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15일 일본 식민지배 관련 등 그간 문제가 됐던 발언 등에 대해 사과하고, 정부가 17일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하면서 이후 전망에 관심이 쏠린다. 문창극 후보자와 청와대가 이미 ‘정면돌파’를 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국회에서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의 표결에 따라 이후 정치적 상황이 완전히 엇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17일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이 제출되면 국회는 20일 이내에 인사청문 절차를 끝내야 한다. 20일 이내에 인사청문 절차가 종료되지 않으면 대통령은 10일 이내 범위에서 기간을 정해 국회에 인사청문결과보고서의 송부를 요청할 수 있다. 헌법상 국회의 동의를 요하는 국무총리의 경우 임명동의안이 재적의원 과반 출석 과반 찬성으로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되지 않으면 임명이 불가능하다.

▲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1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으로 출근하다 취재진의 질문을 받은 뒤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본회의 표결 가더라도 쉽지 않은 '처리 전망', 새누리당 표단속도 '반신반의'

현재 국회 재적의원 수는 286명이다. 새누리당은 이 중 149석을 점하고 있기 때문에 새누리당이 단일의견으로 표결에 임할 경우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은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일부 초선의원들이 문창극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고 나선 데다가 이재오 의원 등 비주류 의원들이 문창극 후보자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반복해서 밝히고 있어 ‘표 단속’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문창극 후보자의 임명은 실패하게 된다.

여야가 특위원장을 번갈아 맡는 국회 관례에 따라 문창극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특위원장으로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내정된 점도 눈여겨 볼 지점이다. 박지원 의원은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 공보수석으로 재직할 당시 문창극 당시 논설위원의 칼럼 등을 두고 <중앙일보>와 대립하는 등의 악연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문창극 후보자를 감싸는 여당과 야당 간에 상당한 마찰이 불거지면 이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국민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여당으로서는 상당히 힘이 빠지는 상황이 될 수 있다.

▲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1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여권의 임명 강행 분위기에 대해 "일본에서 쌍수 들고 환영하는 사람을 총리 시키겠다는 건 박근혜정권이 아직도 식민사관의 연장에 있다는 것"이라고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게다가 박지원 의원 등 야당이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을 거부하면 임명동의안 처리도 장기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여당 의원이 인사청문특위원장을 맡을 경우 여당 단독으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하고 국회의장이 이를 사실상 ‘직권상정’하는 방법을 쓸 수 있다. 지난해 11월 황찬현 감사원장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바로 이런 식으로 처리됐다. 하지만 야당 인사인 박지원 의원이 인사청문특위원장인 이상 이런 ‘직행코스’는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문창극-박지원 '악연' 변수, 조기 레임덕 국면 오나?

박지원 의원 등 야당 인사들은 청문회에 적극 대응하겠다면서도 가급적이면 청문회 이전에 문창극 후보자가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의 입장에서는 이런 저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문창극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강행할 수밖에는 없는 처지다. 안대희 전 대법관의 낙마 이후 또 다시 총리 후보자가 자진사퇴로 낙마하면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는 조기 레임덕 국면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물론 국회에서의 표결 처리를 통해 문창극 후보자가 낙마하는 것보다 차라리 자진사퇴를 하는 게 청와대로서는 부담이 덜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여당 내에서 문창극 후보자의 사퇴를 주장하는 인사들이 이와 유사한 주장을 내놓고 있다. 대통령이 상당한 의지를 갖고 관철하려고 한 총리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될 경우 여당마저도 대통령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 확인돼 치명적인 정치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 이완구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16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문창극 총리 후보자에 대한 야당의 지명 철회 요구와 관련해 "법에 보장된 청문 절차와 과정이 지켜지는 것이 성숙한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누리당 이번에도 박근혜 거수기? 정치적 결과 국회에 뒤집어씌우려 한단 시각도

이와는 정반대의 관점도 있다. 차라리 국회에서 문창극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부결되는 게 청와대 입장에서 나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그간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등 정치권과 청와대를 분리해서 언급하는 방식을 애용해왔다. 국정원 개혁 및 국정원 직원의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특검 도입 등의 문제에서 국회가 합의하면 처리하겠다는 등의 언급을 해온 것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이 국회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말하면 정작 국회에서는 여당이 사력을 다해 대통령의 의지를 관철하는 것이 지금까지 여당과 청와대의 역할 분담 형태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를 뒤집으면 국회에서 문창극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부결될 경우 청와대의 입장에서는 정치권의 책임을 내세우는 상황을 가정할 수 있게 된다. 청와대는 최선을 다해 총리 후보자를 인선하였으나 정치권의 반대로 임명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청와대는 이러한 결과를 겸허하게 수용하며 다른 총리 후보의 물색 또는 정홍원 총리의 유임 등을 발표하는 방식을 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 경우 청와대로서는 똥물은 뒤집어 쓰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할 수 있다. 만일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자진사퇴하면 이 책임은 총리 후보를 잘못 물색한 청와대가 모조리 뒤집어 써야 한다. 여당 내 비주류가 청와대를 향한 이러한 비난에 가세할 것이다.

국회에서 총리 임명동의안이 부결되는 경우 여당 내 권력지형 구도가 변할 수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새누리당 내에서는 7월 14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주류 대 비주류의 갈등이 점차 심화되고 있다. 임명동의안의 처리 일정에 대해 새누리당 측은 23~24일 인사청문특위를 열고 26일 본회의에서 표결을 진행하자는 입장인 데 반해 새정치민주연합 측은 30일~7월 1일까지 인사청문특위를 진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새누리당이 전당대회를 치르기 전 총리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처리되거나 부결될 가능성이 큰데 이 결과에 따라 주류와 비주류 간의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는 판단도 가능하다.

▲ 16일 오전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사무실이 있는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경실련 회원들이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 지명 철회'를 주장하는 내용의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창극 발 레임덕이냐, 문창극 통한 입김 강화이냐?

만일 국회에서 총리 임명동의안이 부결되면 새누리당은 불과 집권 2년 차에 대통령을 실질적인 레임덕 상태로 몰아간 여당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여당 내부에서는 일종의 ‘자성론’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며 당 내 비주류 인사들은 대통령에게 상처를 입힌 자들로 분류돼 주류-비주류 간 충돌 규모가 상당한 정도에 이르게 될 가능성이 크다. 만일 지금이 집권 말기라면 이러한 상황은 차기 당권주자를 중심으로 한 ‘새로 줄서기’ 국면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지만 불과 집권 2년차인 상황에서는 딱히 차기대권주자 등의 구심점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총리 임명동의안에 대한 역풍으로 주류 후보가 당권을 잡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때문에 어떻게 보면 문창극 후보자의 임명 여부와는 관계없이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지금까지의 통치 기조를 이어갈 수 있는 수단을 계속 확보한 상태일 가능성이 큰 셈이다. 문창극 후보자가 총리로 임명되면 극우·친기업 내각을 활용해 상대편을 찍어 누르는 ‘힘의 정치’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문창극 후보자가 임명되지 않더라도 박근혜 대통령의 여당 내 입김이 오히려 강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래 저래 상처는 남을 수밖에 없지만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 일부 언론이 거론하는 ‘레임덕’은 아직 먼 얘기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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