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10일 오후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 정홍원 전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지 45일 만에, 안대희 후보자가 낙마한 지 2주 만이다. 인사 난맥을 겪고 있는 가운데 다소 갑작스럽게 결정됐다는 점 때문에 단숨에 이목이 집중된 문창극 후보자는, <중앙일보> 주필일 당시 썼던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색채의 칼럼 때문에 더 논란이 되고 있다.

<문창극 칼럼>이라는 기명 칼럼을 <중앙일보>에 연재해 오면서 그는 많은 문제적 발언들을 남겼다. 2009년 용산참사 때는 “앞으로 경찰청장의 목은 데모대가 쥐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서 김석기 경찰청장에게 용산참사 진입 책임을 물으면 안 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비하성 칼럼도 도마에 올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때 국민장 논란이 일었을 때 “그의 죽음은 분열과 갈등을 다시 만들고 있다”고 한 점이나, 김대중 대통령 서거 10여 일 전, 김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을 꺼내든 점 등이 대표적이다.

세월호 참사로 국가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흉흉한 민심을 수습해야 하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는 한쪽으로 상당히 치우친 성향을 지닌, 행정 경험도 전무한 인물을 총리 후보자로 내정했다. 지명 하루 만에 ‘독선적’이고 ‘이념 편향적’이며 경험 부족 때문에 ‘자질까지 의심된다’는 혹독한 평이 나온 이유다.

물론, 이명박 정부 이후 비판의 날이 무뎌진 두 공영방송(KBS, MBC)이나 그 공영방송 둘보다 그나마 조금 더 낫다는 SBS가 문창극 후보자를 정면으로 비판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제기됐다. 결국 관심은 이번에도 JTBC로 모아졌다.

특히, JTBC의 존재 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중앙일보와의 관계'에서 손석희 사장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가 관심이었다. ‘한 발 더 들어가는 뉴스’를 지향하며, 권력 감시라는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의무방어전 식의 밋밋한 보도를 하고 있는 지상파 3사보다 ‘훨씬 낫다’고 평가받는 JTBC <NEWS 9>은 모회사 <중앙일보>가 배출한 인물을 어떻게 보도할까. <중앙일보>에서조차 가장 보수적으로 평가받아, 결코 ‘화합’이나 ‘통합’형 인사로 보이지 않는 이를 정면 비판할 수 있을까.

칼럼 비판 여론은 전했으나 <중앙일보> 언급은 딱 1번

지명 당일인 10일, JTBC는 지상파 3사보다는 더 비판적 입장을 취했으나, 굳이 <중앙일보>라는 출신을 강조하지 않는 ‘아슬아슬한 줄타기 보도’를 했다. 10일 JTBC <NEWS 9>은 청와대의 새 인선 소식을 단신으로 짧게 언급한 뒤, 문창극 총리 후보자와 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에게 각각 1꼭지를 할애했다.

▲ 10일 JTBC NEWS 9 보도

<NEWS 9>은 “(문창극 후보자는) 매우 보수적인 성향의 언론인 출신인 만큼 재산이나 도덕성 문제에 앞서 언론인 시절 썼던 칼럼과 관련한 논란이 일고 있다”며 과거 그가 쓴 칼럼 내용을 인용 보도했다. <NEWS 9>은 문창극 후보자가 무상급식을 “식량 배급을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북한 주민과 다를 바 없다”,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표현했고, 김대중 대통령 서거 10여일 전에도 비자금 의혹을 열거하며 그대로 덮어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는 점을 전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편향된 시각의 칼럼을 통해 고 김대중 대통령과 고 노무현 대통령을 비방하는 데 즐거움을 찾은 것으로 안다. 지극히 의문시되는 대표적인 극우 보수논객”이라는 비판 논평도 담겼다.

하지만 <중앙일보> 출신이라는 점은 단신에서 단 한 차례 등장했을 뿐 리포트에서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가 <중앙일보>에서 1975년 기자 생활을 시작해 정치부장과 주필 등을 거치며 30년 이상 몸담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으로 언급을 자제한 티가 역력했다. 지난 2월 5일, 민경욱 전 KBS 문화부장이 청와대 대변인으로 지명됐을 때 KBS 출신이라는 점이 수차례 언급된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총리 지명 이틀 째, 밋밋한 보도 이어져

총리 지명 이틀 째인 11일에도 JTBC는 예의 그 날카로움을 보여주지 못했다. <NEWS 9>은 이날 문 후보자에 대해 <문창극 후보자 "책임 총리, 처음 듣는 이야기" 답변 논란>, <문창극 발탁 배경엔 김기춘?…박정희재단 함께 활동>, <문 후보에 엇갈린 여야 반응…"균형 감각"vs"통합 이루겠나"> 등 3꼭지를 보도했다.

<NEWS 9>은 문창극 후보자가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해 온 ‘책임 총리’에 대해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발언한 것부터 전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컨트롤타워의 역할을 총리실 산하에 두는 등 보다 많은 권한이 주어지게 되는 상황에서, 새 총리 후보자가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이해 부족을 드러낸 것이어서 논란이 됐다.

<NEWS 9>은 “청와대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총리가 되려는 것이냐”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비판을 전하면서도 “일각에서는 언론인 시절 행보를 비춰봤을 때 지금 상황에서 책임 총리제 실행은 어렵다는 평소 생각이 반영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며 균형(?)을 맞췄다.

<NEWS 9>은 문창극 후보자 발탁엔 김기춘 비서실장의 뜻이 있었다는 보도를 2번째로 내보냈다. 문 후보자가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초대 이사로 선임됐을 당시, 이사장이 김기춘 비서실장이었기 때문에 인선 배경에 이 점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 내용 역시 11일 <경향신문>이 보다 상세하게 보도한 바 있다.

▲ 11일 경향신문 2면

과거 칼럼 논란이 지속되고 있고 ‘책임 총리 모른다’ 발언까지 나오면서 문창극 후보자에 대한 비판여론은 더 높아졌다. 그런데도 <NEWS 9>는 문 후보자에 대한 엇갈리는 여야 반응을 함께 담아 기계적 균형을 맞추는 데 애썼다.

<NEWS 9>은 <문 후보에 엇갈린 여야 반응…"균형 감각"vs"통합 이루겠나"> 리포트에서 “새누리당 당권 주자들이 문 후보자의 균형감각과 판단력을 높게 평가하며 하나같이 기대감을 표했다”고 보도했다.

“균형을 갖춘 감각과 또 사회를 날카롭게 보는 눈과 비판의식으로 굉장히 훈련된 분이라고 저는 평가하고 싶다”, “두루두루 화합할 수 있고 또 판단력은 언론계에 오래 계셨기 때문에 아주 잘 아실 것이고…” 등 김무성 의원, 서청원 의원의 발언을 통해 여당은 이번 인선을 환영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대통령 비난, 이념 편향 칼럼 등 이미 사실로 드러난 점을 바탕으로 공격하는 야당과 청와대에서 밝힌 총리 지명 배경을 되풀이하는 여당의 입장을 동일한 비중으로 처리한 것이다.

<중앙일보>보다는 공격적이지만…

물론, JTBC 내부에서는 문창극 후보자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기대만을 담은 <중앙일보>보다 JTBC가 더 ‘세게 치고 나갔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JTBC의 한 관계자는 “<중앙일보>보다는 더 강하게 검증하려는 준비가 있다. 10일에 세게 보도하기도 했고. 내용이 나오는 대로 계속 (검증) 보도를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 후보자 검증 취재가 원활히 이루어지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관계자는 “재산, 병역 문제 등의 아이템을 준비하고 있기는 한데 내용이 쉽게 채워지지는 않는다. 공식적인 해명을 요구하기 힘든 사적인 부분 얘기가 더 많이 나와 보도에 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야당 쪽에서 소스가 나오면 더 활발하게 다룰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총리 지명 첫날만 해도 일각에서는 JTBC가 뜨거운 감자인 <문창극 칼럼> 사안을 지적했다며, <중앙일보>와는 사뭇 다른 비판적 보도를 보여줬다는 호평이 나왔다. 하지만 이틀 동안 보여준 JTBC의 보도를 보면서는 '하긴 했다'는 수준에서 그러한 평을 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 11일 JTBC NEWS 9 보도

오히려 문 후보자가 <중앙일보> 출신 인사이기 때문에 훨씬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더 강도 높게 비판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이른바 '손석희 뉴스' 답지 않은 ‘기계적 중립’을 고수하며 수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적당할 것이다. 이에 대해 JTBC의 한 관계자는 "현재, JTBC 정치부장이 문창극 후보자가 중앙일보 정치부장이던 시절 정치부 기자를 지내 상당히 조심스러워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상파 3사의 뉴스가 부진의 나락에 빠져 있을때, 다른 뉴스가 하지 않는 이야기를 해왔다는 이유로 높이 평가됐던 JTBC지만 자사와 이해관계가 밀접한 <중앙일보> 출신 인사 앞에서는 주춤거리고 있다. 문창극 후보자에 대한 검증을 하기보다는 문 후보자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고 기자 출신 총리 후보자에 대한 기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말 그대로 ‘축제 분위기’ 지면을 펼치고 있는 <중앙일보>보다 더 공격적인 보도를 한 것이 ‘좋은 보도’를 했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문창극 보도에 한해 JTBC 뉴스는 '한 발 더 들어가는 뉴스'가 아닌 딱 <중앙일보>보다는 나은 뉴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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