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27일 개최된 '헌법파괴 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대회' ⓒ대한불교조계종
2차 대전의 종식과 함께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 미국은 역사상 어느 제국 못지않게 야만적이었다. 원주민을 학살하고 흑인을 족쇄로 채워 노예로 부렸다. 그러나 종교적 관용이 국적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계층의 인력을 흡입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이민자의 재능과 노동력을 통해 급속한 산업화에 성공했다.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원자폭탄의 개발도 유럽에서 박해를 피해온 과학자들의 공로였다.

냉전시대의 종식과 함께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등극했다. 그 미국이 군사력-경제력을 배경으로 세계화, 시장화를 주도하고 나섰다. 독재-불량국가를 자국에 우호적인 정권으로 대체하는 군사제국주의는 세계와 마찰을 빚고 있다. 급기야 9·11 사태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침공을 유발했다. 그것은 1000년의 유혈역사를 이어온 기독교-이슬람의 충돌을 되살려 미국지배시대(Pax-Americana)가 도전받고 있다.

전성기 로마는 지중해를 호수로 삼는 거대한 제국이었다. 로마 통치에 저항하는 대가는 몰살이었다. 그러나 종교적 관용은 놀라웠다. 로마는 다신사회였다. 로마의 세계관이 그리스 신화에 바탕을 둔 것도 그 때문이다. 적을 정복하되 신을 모독하지 않고 오히려 숭상했다. 그 까닭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당하자 로마의 유대인들이 밤마다 모임을 갖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던 것이다. 그 종교적 관용 덕에 피정복지의 무술과 기술을 받아들여 영토를 넓히고 교역을 극동까지 뻗칠 수 있었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 멸망을 기독교의 탓으로 돌렸다. 기독교가 널리 퍼지자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로마 신에게 제물을 바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박해하기 시작했다. 뜻밖에도 이 싸움에서 기독교가 이기고 왕위쟁탈전에서 승리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기독교로 개종했다. 기독교는 국교로 채택되고 이교도에 대한 탄압이 자행됐다. 결국 내란에 휩싸여 서로마제국은 476년 멸망했다.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삼은 동로마제국은 그 후 1000년을 존속했다. 그러나 이 비잔틴 제국도 이슬람의 공격을 견디지 못해 종언을 고했다.

칭기즈칸은 동쪽 끝에서 유럽의 빈까지 로마제국보다 더 광활한 몽골제국을 건설했다. 그는 항복하고 세금을 내면 자비를 베풀었으나 불복하면 모두 도륙했다. 그러나 불교, 도교, 유교, 기독교, 이슬람을 가리지 않고 모든 종교에 대해 절대적인 신앙의 자유를 허용했다. 종교적 관용은 피정복 민족의 지식과 재능을 기반으로 문화적 융성을 일구어냈다. 또한 인류최초로 세계화의 길을 열어 문화의 전달자가 되었다. 그 즈음 유럽에서는 기독교의 광풍이 일어 이교도를 화형에 처했다.

몽골제국은 조각조각 찢어져 차례로 멸망했다. 공통적인 특징은 선조와 달리 종교의 다원성을 부정했다는 점이다. 중국의 몽골통치자들은 신비주의적인 티베트의 탄트라 불교에 탐닉했다. 중국지배는 1368년에 종막을 내리고 초원으로 쫓겨났다. 중앙아시아의 몽골인들은 14세기 후반 유혈정벌 끝에 무굴제국을 세우고 인도를 통치했다. 하지만 힌두교를 탄압하는 종교적 편협으로 인해 1857년 영국한테 패배했다. 페르시아, 러시아의 몽골인들도 이슬람의 이름으로 통치하다, 일한국은 불교를 탄압하다 멸망하고 말았다.

종교전쟁의 광란이 회오리치던 유럽에서는 1000년 동안 제국의 출현이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소국인 네덜란드가 17세기 세계의 해상권을 제패했다. 1579년 네덜란드는 건국헌장에 종교의 자유를 선언했다. 이것은 강력한 자력을 발산하여 유럽 전역에서 종교난민을 흡입했다. 유대교와 개신교의 자본이 네덜란드연방공화국을 세계의 무역, 금융, 산업 중심지로 만들었다.

네덜란드에 이어 유럽에서 가장 관용적인 사회로 등장한 대영제국도 유색인종과 마주치는 순간 그 한계를 드러냈다. 유니온 잭은 해가 지는 날이 없다던 대영제국이지만 관용의 부족으로 가톨릭을 믿는 아일랜드를 끝내 상실하고 말았다. 나치의 제3제국도 유대교도의 집단학살이 미국의 참전을 불러 한 세대를 넘기지 못하고 패망해 버렸다.

불교승려들이 이명박 정부의 종교차별을 규탄하며 산사를 뛰쳐나왔다. 서울 한 복판에서 합장하는 법의의 행렬이, 전국 사찰에서 일제히 울려 퍼지는 타종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아야 한다. 종교적 불관용이 제국의 흥망을 갈랐다는 역사적 사실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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