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총리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요청서 제출이 늦춰지는 파행이 지속되고 있다. 16일에 보내려던 요청서가 17일에도 제출되지 않더니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 귀국 뒤에 재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까지 후퇴했다. 22일은 휴일이기 때문에 사실상 23일은 되어야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제출할 수 있다. 그나마 ‘재가’가 아니라 ‘재가 검토’이기에 청와대의 의중은 여전히 확실치 않다.

정치권은 물론 언론들은 청와대가 사실상 문창극 총리후보의 자진 사퇴를 종용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측 뿐만 아니라, 대통령과 함께 지지율이 동반하락하고 있는 새누리당 측에서 그렇다. <동아일보>는 5면 기사 <문창극 낙마땐 김기춘까지 흔들… 깊어지는 靑의 고민>에서 “새누리당 지도부가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국회 처리가 어렵다는 뜻을 청와대에 전달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을 요청한 것으로 18일 전해졌다”라고 보도했다.
같은 기사에서 <동아일보>는 “조윤선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문 후보자의 거취와 관련해 새누리당 지도부와 조율을 거친 뒤 18일 박 대통령에게 3가지 안을 보고했다고 한다. ‘임명동의안 결재 이전에 자진사퇴하는 안’ ‘임명동의안 결재 후 자진사퇴하거나 청문회 후 판단하는 안’ ‘대통령 순방 후 귀국 때까지 임명동의안 결재를 보류하는 안’ 등을 보고받은 대통령이 세 번째 안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라고 전했다.
▲ 19일자 동아일보 5면 기사
하지만 문창극 총리후보자가 사퇴 의사를 보이지 않고 완강하게 버티고 있어 정부 여당으로서도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안쓰러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18일 저녁 MBN은 새누리당 관계자가 문창극 후보에게 "청문회를 거치더라도 본회의 인준 표결에서 도저히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을 전했지만, 문 후보는 '잘 있는 자신을 불러다 놓고 여당이 먼저 흔들면 어떡하느냐'며 강한 불만을 내비쳤다고 전했다. 문 후보가 버티기로 일관할 때 청와대가 지명철회를 선택할 수도 있지만 그랬다간 김기춘 비서실장에 대한 책임론도 확산될 수 있다는 부담스럽단 전망이다.
19일 조간신문들은 이런 교착상황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주문을 내놓았다. <조선일보>는 <長官·수석들도 크고 작은 흠, 검증서 걸러지긴 한 건가>란 제목의 사설에서 문창극 총리후보 뿐만 아니라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와 송광용 청와대 교육문화수석과 김영한 민정수석, 정종섭 안행부 장관 후보자와 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 그리고 정성근 문화부 장관 후보자 등의 문제를 두루 지적하면서 청와대의 검증 시스템을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해당 사설에서 “청와대 인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책임론이 다시 번지고 있다. 여당에서까지 공개적으로 김 실장 인책(引責)을 주장하고 나섰다. 청와대 인사 검증 시스템도 검증해봐야 한다. 지금의 시스템으로 제대로 할 수 없다면 국회와 협의해 별도 검증팀을 상시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사실상 ‘김기춘 책임론’에 동조한 것이다.
▲ 19일자 조선일보 4면 기사
19일 <한겨레>는 아예 <‘인사 참극’의 책임자 김기춘 실장>이란 제목의 사설로 ‘김기춘 책임론’에 불을 지폈다. <한겨레>는 해당 사설에서 “고위 공직자 인사 검증은 청와대 인사위원회가 맡고 있는데, 위원장은 비서실장이 겸하고 있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인사위원장으로서 두 차례나 총리 후보자를 부실하게 검증한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새누리당 유력 당권 주자인 김무성 의원도 ‘김 실장이 인사와 공천에 개입한 것은 잘못’이라며 김 실장 인사 책임론을 공론화하고 나섰다. 김 실장은 스스로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라고 직접적으로 주문했다.
<동아일보>는 인사청문회 요청서 제출을 미룬 청와대의 처신이 어정쩡하고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19일 <동아일보>는 <文 총리 후보에 거취 압박하는 청와대 무책임하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청와대가 인사청문회로 갈 것을 선택하거나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는 식의 분명한 선택을 내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동아일보>는 해당 사설에서 “그들 나름의 기준에서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면 법이 정한 인사청문회를 통해 진의를 설명하고 총리로서 직무 수행에도 문제가 없음을 입증하게 해주는 것이 인사청문회 제도의 취지에 맞다”라고 주장했다. 또 <동아일보>는 “청와대 검증 라인이 놓쳤거나, 알고는 있었지만 새누리당 의원들도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문제가 될 것이라는 판단을 하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후보자 지명을 철회해야 옳다”라고 주문했다. <동아일보>는 “청와대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장관 후보자 7명의 인사청문 요구서까지 덩달아 제출하지 않는 건 국정을 파행으로 모는 일과 다름없다”라고 비판했다.
▲ 19일자 한겨레 3면 기사
그러나 <중앙일보>는 달랐다. <중앙일보>는 <'문창극 인사청문회' 열려야 한다>란 제목의 사설로 사실상 <중앙일보> 출신인 문창극 총리후보의 '사심'을 대변하는 길을 택했다. <중앙일보>는 해당 사설에서 “이처럼 문 후보자에 관한 쟁점의 대부분은 부정부패나 비리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과 사상, 역사관에 집중돼 있다. 사상은 사람의 머릿속에 그의 인격과 함께 들어있는 것으로 타인이 함부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다”라면서, “다만 총리 같은 고위공직 후보자의 역사관은 그의 도덕성과 업무 능력, 자질을 따지기 위해 당연히 검증 대상에 들어가야 한다. 검증의 주체와 방식은 법률과 절차에 따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뤄져야 한다. 언론과 시민사회, 정치권의 사전 검증은 필요하고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이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대체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곤란하다.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의 자의적인 인사권 행사를 막기 위한 입법부의 견제장치인 동시에 주요 공직자에 대한 최종 검증기관으로서의 입법부 고유 의무이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중앙일보>가 말했듯 고위공직 후보자의 역사관은 당연히 검증대상에 들어갈 수 있기에 ‘사상’의 문제임을 거론한 것은 ‘물타기’의 혐의가 짙다. 또한 “주요 공직자에 대한 최종 검증기관으로서의 입법부 고유 의무”가 있다 하더라도 야권의 주장은 문창극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자리에 서는 것이 부족할 만큼 결격사유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지명했을 경우 지명 철회나 사퇴는 불가능하고 무조건 인사청문회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주장은 억지스러운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중앙일보>는 “청와대도 후보자를 스스로 지명해 놓고 인사청문요청서는 국회에 보내지 않는 모순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기 확신 없이 여론과 정치적 계산에 떠밀려 우왕좌왕하는 불안정한 정권처럼 보인다”라며 ‘문창극 청문회’의 필요성을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관계자들은 “(문창극 후보가 약점이 많기에) 사실 청문회에 간다 해도 새정련 측이 손해볼 일은 없다”라면서도 “이렇게까지 비판했는데 청문회 자리에 선다면 우리도 부끄러운 상황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문창극 총리후보의 사심과 이를 옹호하는 <중앙일보>의 처신이 일종의 ‘문창극 딜레마’를 만들어 여권의 커다란 고민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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