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총리 후보자로 내정되면서 <중앙일보>의 세상이 오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언론(중앙일보, JTBC)-기업(삼성)-정부 및 정치권(문창극)’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사슬이 완성된 것 아니냐는 얘기다. 그만큼 <중앙일보> 출신의 언론인이 총리 후보자로 내정된 것에 대해 사회 전체에 상당한 충격이 가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 인사청문회 문화의 변화를 주장한 중앙일보의 지난달 14일, 15일 지면

세간에 충격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그림이 기어코 완성되기를 간절히 바랬던 것인지 <중앙일보>는 오늘까지도 총리 후보자 인사에 대한 이런 저런 의견을 던지며 분투해왔다. 지난 5월 14일과 15일에는 정치권의 인사청문회 문화에 대한 비판을 1면에 과감하게 기획기사로 게재하기도 했다. 국무총리의 길로 가는 이러한 <중앙일보>의 분투를 끝까지 방해한 상대는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일보> 였다.

두 신문의 미묘한 갈등은 안대희 전 대법관이 총리 후보자로 지명되던 지난 5월 2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선일보>는 모든 신문 중 유일하게 안대희 전 대법관의 이름을 1면에 배치하며 단정적으로 치고 나갔다.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 등의 이름이 복수로 거명되던 시기였다.

▲ 안대희 전 대법관이 총리 후보자로 지명되던 22일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1면 지면 비교.

같은 날 <중앙일보>는 총리 후보자 인선에 대한 기사에서 김종인,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 등을 거명하며 ‘깜짝 인사의 전격 등용 가능성’을 말했다. 결국 당일 안대희 전 대법관이 총리 후보자로 지명됐으니 1차전에서 <조선일보>가 승리한 것 같은 모양새가 된 셈이다.

▲ 5월 22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총리 후보자 인선 관련 기사.

하지만 안대희 전 대법관이 ‘전관예우’ 논란으로 낙마하면서 두 신문의 희비는 엇갈리게 된다. 안대희 전 대법관의 낙마 당일인 5월 28일 <조선일보>는 안대희 전 대법관 관련 입장을 내지 않으며 ‘침묵’을 지켰다. 반면, <중앙일보>는 같은 날 김진 논설위원의 <대한민국 총리 값이 11억인가>제하의 시평을 통해 사실상 안대희 전 대법관의 사퇴를 주장했다.

▲ 안대희 전 총리가 낙마하던 28일 사실상의 사퇴를 주장한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의 칼럼.

안대희 전 대법관이 낙마한 다음날인 5월 29일 <중앙일보>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개혁 총리를 구하라>는 제하의 사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범한 역발상과 쇄신의 승부수로 극복하곤 했던 대통령이 초심으로 돌아간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며 적극적인 조언을 내놨다.

▲ 안대희 전 대법관이 낙마한 다음날인 29일 중앙일보의 사설.

하지만 당일부터 법조인 출신 총리 후보자가 ‘검증’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낙마했다는 이유로 정치인 출신 총리 후보자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중앙일보>는 다소 당황한 듯한 목소리를 내게 된다. 다음 날인 30일 <중앙일보>가 <박 대통령, 절대로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제하의 사설을 배치한 것은 이러한 기류의 반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는 해당 사설에서 “대통령은 여유를 갖고 생각과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면서 절대로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주문을 반복한다. 당일에는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 등 구체적인 정치인들의 이름까지 거명되는 시기였다. 일부 성급한 인터넷 언론 등은 ‘김문수 총리 유력’이란 제목의 기사를 내기도 했다.

▲ '정치인 출신 총리론'이 유력하게 대두되던 지난달 30일 중앙일보의 사설.

이후 지방선거를 며칠 남기지 않게 되자 그간 정치적으로 다소 세련된 목소리를 내길 원하는 것처럼 보였던 <중앙일보>는 통합진보당 후보들의 사퇴를 ‘수상하다’고 주장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 측과의 이면합의 가능성 등을 언급하는 사설 등을 배치했다. 지방선거 직후에는 <조선일보>의 뒤를 따라 ‘전교조 시대’ 등의 수사를 동원해 진보 교육감들의 당선에 노골적인 경계심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확정된 오늘 10일 <중앙일보>는 다시 세련된 포지션으로 돌아가 권한도 없는 진보교육감들이 ‘서울대 폐지론’을 펴고 있다며 정책적 문제제기를 하면서도 오피니언란을 통해서는 새누리당과 보수언론들이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교육감 직선제 폐지론을 비판하고 진보교육감 대거 당선의 의미에 대해 폄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칼럼을 배치하는 등 ‘톤다운’ 된 지면 배치를 선보였다. 그러면서 <중앙일보>는 총리 인선에 대한 기사에서 “기존 유력 후보군의 발탁 가능성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사설을 통해서는 야권인사의 기용을 적극 고민하라는 고언을 내놓기도 했다.

▲ 총리 후보자 인선에 대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10일 기사.
▲ 10일 남경필 경기도지사 당선자, 원희룡 제주도지사 당선자 등이 도정에 야권 인사를 참여시키기로 한 것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본받아야 한다는 취지로 사설을 쓴 중앙일보와 지방자치에만 국한시켜 사설을 쓴 조선일보.

같은 날 <조선일보>는 야권 출신 인사까지 총리후보를 확대해야 한다는 기사를 1면에 배치하면서도 참여정부 인사로 분류되는 김병준 국민대 교수와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 등에 대해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이들이 총리 후보자로 지명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고 쓰기도 했다. <조선일보>의 이러한 불친절한 서술은 보수적 지지층의 이반 가능성이 큰 참여정부 인사들의 총리 후보자 지명 가능성에 대해선 언급할 가치도 없고 지명 불발 사유에 대해서 역시 알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읽힌다. 오늘의 상황을 돌이켜보면 과연 <조선일보>의 표현이 들어 맞았던 것이다.

<중앙일보> 역시 총리 후보자 인선에 대한 기사 제목을 <한때 강철규 총리설…본인은 부인>이라고 뽑아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에 대한 보수층들의 반발을 의식한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즉,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강철규 총리 후보자 내정설’은 일종의 ‘간보기’였다는 판단도 가능하다. 이런 장애물을 넘고 넘어 결국 <중앙일보>가 들이민 인사가 총리 후보자가 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왜 당일까지 <중앙일보>는 ‘야권 출신’의 총리 후보자 기용을 고려하라는 메시지를 계속 반복한 것일까? 그 이유는 문창극 후보자가 과거 <중앙일보>에 썼던 <박근혜 현상>이라는 제목의 칼럼 등을 참고해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의 ‘야권’과 우리가 상식으로 생각하는 ‘야권’은 개념이 달랐던 것이 아닐까?

▲ 문창극 후보자가 중앙일보 대기자 시절 쓴 칼럼. 박근혜 대통령에 비판적인 시각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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