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뉴스9> 8월 31일 보도 '사찰 만여 곳 ‘정부 종교 편향’ 규탄 법회'
이것저것 바쁘다는 핑계로 글을 미루었다. 사실은 지난 월요일에 냈어야 하는데, 늦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포기할까 싶었는데, 마침 오늘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다보니 문맥이 닿는 일들이 여전히 진행형으로 벌어지는 듯해 후딱 마무리를 짓는다. 대통령을 위한 KBS의 ‘국민과의 대화’ 패널로 장미란과 같은 스포츠스타를 출연시키려 했다는 소문이 어처구니없다. 더욱 가관인 것은 <9시 뉴스>가 불교집회의 피케팅 구호를 화면에서 인위적으로 지워버렸다는 뉴스다. KBS가 오늘의 뉴스를 전하는 데가 아닌, 서글프다고 해야 할지 우스꽝스럽다고 해야 할지 이 시대의 뉴스거리로 전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말 세상이 미쳐가는 건가? 텔레비전이라는 세상, 텔레비전 속의 세상 또한 마찬가지다. ‘건국60주년’ 기념이라는 명목의 생쇼들을 떠올려보라. OECD 선진국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 70·80년 때나 딱 어울릴 듯한 포맷으로 돌아왔다. 올림픽 선수 환영 축하 쇼도 마찬가지. 모든 게 쇼쇼쇼! 신나는 잔치마당. 삶에 찌든, 생의 의욕을 잃은 ‘국민’들을 위한 축제, 감동의 도가니탕이다. 변하지도 않은 진행자들의 규격화된 말투. 전체 신화와 집단 제의. 묘한 분위기. 가사 뒤집어 부르곤 하던 쌍팔년 노래도 다시 무대에 오른다. 명예회복? 복권? 꿈꾸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영원한 대한민국의 찬란한 노래.

쇼 일색이라뇨. 토론도, 다큐멘터리도 다르지 않다. 음모나 지시가 있었으리라 믿겨지지 않지만, 때에 맞춰 모든 채널의 다큐멘터리들이 엇비슷하다. 다른 듯하지만 같고, 새로운 것 같지만 낯설지 않는 연출의 미스터리. ‘산업화와 민주화의 자랑스러운 현대사’라는 구호로 ‘위대한 건국’의 신화를 창조한다. 이쯤 되면 우리의 텔레비전은 20년 전 체제로 이미 복귀했다고 해야 옳지 않나? 공영방송과 상업방송의 구분 없는, 매체진화의 흐름을 배신하는 야만적 반동. 역사의 진행을 거스른 말 그대로의 퇴행. 상식 위배, 이성 침탈의 낡은 TV를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지켜보게 되었다. 비극인가, 코미디인가?

무엇보다 참담한 것은 누구보다 신뢰성 높고 영향력 많다는 한국방송 KBS의 뚜렷한 역진현상이다. 새 사장이 임명되고, 그가 새롭게 간부진을 구성하고, 그래서 뭔가 새로운 명령문이 하달되었기에 비롯된 결과인가?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이 가관이다. 너무나 빨라서 충격적이다. 앞선 이야기들은 은밀히 혹은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사태의 일각에 불과할지 모른다. 훨씬 더 큰 계획이 추진 중이지 않겠나? 그 여파가 조직구조에서, 편성에서, 그리고 프로그램에서 속속 나타날 것이다. 악이 선을 구축하고, 표피가 실체를 덮으며, 위가 아래를 제압하는 체제가 KBS 내부에 빠른 속도로 잡혀가는 형국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 말 그대로 ‘국가기간방송’의 잽싼 자세 바꾸기다. 비굴한 말 바꾸기다. 이기적 색깔 바꾸기다. 한 사회의 근간이 되는 대중교통·사회언론 매체로서의 자기역할, 자존심 포기다. 사회 공익적 매체로서의 책무태만이다. 대화를 매개하고, 여론을 발굴표현하며, 위기를 예방·관리하라는 사회적 기대를 배신함으로써,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 갉아먹겠다는 저질의 자살행위다. ‘공정성’이니 ‘중립성’이니 그럴듯한 이념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엉터리 서비스로 일관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해치고, 결국에는 공영방송의 사회적 의미까지도 무화시키는 악의적 음모가 아니고 뭔가?

말이 지나치다고? 쓰다가 말았다고 했는데, 지난 8월 31일 일요일 뉴스를 갖고 계속해 보자. 전국 사찰에서 일제히 정권규탄 집회가 열린 날이다. 부산 어떤 절의 스님은 서구와 이슬람 사이가 아닌, 이 땅의 기독교와 불교 사이에서 종교전쟁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얼마나 무서운 경고인가? 제대로 풀지 않으면 치명적으로 사회를 해칠 수 있는 위기의 징조다. 한국사회가 경제위기만큼, 혹은 그보다 더 위험한 종교간 갈등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다. 대체 이 보다 더 중요한 일, 더 긴급한 사건, 그래서 공영방송이 중대히 다루어야 할 아이템이 어디 있겠는가?

▲ KBS <뉴스9> 8월 31일 보도 '벌초객 안전사고 잇따라…주의 당부'
그런데 막상 보자. 한국을 대표한다는 공영방송, 국가기간방송 KBS의 <9시뉴스>는 이와 관련된 뉴스를 한 꼭지, 그것도 겨우 다섯 번째에 붙인다. 그렇다. 딸랑 한 개다. ‘벌초객 안전사고 잇따라…주의 당부’라는 뉴스와 거의 급이 비슷하다. 벌에 쏘여 다치고 심지어 죽기도 하니, 어찌 이런 뉴스를 무시할 수 있겠나.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추석 때마다 매년 단골처럼 나오는 벌에 쏘인 뉴스와 1만개 사찰의 정권규탄 집회는 무게감이 달라 보인다. 정치적 의미나 사회적 파급의 측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과연 <9시뉴스>는 이 두 사건을 다르게 처리되고 있는가? 직접 가서 확인하시길.

그날의 MBC <뉴스데스크>은 어떠했을까? 불교집회 관련 뉴스가 두 꼭지, 무엇보다도 첫 번째와 두 번째 아이템으로 배정되어 있다. 사건의 비중에 그래도 걸맞은 편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MBC에서도 사람 쏘는 벌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KBS보다 훨씬 더 전진 배치되어 있다. 주말마다 빠지지 않는, 헬기타고 산과 들, 놀이시설과 고속도로를 이리저리 쫒아다니는 소위 ‘휴일 스케치’를 이어 네 번째 오늘의 중요 뉴스다.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다. 선택은 KBS와 MBC 데스크의 특권일 것이고. 그렇지만 시청자로서, 시민의 일원으로서, 냉정한 평가를 마달 수 없다. 현실에 비춰, 상식에 기초해.

공영방송이 한마디로 미쳐가고 있다. KBS가 제 정신이 아니다. 얼마나 지독한 벌의 습격을 받았는지, 그 떼거리의 위협에 시달리는지 모르겠지만, 세상을 떠나 허공으로 도망치는 것 같다. 하늘에 대놓고 허방으로 소리친다. 경제위기의 공포와 함께, 민주의기의 공포와 더불어, 이 땅의 대중들을 빠짝 긴장시키는 종교 갈등의 공포, 종교 전쟁의 위험에 관해서는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위기의 진상을 설명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공영방송과 국가기간방송의 제대로 된 서비스를 스스로 포기한다. 벌 소동으로 귀한 시간을 때운다. 벌벌벌 떤다. 한심한 짓이다. 심각한 일이다.

이 씁쓸한 풍경, 쓸쓸한 작태 속에서 그래도 위안을 주는 사람과 행동들이 있다. YTN의 투쟁의지 결연한 언론 노동자들이 그러하고, KBS 젊은 기자들의 방송독립의 기치 선언이 또 그렇다. 양심의 세력, 양식의 운동. 참 언론인으로서의 자존을 밝힌, 그 두려움을 넘은 용기에 감사한다. 정신 나간 방송, 맛이 간 텔레비전을 내부로부터 빨리 뜯어고쳐주길. 벌에 쏘여 이러하면, 앞으로 하이에나에 뜯기고 이리떼에 씹힐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허한 방송, 불량방송으로의 퇴행을 막기 위한, 내부의 결기와 안으로부터의 실력 행사를 진실로 기다리는 바다. 그 외에 그대와 나와, 우리의 살 길이 없기 때문에. 평등·평화·평온

지금처럼 ‘비평의 무기’를 예리하게 연마하고 정확하게 사용해야 할 때가 있을까? 벼락같은 이성의 도끼질, 결을 거스른 감수성의 대패질에 열중하지 않을 수 없다. ‘래디컬’한 저널리스트로의 변신. 자본권력과 국가권력, 매체권력, 지식권력이 나의 상대다. 가끔 참패당하고 때로는 붙잡고 버티지만, 그래도 결정적인 왼손펀치 한방을 가진 선수로 남고 싶다. 인민은 착하고 또 무섭다. 이들과 함께하는 비평 말고 그 어떤 것이 후기근대, 후기자본의 불모지대를 넘어갈 수 있겠나? 목청 낮춘 채 예의주시하는 보통사람들의 삶, 이들의 언어에 스며들어 비평의 유격전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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