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때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의 과거사를 말하며 배상 얘기를 꺼냈다. 한.일 양국은 국교 정상화를 하며 "청구권 문제는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다"고 배상문제를 매듭지었다. 그 돈을 받아 포철을 세우는 등 산업화의 종자돈으로 썼다. 이 돈 말고 일본한테 더 받을 것이 있다면 당연히 받아 내야 한다. 그러나 상대방은 "40년 전에 줄 돈을 다 주고 도장까지 찍었는데 무슨 배상을 또 하라는 것이냐"고 나오는 것이다. 우리 외교부 장관은 "배상을 더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일제의 희생자와 유족에게 보다 성의있는 조치를 취하라는 얘기"라고 부연설명했다. 쉽게 말하면 '도장은 찍었지만 조금 더 쓰라'는 얘기다. 이를 뒷받침하는 학자들의 논리도 있다. 위안부 사건 등이 추가로 밝혀졌으니 새로 드러난 사실에 대해서는 협상을 다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일본을 욕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다. 정반대로 일제시대가 '축복'이었다고 말한 사람도 제정신이 아니다. 식민지의 고통은 우리 모두의 상처다. 그래서 큰 소리로 비난할수록 더 애국자가 된다. 그러니 일본에 더 배상하라고 한들 반대할 사람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도장을 찍었다. 잘 몰라서 도장을 찍었다 해도 우리의 책임이다. 할아버지가 무식하고, 사정이 급해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러나 다행히 받은 돈을 알뜰하게 굴려 손자 대인 지금은 어지간히 살게 됐다. 그런데 살 만하게 된 손자 때 와서 할아버지가 무식해 도장을 잘못 찍었으니 돈을 더 내라고 떼를 쓴다면 그 집안을 어떻게 보겠는가. 국가나 개인이나 계약은 계약이다. 계약서는 팽개치고 뒤늦게 떼를 쓰는 모양이 아닐까.

일본에 대해 더 이상 우리 입으로 과거문제를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 해방된 지 6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과거에 매달려 있는 우리가 부끄럽기 때문이다. 우리 아들딸들에게 언제까지 그 굴레를 메고 살게 할 것인가. '일본이 진정한 반성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을 한다. 반성은 일본인 자신의 문제요, 책임이다. 그만한 그릇밖에 안 되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하겠나. 당했던 우리가 오히려 넓은 마음으로 나가면 그들 생각도 달라지지 않겠는가. 아니 그들은 뻔뻔하더라도 국제사회가 우리를 더 평가해 줄 것이다. 보상문제만 해도 억울한 점이 비록 남아 있더라도 살 만해진 우리가 위안부 징용자 문제를 우리 힘으로 해결하자. 이것이 진정한 극일(克日)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 일본에 정작 당당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당당하지 못하고, 이미 끝난 일에 대해서 트집 잡는 식으로 가고 있다. 바로 독도 문제다. 독도는 우리 땅이다. 그 땅을 보고 일본대사가 서울 한복판에서 일본 땅이라고 말하고 있다. 왜 이렇게 됐는가. 정작 당당하게 나가야할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눈치를 보며 주뼛주뼛 어물거렸기 때문이다. (..._
<중앙일보> 2005년 3월 8일자, <[문창극 칼럼] 나라 위신을 지켜라> 중에서
문창극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천박한 인식
▲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청사 창성동 별관으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창극 총리후보가 대학강연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를 일본에 받을 필요가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다시 회자된 문제의 칼럼 일부다. 교회에서 한 연설에 대해 ‘언론보도 왜곡’ 운운하지만, 이 문제는 이렇게 기명칼럼으로 뚜렷한 증거가 남아 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문제제기를 ‘배상’으로 치환시켰고, 배상은 이미 1965년 한일협정으로 끝났다는 일본 쪽의 논리를 지지하는 것을 ‘나라 위신’을 지키는 길이라 주장했으며, 독도 문제가 전쟁범죄 문제보다 중요하다고 천연덕스럽게 주장하고 있다. 인권유린 범죄를 ‘별 것 아닌 일’로 여기지 않는 이상 이러기가 힘들다. 그야말로 야권 지지자들의 머릿 속에 있는 그 편견, ‘일본 극우파 수준의 인식을 하는 꼴통 보수’의 현현이다.
사실 이와 같은 시선은 사람들이 ‘일본 극우파’와 비슷하게 보는 뉴라이트 인사들의 시선과도 거리가 있다. 오히려 뉴라이트 성향의 역사학자들은 기존의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에 맞서 개인의 권리와 행복을 중시하고자 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문창극 총리후보는 본인은 뉴라이트에 찬동한다고 여길지 모르겠으나, 사실상 올드라이트, 울트라 올드라이트에 가까운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이 잘못 되었다고 표현할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몰인식하다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뉴라이트 이영훈 교수가 받은 ‘오해’
2004년 9월 참여정부의 과거사진상규명법에 대한 찬반을 주제로 이루어진 <100분토론>에서 뉴라이트 성향의 역사학자 이영훈 교수는 종군위안부를 ‘자발적 성매매’로 매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전후맥락을 살피자면 이러한 해석은 오해였다.
오히려 이영훈 교수는 "지금 개정중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에서 열거하고 있는 22가지 죄목 가운데, 다른 죄목에 대해서는 이의가 있지만, "일본군위안부의 강제동원에 적극 협력한 자"의 죄목에 관해서만은 그것이 인류 문명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 반인륜의 범죄에 해당하므로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끝까지 추적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토론 이후 이영훈 교수 해명서 내용 중)했다. 실제로 그는 토론이 시작한지 40여분이 지난 시점에 “친일청산은 반대하지만 위안부, 그러니까 전쟁 성노예 같이 보편적인 반인륜범죄는 끝까지 추적해야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영훈 교수가 문제가 된 것은, 젊은 여성들을 전쟁터로 끌고 들어가서 희생시킨 범죄가 조직적으로 일어나기까지 개입한 수많은 사람들, 여성을 끌고 가는데 조력한 조선 사람이나 본인이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군위안소를 이용한 조선인 남성들의 증언 및 자기고백, 반성과 성찰없는 일률적이고 일회적인 법적 단죄의 한계를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그는 과거사 청산은 과거가 현재의 우리를 규정한 모습을 함께 성찰하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취지에서 6.25 전쟁 중 미군과 한국군의 위안부 운용 문제도 제기했는데, 두 문제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미군과 한국군 위안부 문제와 동일시했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후 찬성 측 송영길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과 말을 주고 받으면서 ‘(일본군 위안부를) 조선총독부가 강제로 동원했다는 게 명백하지 않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 그만 이를 일본 극우파가 주장하듯 자발적 성매매로 인한 공창이었다는 주장을 긍정한 것으로 해석되게 되었다.
▲ 새정치민주연합 여성 의원들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진선미 ,배재정, 김상희, 장하나, 서영교, 남윤인순 의원. (연합뉴스)
이영훈의 시선으로 본 종군위안부 문제의 재구성
그렇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뉴라이트 성향의 역사학자 이영훈 교수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실체적 진실을 무엇이라고 주장하고 있을까. 사실 이영훈 교수는 한국인들이 일본을 비판할 때 흔히 인용하는 종군위안부 문제의 권위자인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의 정리를 수용하고 있다. 이영훈 교수는 2007년에 펴낸 자신의 저술 <대한민국 이야기>의 7장과 8장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의 정리에 따르면, 당시 일본군과 일본 국가는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국제법이 금하는 반인륜범죄를 저질렀다. 첫째, 그들은 매춘업을 위한 부인과 아동의 매매를 금지한 1911년의 국제조약을 위반했다. 둘째, 그들은 1907년에 체결된 강제노동을 금지한 국제협약을 위반했다. 셋째, 그들은 노예제를 금지한 국제법을 위반했다. 넷째, 그들은 미성년 강제노동을 금지한 국제노동 협약을 위반했다. 위안부 중 상당수가 21세 미만의 미성년자였기 때문이다.
이영훈 교수는 종군위안부가 “일본군과 총독부가 공모한 인신약취의 범죄행위”였다고 밝힌다. 위안소로 간 여성들에겐 행동의 자유가 없었고, 정기적인 위생검진을 받아야 했으며, 자유외출이 금지되었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그들이 '성노예'였다고 평가하는데, 이영훈 교수는 이것이 타당한 평가라고 수용한다.
다만 이영훈 교수가 정리한 종군위안부의 실체적 진실은 그 동원과 운용의 양태에선 우리의 통념과 다소 차이가 있다. 이영훈 교수는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의 말을 빌려, "말단에서 관헌의 직접적인 관여를 나타내는 자료는 현재까지 나오고 있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생존 위안부 175명의 증언에 의하면, 그녀들이 동원된 방식은 민간 업자들의 '협박 및 폭력'이나 '취업사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이영훈 교수는 이 둘은 명확히 구분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취업사기가 들통나는 순간 '색시장수'라고 불린 그 민간업자들은 흔히 협박 및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좋은 곳에 취직시켜 준다고 부모를 유혹하여 거액의 선대금(1천원인 사례가 있었다)을 지불한 후 딸을 데리고 가기도 했다. 이런 경우엔 부모가 딸을 팔아먹은 경우나 다름이 없었다. 어떤 여성은 집이 너무 가난해서 위안소로 가는 것을 알면서도 따라나서기도 했다고 한다.
이영훈 교수는 물론 색시장수들의 배후에 일본군과 총독부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고 설명한다. 일본군 수뇌부는 위안소 설치를 명령했고 업자를 지정하여 여인들을 모으도록 지시했다.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가 방위청 도서관에서 이를 입증하는 문서를 찾아낸 것은 유명한 일이다. 당시 사람들이 열차를 타고 국경을 넘거나 항구에서 배를 타기 위해서는 여행증명서가 필요했으므로, 여성을 동원하기 위해선 총독부 관헌들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했다. 이 사건을 “일본군과 총독부가 공모한 인신약취의 범죄행위”였다고 평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조선인 9할’은 아니었고, 돈 받은 경우도 있어
하지만 “조선인이 9할이었다”거나 “한푼도 받지 못했다”는 일반의 통념은 사실과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이 이영훈 교수의 설명이다. 일본군은 전쟁 초반에는 일본인 성매매 여성들을 위안부로 데려갔는데, 전선이 넓어지면서 식민지 및 점령지 여성들을 동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영훈도 이렇게는 언급하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일본 극우파들이 조선인 피해자에 대해서도 “성매매 여성을 데려간 것 아니냐”라고 언급하는 게 아닌가 추정된다. 일본의 상황과 조선의 상황이 많이 다른 것이다. 다만 위안부의 상황을 본다면, 설령 성매매 여성을 데려갔다 하더라도 ‘성노예’라 평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보여진다. 이처럼 처음엔 분명히 일본인 여성 위주였는데다, 나중에도 가령 중국 점령지에서는 중국인 위안부가 다수였다는 증언이 있는 걸 보면, “조선인이 9할”이었다기 보다는 일본인과 각 식민지 및 점령지 여성들이 다양하게 섞여 있었던 것이 더 사태의 진실에 가까운 것 같다고 이영훈 교수는 설명한다.
또 이영훈 교수는 위안부들의 처지가 다양했다고 설명한다. 물론 선대금이 과도했거나, 악덕업자를 만났을 경우 한푼도 받지 못한 여성들도 상당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군표'를 모아놨다가 전쟁 이후 그것이 가치없는 휴지조각이 되었다. 그러나 업자와 위안부가 5대5로 이익금을 나눈 곳도 있었고 어떤 이들은 돈을 착실하게 저축하여 고향에 보내기도 하였다는 것이 이영훈 교수의 설명이다.
▲ 13일 오전 서울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기독교신학자협의회,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등 단체 주최로 열린 '문창극 총리 후보자 지명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이러한 ‘사실’은 일본군과 일본 국가의 전쟁범죄를 규탄하는데 하등의 차질을 주지 않는다. 앞선 가치평가에서 보여지듯 이영훈 교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이러한 정리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과도 모순될 것이 없다. 오히려 우리가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대개 “민족의 순결한 딸을 강도 일본이 강제로 뺏어가 전쟁터에서 성적으로 약취하고 버렸다”는 정도의 통념을 가지고 바라보기에, 피해자 여성 중 일부가 화류계 여성이었다거나, 일부는 위안부로 가는 줄 알고 있었다거나, 일부 피해자들에겐 돈이 건네졌다는 '사실'들을 필사적으로 억압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어쩌면 그런 태도가 지금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피해자들이 아닌 더 많은 피해자들의 증언을 가로막은 것일 수도 있다. 우리의 통념은 우리들끼리 일본 제국주의를 악마화 하는데엔 편리하겠으나, 세계인들 앞에서 일본인들에게 당신들의 전쟁범죄가 어째서 악랄한 것인지를 조목조목 따지는 데엔 장애가 되는 것일 수도 있다.
뉴라이트 성향 역사학자의 인식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다. 이 정리에서 우리는 이영훈 교수는 적어도 위안부 문제를 심각한 인권유린 범죄로 인지하고 있으며, 문창극 총리후보처럼 별 것 아닌 것인양 말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이영훈 교수 일개인의 견해가 아니다. 뉴라이트 성향의 교과서포럼에서 지은 <대안교과서 : 한국 근·현대사>를 보더라도 비슷한 서술이 등장한다. 종종 이 교과서가 종군위안부를 ‘자발적 성매매’로 묘사했다는 루머가 돌지만, 막상 찾아보면 관련 서술은 이렇다. “한편 일본군은 한국, 만주, 중국, 동남아, 남양군도에 이르는 전 주둔지에서 군 시설의 일부로 위안소를 설치하였다. 그곳에 한국, 일본, 중국, 동남아 출신의 여인들이 위안부로 노예처럼 수용되어 일본군에 성적 위안을 제공하였다. 일본군은 노예제를 금한 국제협약을 위반하는 범죄를 저질렀다"(p92~93).
뉴라이트보다 더한 문창극, 박근혜 정부에도 짐 된다
박근혜 정부의 행보와 발언 역시 문창극 총리후보의 인식과 거리가 멀다. 지난 3월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25차 유엔 인권이사회 기조연설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다.
특히 윤병세 장관은 영어 연설에서 피해자들을 ‘위안부(comfort women)’라고 지칭하고, ‘일본 제국주의 군에 의해 징집된 전쟁 성노예 희생자(victims of wartime sexual slavery drafted by the Japanese imperial armed forces)’라고 설명하는 등 구체적으로 강경하게 발언하였다. 국제무대 연설에서 한국 외교부 장관이 위안부 문제를 명시적으로 거론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수정할 수 있다는 의중을 내비친 상황이었다.
▲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지난 5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유럽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25차 유엔 인권이사회(UNHRC) 고위급 회의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윤 장관은 "이 시점에도 일본 정치 지도자들이 계속 역사수정주의적인, 역사를 부정하는 행동을 취하고 있다"면서 "이는 국제사회 여론에 대한 도전"이라며 일본의 진정성 있는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 역시 지난 4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실질적 대안을 갖고 진정성 있는 노력을 해나갈 때 신뢰의 끈이 연결되면서 당시 이뤘던 협력의 모멘텀도 살려나갈 수 있다"며 이런 노력이 없다면 “최소한의 모멘텀도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열한 인식을 보여준 문창극 총리후보가 끝내 총리로 인준된다면, 박근혜 정부의 그간의 외교적 노력이 조롱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문창극 총리후보의 동영상 강연 전문을 보면 "그러면 지금 까지는 미국이 1위였지만 앞으로는 중국이 1위 나라가 되는 겁니다. 그게 2015년이에요. 그러면 2015년 이후에 한국은 어떻게 될 것이냐. 이게 상당히 심각한 문제입니다"라며 국제정세의 변동을 얘기한 이후, "그러니까 중국을 하나님께서 터치하셔야 된다"라며 선교를 해법으로 제시한 구절이 있다. 게다가 문창극 후보와 새누리당이 "큰 틀에서 문제없다"고 주장하는 강연회 전문 후반부는 사실상 중국 공산당의 체제 전복을 선동하는 것으로 읽힐 우려조차 있다.
이처럼 중국을 자극할 수 있고 일본에겐 조롱받을 수 있는 총리후보의 인준을 강행한다면 박근혜 정부가 그나마 내세워왔던 ‘외치’의 성과도 자멸의 늪에 빠진다. 문창극과 함께 그 늪에 들어가야 할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문창극 총리후보는 대통령 개인이나 정부를 넘어 나라 전체를 '시련'에 빠뜨릴 수 있는 위험한 발언을 늘어놓았다. 박근혜 정부는 정녕 이 땅에 '하나님의 시련'이 오기를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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