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승 숭실대 교수(언론학)는 9월1일치 <조선일보>에 “‘게이트 키핑’ 강화 외치는 방송사장들”이란 제목의 시론을 썼다. 김 교수는 시론에서 “공영방송의 오보나 편파보도, 선정성 등은 많은 경우 방송사 내부의 게이트 키핑 기능 부재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며 엄기영 MBC 사장과 이병순 KBS 사장(?)이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게이트 키핑을 강화하겠다는 언급을 높이 평가했다. “방송개혁의 핵심 중 하나를 건드렸다”고까지 자리매김했다.

▲ 9월 1일 조선일보 35면.
김 교수는 자신의 이런 주장과 판단을 뒷받침하는 논거로 2003~2004년 BBC에서 발생한 ‘앤드루 길리건 사건’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2003년 5월29일 아침 6시7분 (BBC 소속 저널리스트인) 길리건은 BBC 라디오4의 생방송 뉴스프로그램인 ‘투데이’에 출연했다. 길리건은 정부가 이라크 관련 정보를 윤색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보도 내용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취재원을 밝힐 것을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취재원으로 추정된 정보부 내 생화학자 데이비드 켈리 박사가 자살하고 말았다. 길리건은 나중에, 의도하지 않았지만 대본에 없는 멘트를 부주의하게 표현했다고 고백하고 BBC를 떠났다. 사건 이후 BBC는 ‘허턴위원회’를 구성해 조사에 나섰다. 위원회의 관심은 세 가지였다. 첫째, 길리건이 보도할 내용을 간부들이 미리 점검했느냐 하는 점이다. 조사 결과, 간부가 길리건의 뉴스대본을 철저하게 체크하지 않은 채 방송 출연을 허락한 사실을 확인했다. 둘째, 정부 항의에 대한 BBC 경영진의 대처방식이다. 경영진은 길리건의 취재 과정을 철저하게 조사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셋째는 경영진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 문제를 제대로 보고했느냐 하는 것이다. 위원회는 문제 처리 시스템의 작동에 문제가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이렇게 요약한 뒤 BBC의 이 사건과 MBC ‘피디수첩’을 둘러싼 논란이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MBC의 피디수첩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지만 생방송 인터뷰 형식이라는 점에서 생산양식이 (길리건 사건의 생방송 뉴스프로그램인 투데이와) 동일하고 논란의 양상도 유사하다. 어떤 화면이 나가는지 간부는 알지 못한다. 생방송 도중 의도하든 않든 잘못된 멘트가 나갈 허점이 열려 있다. 경영진은 문제가 터진 뒤에도 원인 분석보다 상황을 넘기고 보자는 대책회의에만 골몰했다. 취재 PD들의 보도 태도, 간부의 게이트 키핑, 경영진의 문제처리 방식 등 시스템 전반에 걸친 문제들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이제 MBC와 KBS를 향한 대책이 나올 차례다. 김 교수는 허턴위원회의 결론을 받은 닐위원회가 제시한 대책을 설명한다. “핵심은 간부들의 게이트 키핑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렉 다이크 사장은 생방송 인터뷰 형식의 보도는 간부가 대본을 더욱 세밀하게 체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논란이 있는 이슈는 생방송 인터뷰 형식으로 보도하지 않겠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방송의 공영성 신장을 위해 게이트 키핑은 강화돼야 한다 ….”

김 교수의 주장과 논지는 매우 깔끔해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앤드루 길리건 사건을 정리한 김 교수의 ‘팩트들’에는 몇 가지 매우 심각한 잘못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심각한 잘못들을 검토하기에 앞서, 허턴위원회가 열린 배경은 무엇인지, 길리건의 “잘못된 멘트”가 무엇인지, 이에 대해 허턴위원회가 어떻게 판단했는지를 확인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김 교수가 펼치는 주장의 맥락을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길리건을 포함한 BBC 저널리스트 3명은 데이비드 켈리 박사로부터 영국 정보부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관련 능력을 ‘선정적으로 과장했다’(sexed up)는 제보를 받았다. 구체적으론 ‘이라크가 45분 이내에 대량살상무기를 이용해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영국 정보부의 보고는 상황을 오도하는 과장이며, 정보부 안에서 이런 문제제기가 나오고 있다는 게 켈리 박사의 제보 내용이다. 길리건은 투데이에 출연해, 제보자가 ‘45분이라는 수치는’ “틀렸다”(was wrong)고 말했으며, 이에 대해 “아마도 정부는 알고 있었을 것”(probably knew)이라고 말했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이는 켈리 박사가 아닌 길리건 자신의 추론(inference)이었다. 길리건이 투데이에 출연해 보도한 내용 가운데 잘못이 있다고 인정한 것은 이게 전부다. 영국 정부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공격능력을 선정적으로 과장했음은 켈리 박사와 정보부 안의 취재원들에 기초한 실체적 진실임을 BBC나 길리건은 단 한 번도 부정한 적이 없다.

하지만 길리건의 ‘실수’를 빌미로 삼아 허턴위원회는 영국 정부의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관련 능력을 과장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허턴위원회의 이런 보고를 믿는 영국 국민들의 비율은 매우 낮았다. 허턴위원회가 블레어 정부에 면죄부를 준 논리는 대충 이렇다. ‘위원회에 제출된 증거들에 비춰볼 때, 정부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공격능력에 대한 정보부 내부의 유보적 의견들을 알고 있었다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아마도 정부가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길리건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정보부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공격능력을 과장했는지에 대한 평가는 위원회 소관 밖의 일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블레어 정부는 면죄부를 받은 것이다.

앤드루 길리건 사건에 얽힌 이런 배경을 이해하지 않고서, 이 문제를 단지 게이트 키핑과만 관련되는 사안으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문제설정이다.

이제, 김 교수의 잘못된 팩트들을 살펴보자. 먼저, 허턴위원회는 김 교수가 적고 있는 것처럼 BBC가 구성한 게 아니다. 제보자인 데이비드 켈리 박사가 2003년 7월18일 의문의 죽음을 당한 직후, “켈리 박사의 죽음을 둘러싼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영국 정부가 허턴 대법관을 임명해 구성한 위원회다.

켈리 박사가 자살했다는 김 교수의 단언과 달리, 켈리 박사의 죽음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강력한 타살 의혹이 있다. 제보자인 켈리 박사의 신원을 노출시킨 매체는 BBC가 아니라 신문 매체들이었고, 신원 노출 이후 켈리 박사는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켈리 박사가 제보자인지를 확인해 달라고 언론들이 요청하면, 국방부가 이를 확인해 준다는 정부 차원의 회의가 열렸고, 이를 블레어 총리가 주관했다는 증거가 허턴위원회에 제출되기도 했다. 허턴위원회는 이를 무시했다. 이런 사정들을 감안해 켈리 박사의 죽음을 표현한다면, ‘석연찮은 의문의 죽음’ 정도가 돼야 한다.

길리건이 “대본에 없는 멘트를 부주의하게 표현했다”는 김 교수의 설명도 실상과 다르다. 정확한 사실은, 길리건은 대본이 없이 투데이에 출연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텔레비전뉴스는 “뉴스 생산의 시간적 간격을 불허”하는 한계를 지니는데, 길리건의 ‘실수’도 이런 한계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게이트 키핑이 강화해야 한다는 김 교수의 논지는 맥락을 잘못 짚은 것이다. 길리건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공격능력을 영국 정부가 과장했음을 취재했고, 대담 프로그램에서 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아마도 정부가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충실한 대본 작성을 게을리한 데 원인이 있는 것이지, “뉴스 생산의 시간적 간격 불허”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뉴스 생산의 시간적 간격을 허용하는, 그래서 게이트 키핑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방송보다 훨씬 더 많은 종이신문의 경우에도, 길리건이 저지른 것과 같은 실수는 매우 자주 발생하는 게 현실이다.

허턴위원회의 결론을 받은 닐위원회가 제시한 대책들을 받아들이면서 당시 그렉 다이크 BBC 사장이 “생방송 인터뷰 형식의 보도는 간부가 대본을 더욱 세밀하게 체크하도록 하겠다. 특히 논란이 있는 이슈는 생방송 인터뷰 형식으로 보도하지 않겠다고 누차 강조했다”는 김 교수의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니다. 닐보고서는 “간부가 대본을 더욱 세밀하게 체크”할 것을 제안하고 있지 않다. 대본이 없이 뉴스를 진행한 길리건 사건으로부터 교훈을 끌어내는 차원에서 “BBC 보도의 정확성과 엄밀함은 견고한 증거와 정확한 대본 작성에 기초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프로그램 진행자(presenter)는 자신의 편집자에게 책임을 지도록 한다”고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닐보고서가 ‘논란이 있는 이슈는 생방송 인터뷰 형식으로 보도하지 않는다’고 제안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닐위원회는 “통상적으로, (normally), 심각하거나 비방으로 비화할 잠재성을 지닌 주장(serious allegation)을 제기하는 뉴스는 (프로그램 진행자와 기자 둘이 앉아서 대담 형식으로 뉴스를 풀어가는) 생방송 뉴스 대담 형식(in live two ways)으로 보도하지 않는다”고 밝혔을 뿐이다.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안전한가’ 하는 MBC 피디수첩의 의혹의 제기가 “심각하거나 비방으로 비화할 잠재성을 지닌 주장”에 해당한다고 김 교수가 판단하는지는 알 수 없다.

조선일보를 포함한 일부 신문들은, 피디수첩 사건을 계기로 피디 저널리즘 자체를 비난한다. 간단히 말해 신문처럼 게이트 키핑이 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 역시 시론에서 이런 판단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피디 저널리즘에 게이트 키핑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피디 저널리즘에서 게이트 키핑의 기능은 담당 책임프로듀서가 하고 있다. 김 교수는 자신이 말하는 게이트 키핑 강화가 무엇을 말하는지, 이를테면 게이트 키핑의 단계를 늘려야 한다는 것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김 교수는 게이트 키핑의 강화에 정치가 개입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 부분에 대해선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정치가 개입한 게이트 키핑의 강화는 ‘사전 검열’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간부가 정권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우리 방송들의 과거 기억”을 말하지만, 이는 지금의 현실이기도 하다. 김 교수가 말하는 게이트 키핑의 강화가 제작의 자율성 침해와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돼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디 저널리즘에 훨씬 더 높은 정확성과 엄밀성을 요구할 수 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공격능력을 정부가 과장했다는 실체적 진실을 보도했다는 확신에도 불구하고, BBC 저널리즘의 정확성과 엄밀성을 높이는 작업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길리건 사건이 BBC 내부의 게이트 키핑의 문제였다고 한다면, 지나치게 순진한 발상이다. 그것은 ‘영국 정부의 마음에 들지 않은 보도를 계기로 발생한 정치적 사건’이었고, 따라서 정치권력으로부터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지키는 게 핵심인 사건이었다. 이는 피디수첩을 비롯한 공영방송의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을 겨냥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길리건이 허턴위원회의 보고서가 최종 공개된 직후인 2004년 1월30일 BBC를 사직하며 남긴 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피디수첩, 쌈 시사투나잇, 미디어포커스 등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는 국내의 피디나 기자들의 심정이 길리건과 같지 않을까 싶다.

“허턴위원회의 보고서는 BBC만이 아니라 전체 저널리즘을 전율하게 하고 있습니다 … 개인적으로, 여론이 허튼보고서에 동의하지 않은 것에 위로를 받습니다. 이것이 BBC의 결의를 강화시킬 것이라 믿습니다. 허턴보고서는 BBC나 제가 저지른 실수들에 비해 지나치게 가혹한 처벌을 BBC에 부과하고 있습니다. 그 실수들은 정직한(honest)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그날 아침의 대본없는(unscripted) 인터뷰 보도 - 결코 반복돼서는 안 될 입니다 - 에 포함된 결함있는 두 개의 문장에서 비롯한다고 믿기는 어렵습니다. 그때 나는 45분이란 숫자가 틀렸다는 것을 정부가 “아마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이 말을 한 사람이 켈리 박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것은 제 추론이었습니다 … 그날 아침 인터뷰 보도에서 나는 45분 문제는 실질적 정보에 기초한 것임을 매우 분명히 했습니다 … 나는 반복적으로 말했습니다. 정부가 조작했다고 비난하는 게 아니라 과장했다고 비난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 나는 BBC를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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