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뉴스9>를 통해 ‘일본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막말이 보도되며 문창극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 자질 논란이 거세지는 가운데, SBS가 해당 동영상을 입수하고도 ‘보도 지시’가 떨어지지 않아 보도 시점을 놓친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본부장 채수현, 이하 SBS노조) 공정방송위원회는 12일 오후 사측에 편성위원회를 요청했다. SBS 기자들이 문창극 후보자의 막말 동영상을 입수, 보도를 제안했으나 편집회의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 논의되지 않은 데다, 보도 시점과 여부에 대해서도 허가가 떨어지지 않아 ‘문창극 막말’ 보도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SBS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SBS 기자들은 검증 보도를 준비하던 중 문제의 ‘막말 동영상’을 입수해 10일 저녁에 보고를 했으나 보도국 간부들은 ‘교회 연설이라는 특수 상황이 있고 보고 시점이 늦어 리포트 제작 시간이 촉박하니 더 꼼꼼히 취재하자’고 했다.

SBS 기자들은 문 후보자가 강의를 했던 서울대, 고려대 학생들과 접촉해 강의 당시의 발언을 듣고 문제적인 발언으로 논란이 된 칼럼 등 다른 사례를 추가 취재해 11일 다시 보고했다. 뉴스 시작 1시간 여를 남긴 상황에서 리포트 제작 지시가 떨어졌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블라인드 처리됐다.

결국 11일 SBS <8뉴스>에서는 해당 내용이 보도되지 않았다. 1시간 후 KBS <뉴스9>는 톱 뉴스부터 내리 2꼭지를 할애해 문 후보자의 교회 연설 망언 보도했고, 이후 엄청난 파장이 일어났다. 문창극 후보자 인사청문회 준비팀은 11일 밤 “후보자가 언론인 시절에 교회라는 특정 장소에서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라는 특수성이 있다”고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SBS는 KBS <뉴스9>와 국민TV <뉴스K> 보도가 나가고 나서야 11일 마감뉴스 <나이트라인>에서 이 소식을 보도했다.

▲ 11일 SBS 나이트라인 보도

SBS 기자들 항의로 ‘시끌’… 기자협회, 12일 긴급 운영위 개최

보도국의 판단으로 후보자 검증 보도를 충실히 하지 못한 데다 낙종까지 해 현재 SBS 내부 게시판에는 SBS 기자들의 항의와 비판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한 기자는 “일국 총리 후보자의 자격을 따져 묻는 희대의 특종기사가 희대의 낙종이 되어 버렸다”며 “도대체 누가 어떤 경로로 낙종을 조장하고 조종했는지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건 해당 기자와 해당 부서 만의 문제가 아니라 보도국 기자 전체와 우리 모두가 만드는 SBS 뉴스와 직결된 중대한 일”이라며 “기자가 존재하는 이유, 우리가 뉴스를 만드는 이유와 닿아있는 본질적인 사안이다. 바로 ‘이런 기사도 못 쓰면 우리는 왜 기자를 하고 있나?’ 의문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단순히 어제(11일)의 낙종이 문제가 아니라 문 후보자 보도 자체가 부실했다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10일 <8뉴스>는 문창극 후보자 지명 소식을 전하며 “보수 성향이긴 하지만 언론인 시절 칼럼을 통해 박 대통령도 비판했던 만큼 직언할 수 있는 인사라는 점도 발탁배경으로 꼽힙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해당 보도 바로가기)

▲ SBS 8뉴스는 10일 문창극 신임 총리 지명 소식을 전하며 “보수 성향이긴 하지만 언론인 시절 칼럼을 통해 박 대통령도 비판했던 만큼 직언할 수 있는 인사라는 점도 발탁배경으로 꼽힙니다”라고 보도했다. (사진=SBS 8뉴스 캡처)

이를 두고 다른 기자는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모두 후보자의 칼럼에 대해 극히 보수적이라고 꼬집는 상황에서 SBS가 내놓은 한 줄의 평가”라며 “총리지명 첫날부터 SBS는 틀렸다”고 질타했다.

또 다른 기자는 보도 누락에 대해 “박근혜 정부의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서였나요? 아니면 후보자의 출신 고등학교가 신경 쓰였나요”라고 반문했다. 정승민 정치부장이 서울고 출신이라는 점을 겨냥한 발언이다.

SBS의 한 관계자는 “보도국장이 <중앙일보> 출신이라 그런 것 아니냐는 불만도 왕왕 나오고 있다”며 “보도본부장은 해당 사안 보고를 못 받았다고 하니 둘 중 한 명의 결정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디어스>는 성회용 보도국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문창극 보도 누락 사태에 대해 납득할 만한 해명이 없다면 불신임 여부도 물어야 한다’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SBS기자협회(협회장 김정인)는 당장 오늘(12일) 밤 긴급 운영위원회를 열어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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