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총리 후보자로 내정되면서 <중앙일보>의 세상이 오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언론(중앙일보, JTBC)-기업(삼성)-정부 및 정치권(문창극)’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사슬이 완성된 것 아니냐는 얘기다. 그만큼 <중앙일보> 출신의 언론인이 총리 후보자로 내정된 것에 대해 사회 전체에 상당한 충격이 가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세간에 충격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그림이 기어코 완성되기를 간절히 바랬던 것인지 <중앙일보>는 오늘까지도 총리 후보자 인사에 대한 이런 저런 의견을 던지며 분투해왔다. 지난 5월 14일과 15일에는 정치권의 인사청문회 문화에 대한 비판을 1면에 과감하게 기획기사로 게재하기도 했다. 국무총리의 길로 가는 이러한 <중앙일보>의 분투를 끝까지 방해한 상대는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일보> 였다.
두 신문의 미묘한 갈등은 안대희 전 대법관이 총리 후보자로 지명되던 지난 5월 2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선일보>는 모든 신문 중 유일하게 안대희 전 대법관의 이름을 1면에 배치하며 단정적으로 치고 나갔다.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 등의 이름이 복수로 거명되던 시기였다.
같은 날 <중앙일보>는 총리 후보자 인선에 대한 기사에서 김종인,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 등을 거명하며 ‘깜짝 인사의 전격 등용 가능성’을 말했다. 결국 당일 안대희 전 대법관이 총리 후보자로 지명됐으니 1차전에서 <조선일보>가 승리한 것 같은 모양새가 된 셈이다.
하지만 안대희 전 대법관이 ‘전관예우’ 논란으로 낙마하면서 두 신문의 희비는 엇갈리게 된다. 안대희 전 대법관의 낙마 당일인 5월 28일 <조선일보>는 안대희 전 대법관 관련 입장을 내지 않으며 ‘침묵’을 지켰다. 반면, <중앙일보>는 같은 날 김진 논설위원의 <대한민국 총리 값이 11억인가>제하의 시평을 통해 사실상 안대희 전 대법관의 사퇴를 주장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이 낙마한 다음날인 5월 29일 <중앙일보>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개혁 총리를 구하라>는 제하의 사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범한 역발상과 쇄신의 승부수로 극복하곤 했던 대통령이 초심으로 돌아간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며 적극적인 조언을 내놨다.
하지만 당일부터 법조인 출신 총리 후보자가 ‘검증’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낙마했다는 이유로 정치인 출신 총리 후보자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중앙일보>는 다소 당황한 듯한 목소리를 내게 된다. 다음 날인 30일 <중앙일보>가 <박 대통령, 절대로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제하의 사설을 배치한 것은 이러한 기류의 반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는 해당 사설에서 “대통령은 여유를 갖고 생각과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면서 절대로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주문을 반복한다. 당일에는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 등 구체적인 정치인들의 이름까지 거명되는 시기였다. 일부 성급한 인터넷 언론 등은 ‘김문수 총리 유력’이란 제목의 기사를 내기도 했다.
이후 지방선거를 며칠 남기지 않게 되자 그간 정치적으로 다소 세련된 목소리를 내길 원하는 것처럼 보였던 <중앙일보>는 통합진보당 후보들의 사퇴를 ‘수상하다’고 주장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 측과의 이면합의 가능성 등을 언급하는 사설 등을 배치했다. 지방선거 직후에는 <조선일보>의 뒤를 따라 ‘전교조 시대’ 등의 수사를 동원해 진보 교육감들의 당선에 노골적인 경계심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확정된 오늘 10일 <중앙일보>는 다시 세련된 포지션으로 돌아가 권한도 없는 진보교육감들이 ‘서울대 폐지론’을 펴고 있다며 정책적 문제제기를 하면서도 오피니언란을 통해서는 새누리당과 보수언론들이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교육감 직선제 폐지론을 비판하고 진보교육감 대거 당선의 의미에 대해 폄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칼럼을 배치하는 등 ‘톤다운’ 된 지면 배치를 선보였다. 그러면서 <중앙일보>는 총리 인선에 대한 기사에서 “기존 유력 후보군의 발탁 가능성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사설을 통해서는 야권인사의 기용을 적극 고민하라는 고언을 내놓기도 했다.
같은 날 <조선일보>는 야권 출신 인사까지 총리후보를 확대해야 한다는 기사를 1면에 배치하면서도 참여정부 인사로 분류되는 김병준 국민대 교수와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 등에 대해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이들이 총리 후보자로 지명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고 쓰기도 했다. <조선일보>의 이러한 불친절한 서술은 보수적 지지층의 이반 가능성이 큰 참여정부 인사들의 총리 후보자 지명 가능성에 대해선 언급할 가치도 없고 지명 불발 사유에 대해서 역시 알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읽힌다. 오늘의 상황을 돌이켜보면 과연 <조선일보>의 표현이 들어 맞았던 것이다.
<중앙일보> 역시 총리 후보자 인선에 대한 기사 제목을 <한때 강철규 총리설…본인은 부인>이라고 뽑아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에 대한 보수층들의 반발을 의식한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즉,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강철규 총리 후보자 내정설’은 일종의 ‘간보기’였다는 판단도 가능하다. 이런 장애물을 넘고 넘어 결국 <중앙일보>가 들이민 인사가 총리 후보자가 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왜 당일까지 <중앙일보>는 ‘야권 출신’의 총리 후보자 기용을 고려하라는 메시지를 계속 반복한 것일까? 그 이유는 문창극 후보자가 과거 <중앙일보>에 썼던 <박근혜 현상>이라는 제목의 칼럼 등을 참고해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의 ‘야권’과 우리가 상식으로 생각하는 ‘야권’은 개념이 달랐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