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에 있었던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의 대통령 업무보고를 놓고 논란이 뜨겁다. 방송의 산업적 기능만 강조하고 공공적 기능을 외면한 업무보고 내용에도 문제가 있지만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해야 할 방통위가 대통령에게 업무 보고를 한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특히, 대통령이 직접 방통위로 찾아와 업무 보고를 들은 것은 ‘최시중 위원장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고, ‘민영미디어렙 도입·신방겸영 허용’ 등이 담긴 업무보고 내용을 이번 정권에서 반드시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과시한 것이라는 평가다.

▲ 54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미디어행동은 4일 오전 9시 30분, 서울 세종로 방통위 앞에서 '방통위의 대통령 업무보고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미디어스
54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미디어행동은 4일 오전 9시30분, 대통령이 업무보고를 받고 있는 서울 세종로 방통위 앞에서 “방통위는 방통위 설치법 제1조에 따라 대통령에게 업무를 보고할 것이 아니라 추진하려는 모든 내용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사회적 합의를 충실히 반영한 다음 실행해야 한다”며 “도대체 왜 방통위는 자신의 존재를 망각하고 대통령의 애완견이 되길 자처하는 것이냐”고 성토했다.

이들이 근거로 든 법령인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1조는, 방통위의 목적에 대해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높이고 방송·통신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며 방통위의 독립적 운영을 보장함으로써 국민의 권익보호와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영호 미디어행동 대표는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방통위가 대통령에게 업무를 보고하면, 자연스럽게 (방통위에) 집권세력의 업무 지시가 따르게 마련”이라며 “취임하면서 ‘정치적 독립’을 선언했던 최 위원장은 그동안 정치적 독립성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KBS대책회의를 주도하는 등 정부의 방송장악 음모를 충실히 이행해왔다”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대통령의 방통위 방문에 대해서 “이명박 대통령이 방통위의 그간 행보에 대해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라고 평가했다.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도 “행정적 이유로 대통령 직속이 된 방통위가 스스로 정부부처임을 자임하고 나선 꼴”이라며 “방송 독립 대신 정부의 방송장악을 돕고 있는 방통위는 스스로 그 역할에 반대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 위원장은 “대통령이 직접 방통위를 방문해 업무보고를 들은 것은 그만큼 방송을 절대로 놓치지 않고, 직접 관할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며 “또 정권 차원에서 이번 업무보고 내용에 담긴 것들을 반드시 마무리 짓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평소 방통위 건물 주차장(왼쪽)과 이명박 대통령이 방통위에 방문한 날의 주차장 모습. ⓒ미디어스
이명박 대통령 선거캠프의 최종 의사결정 단위인 ‘6인회’ 멤버로 활동한 바 있는 최시중 위원장은 취임 이후 국무회의와 당정협의회에 참석해 ‘정치적 독립을 유지해야 할 방통위원장이 정치적 행보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방통위의 전신격인 방송위원장은 그동안 관례적으로 국무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지난달 17일, 정정길 대통령실장·이동관 청와대 대변인·후임사장 후보 등이 참석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을 일으켰던 ‘KBS대책회의’를 주도한 장본인도 최시중 위원장이었다.

또 지난 6월 23일, 방통위 네트워크윤리팀장은 검찰이 조중동 광고불매운동을 펼친 네티즌을 처벌하기 위한 구체적 기준 마련을 위해 연 유관기관 대책회의에 참석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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