 23일자 <중앙일보> 1면은 사주와 기업(삼성그룹)에 이어 자사 출신의 한낱 정치꾼에게도 무릎을 꿇는 것으로 언론계 ‘판을 바꾼’ <중앙일보>의 슬픈 자화상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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