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출신 총리가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언론계가 술렁이고 있다. 얼굴 한 번 본적 없어도 단지 언론계 생활을 좀 더 일찍 시작했다는 이유만으로 ‘선배님’ 호칭을 진상해드리는 어떤 언론인들 입장에서는 1975년부터 기자 생활을 시작해 유력 일간지 주필까지 차례로 단계를 밟아나간 언론계 대선배님을 비판적으로 다루는 일이 쉽지 않아 보인다.

문창극 카드를 꺼내 든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노림수’는 아마도 여기서 출발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안대희 전 대법관의 낙마 이후 ‘언론이 도와주지 않았다’는 식의 자기 평가가 정부와 정치권 여기저기서 자조적으로 흘러나온 바다. 안대희 전 대법관이 총리 후보직에 대해 사의를 표명하면서 “젊었던 시절 너무 건방지게 살았던 것 같다”는 말을 했는데, 이 회한에 깔린 정서도 '언론에 대한 서운함'의 맥락에 놓여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언론의 도움을 받아 뭐가 어쨌든 최소한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는 총리 후보자를 만들어 보자는 게 정권의 계산 아니겠냐는 것이다. 현명한 국민들은 벌써 정권이 이러한 계산을 알아채고 ‘언피아’라는 조어를 만들어 비웃음거리로 삼고 있다. 한참 문제가 된 ‘관피아’들의 행태와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이들의 이러한 통찰에 근거가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언론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청사 창성동 별관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언론인 출신도 국무총리가 될 수 있다. 언론인 역시 정치인, 검사, 행정관료, 학자처럼 공적 영역에 대한 최소한의 고민을 늘상 해야하는 직종인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어떤 언론인인가’는 따질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국무총리가 어떤 사람인가’라는 문제도 당연히 고려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명백히 부적절한 인사다. 박근혜 정권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국무총리의 상으로 ‘관피아’로 대표되는 ‘적폐’들을 일소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국가개조 수준의 개혁정책을 밀어 붙이는 것을 꼽아왔다. 그렇다면 문창극 후보자는 이러한 일을 잘 할 수 있는 인사인가? 아니다. 오히려 문창극 후보자는 이러한 ‘적폐’의 일부면 일부였지 이를 개혁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다.

▲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트위터 계정 캡쳐.

문창극 후보자가 지명된 직후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극우 꼴통 세상이 열린다”, “국민분열, 국가퇴조를 가져오는 인사”, “제2의 윤창중”, “1%의 국민만을 위한 극우꼴통보수”, “자신의 호불호에 따라 매도, 신격화 시키는 편향된 성격”, “언론계 후배들에게 어떻게 줄서면 총리가 되는가를 가르쳐준 총리후보자”등의 최상급의 발언들을 동원해 격렬하게 반응했다. 언론계 인사들은 박지원 의원의 이러한 반응을 악연으로 얽힌 두 사람의 '역사'때문이라고 말한다.

문창극 후보자는 중앙일보 논설위원 시절이었던 김영삼 대통령 말기 ‘3김청산’을 부르짖고(이미 김영삼 정권 말기였으므로 3김청산의 타겟이 누구였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명백하다)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총재에게 “오죽하면 세 번 심판받고 다시 나온 후보나 경선 결과를 발로 차고 민주주의 원칙을 짓밟고 나온 후보보다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는가”라며 애정어린 조언을 하기도 했다. 아닌게 아니라 <중앙일보>는 1997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한 이회창 전 총재를 지원사격하며 김대중 후보를 비난하고 이인제 후보의 사퇴를 주장하기도 해 구설수에 오르던 상황이었다. 당시 정치 담당 논설위원으로 필봉을 휘두르던 문창극 후보자가 <중앙일보>의 이러한 행보의 선봉에 섰었음은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오죽했으면 정치부장 시절 그의 편향을 견디지 못하고 항의한 정치부 소속 기자들이 부당한 인사이동을 당해 문제가 됐었다는 뒷얘기까지 돌아다니고 있겠는가.

<중앙일보>와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1997년 대선 승리로 김대중 대통령이 탄생하게 됐고 문창극 후보자는 ‘요주의’ 인물이 됐다. 당시 상황에 대한 <중앙일보>의 주장은 청와대 공보수석비서관이던 박지원 의원이 이전부터 갈등을 겪으며 불편한 관계가 됐던 문창극 후보자의 붓을 꺾어놓기 위해 홍석현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다. 결국 문창극 후보자는 이후 미주총국장으로 쫓겨가며 대형 일간지 소속 언론인으로서는 한 번쯤 꾸어볼 꿈인 편집국장직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밖에 없는 신세가 됐다고 한다. 중앙일보에서의 모범적인 '성공'을 꿈꿨을 문창극 후보자로서는 천추의 한을 남긴 사건이었다. 한 중앙일보 출신 관계자는 "문창극 후보자가 유난히 고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에는 이런 개인적인 감정이 있다"고 말했다.

▲ 중앙일보가 밝힌 김대중 정부의 언론탄압 비사.

당시 박지원 의원과 김대중 정부의 행위가 과연 올바른 것이었는지는 차치하고, 중요한 것은 1997년 대선 정국에서 <중앙일보>의 앞서 스탠스를 고려해봤을때 이회창 후보가 당선됐더라면 문창극 후보자는 그의 ‘관운’을 누릴 날짜를 훨씬 앞당길 수 있었으리라는 점이다. 마치 이명박 정부 시절 김두우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이 청와대 정무2비서관으로 직행했던 것처럼 말이다. 문창극 후보자는 김대중 정권 시절 위 사건을 ‘권력을 비판하다 탄압당한 일’ 정도로 설명하고 싶을지 모르나 이것은 권력과 언론의 끈끈한 관계에서 소외됐다가 다시 부활하는 사람의 이야기지 정론직필의 비판정신에 대한 것은 아니다. 이게 ‘언피아’가 아니면 무엇인가?

이것으로도 총리 자격이 없다는 점을 말하기에 부족하다고 한다면 다른 이유를 들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은 ‘100% 대한민국’이었다. 이렇든 저렇든 국민적 통합을 이루겠다는 뜻이다. 문창극 후보자의 성향은 좋지 않은 방향으로 극단적이어서 국무총리로서 이런 정권의 국민통합 정책을 뒷받침하기에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다.

문창극 후보자의 현역 시절 함께 기자 생활을 했던 언론계 관계자들은 문창극 후보자의 성향에 대해 ‘친미, 친삼성, 반호남’으로 압축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반호남이라는데 아무리 충청 출신이라지만(정작 문창극 후보자 본인은 본적이 평북이라는 이유로 이북 출신들과 더 잘어울렸다고 한다) 과연 지역통합이 되겠는가? 앞서 언급한 문창극 후보자가 정치부장이던 시절 기자들이 반기를 든 이유도 이러한 편향에 원인이 있다고 전해진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연합뉴스)

또, 친삼성이라는데 삼성의 3세 경영을 위한 지배구조 변화 등 재계의 빅 이벤트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비판적인 시민사회 등과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 또한 참작해야 한다. 문창극 후보자는 ‘삼성언론상’을 받기도 했고, 남에게 시상하기도 했으며, 이건희 회장에 대한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칼럼을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2007년에는 미국 부통령 인터뷰를 위해 백악관을 방문했을 당시 중앙일보에 대한 설명을 신청서에 쓰자 미 정부 관계자가 “당신이 쓴 어떤 설명보다 삼성이 세운 신문사라는 한마디가 당신의 공신력을 높여줄 것”이라고 말했다는 일화를 <중앙일보> 지면에 게재하기도 했다.

그리고, 문창극 후보자는 워싱턴 특파원, 미주총국장 등을 지내며 박사학위 논문도 미국관련 문제를 다뤘을 정도로 미국에 조예가 깊다. 하지만 이는 중앙일보 내에서 조차 우려를 살 정도로 심각한 수준의 ‘친미’ 성향으로 수렴되었다. 기자 혹은 전문가로서는 다소 문제가 덜할지 모르나, 한 나라의 국무총리로서 중국, 북한, 러시아 등과의 외교에서 그가 제대로 된 수완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져봐야 한단 얘기다. 그렇잖아도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이 위키리크스에 미국을 좋아하며 미국과 상시적으로 소통을 하는 인사라는 점이 드러나 있어 곤란한 처지인데 말이다.

마지막으로, 문창극 후보자는 한국신문상 심사위원장으로서 <조선일보>의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 의혹’ 보도에 대해 “언론이 권력자의 탈선된 사생활을 보도하려 할 때 필요한 덕목은 무엇보다 용기인데 조선일보 편집국은 그런 용기를 보여줬다”면서 2014년 한국신문상 수상을 결정한 바 있다. 문창극 후보자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낙마 이후 꾸려진 검찰총장추천위원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김진태 검찰총장이 바로 이 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한 인사 중 한 사람이다. 우리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의혹이 불거질 당시 검찰 내부의 분열상을 실시간으로 목도한 바 있다. ‘문창극 총리’를 보면서 검찰들이 과연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어쩌면 검찰 출신 국무총리 시절보다도 더 희한한 사태를 보게될 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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