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전 사회적 지탄의 강도가 심화되고 있다. 종교·학술·시민사회단체 등이 연이어 문창극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고 나선데 이어 여당인 새누리당의 주요 정치인들까지 같은 요구를 반복해서 내놓고 있다. 여당 지도부는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의 처리에 대해 당론으로 표결 지침을 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인데 이는 사실상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의 처리를 보장할 수 없다는 정치적 판단에 의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상황 때문인지 청와대 역시 17일 예정됐던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의 국회 제출을 언제 하겠다는 단서도 없이 연기해버렸다. 문창극 후보자로서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상황에 빠진 셈이다.

하지만 벼랑 끝에서도 문창극 후보자는 당당하다. 17일 하루 동안 문창극 후보자의 사퇴임박설이 여기 저기서 제기됐으나 문창극 후보자는 사퇴할 마음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일부에서 청와대가 임명동의안 제출을 연기한 것으로 이미 ‘사인’을 준 것인데 문창극 후보자가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스개까지 나왔지만 문창극 후보자는 꿋꿋하다.

▲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1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으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의 본심은 무엇일까? 최소한 기존의 입장에 비해서 후퇴한 것으로 보는 것은 타당한 해석이다. 청와대 측은 국무총리 임명동의안 제출이 늦어진 이유를 박근혜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 일정이 지연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이런 해명에 설득력이 없다는 점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 가능한 것이다.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처리될 수 없다는 상황을 기정사실화 하면 청와대로서는 세 가지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첫째는 문창극 후보자의 지명을 철회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청와대가 인사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고 국무총리 후보자의 지명을 강행했다는 점(물론 우리는 이게 사실이라는 점을 이미 잘 알고 있다)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좋은 선택지라고 볼 수는 없다. 둘째는 국회에서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이 부결되도록 상황을 방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친박 주류가 똘똘 뭉쳐 문창극 후보자를 방어하는 모양새면 모를까, 지금처럼 주류-비주류가 하나같이 문창극 후보자에 대한 비토 여론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여당 전체와 청와대가 반목하는 모양새로 귀결되기 때문에 이것 역시 좋은 선택지가 아니다. 마지막 방법이 문창극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유도하는 것인데 문창극 후보자가 정말로 눈치가 없는 상태이거나 의도적인 무시를 하면 대단히 애매한 문제가 된다.

▲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 (연합뉴스)

문창극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이 여론의 차원에서 찬반격론에 휩싸일 수 있는 정도만 돼도 청와대가 다른 수를 내볼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일간 정례조사에 따르면 17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지지도는 42.7%까지 급락했으며 부정 평가는 50.2%에 이르렀다. 문창극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이 직접적인 타격이 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수치를 참고하면 이 때문에 여당 역시 ‘콜래트럴 데미지’를 입고 있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같은 조사에서 새누리당에 대한 정당지지율은 지난 11일 45.1%에서 17일 38.1%로 6일만에 7.0%p가 하락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정당지지율은 36.3%와 고작 1.8%p차이다.

결국 이러한 상황을 종합하면 문창극 후보자가 자진사퇴를 하는 길 밖에 남지 않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문창극 후보자가 국무총리로서 역할을 빼어나게 잘 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추었다면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을 밀어 붙여 보는 것에 나름 명분이라도 있겠으나 지금 상황은 그런 것도 아니다.

문창극 후보자는 거대 언론 <중앙일보> 출신으로 권력과 살을 맞대며 이해관계를 주고 받아 온 대표적인 ‘언피아’이다. 문창극 후보자는 1997년 대선 국면에서 <중앙일보>가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총재를 지지하는데 앞장섰고 이의 기획이 실패하자 권력의 견제를 받았다. 이후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참여정부 시기 주미대사를 맡던 시기에는 그를 비판하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측 비호를 받기 위해 움직였다는 추측도 제기된다. 이러한 행태 하나 하나를 종합해보면 문창극 후보자는 관피아 등 관료사회 부조리를 척결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할 새로운 국무총리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오히려 그는 ‘권언유착’으로 통칭되는 ‘구악’의 일원이다.

문창극 후보자의 그간 발언이 국제정치적으로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문창극 후보자는 일본 식민 지배가 신의 뜻이었다거나 하나님이 중국을 ‘터치’해 공산주의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한 바 있다. 종교인·언론인으로서야 할 수 있는 발언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본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중국과의 외교에서 실질적 성과를 내보려고 하는 박근혜 정부의 외교 기조를 두고 생각해보면 ‘문창극 국무총리’의 과거 발언은 반드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당장 일본의 아베 신조 정권은 고노담화를 사실상 무력화하기 위한 행보에 들어갔으며 다음 달에 예정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성과에도 국내외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국면이다.

▲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연합뉴스)

문창극 후보자가 삼성에 지나치게 호의적이며 특정 지역에 적대적이라는 사실 역시 국무총리로서 그가 걸맞는 인물인지 의문을 표하게 만든다. 문창극 후보자는 수차례에 걸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그야말로 건비어천가(健飛御天歌)를 지면에 쓴 바 있다. 이 글들은 지금 읽어도 낯이 뜨거워질 정도다. 이런 인물이 과연 어떤 형태의 경제정책을 선호할 것인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그에게 상처를 준 김대중 정부와 참여정부를 너무나 싫어했기 때문인지 특정 지역에 적대적이라는 평가 역시 그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나온다. 이런 인물이 지역주의 극복 등을 위한 국민통합 정책 추진할 수 있겠는가? 없을 것이다.

이상의 사실을 돌아보면 어떤 기준을 놓고 봐도 박근혜 대통령이 문창극 후보자를 국무총리로 밀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방치하는 바람에 문창극 후보자는 드디어 ‘폭탄’의 위상에 도달하게 됐다. 우리 사회와 국민들의 정서에 더 큰 피해를 입히기 전에 이 폭탄은 안전한 장소에서 오늘 내로 해체되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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