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운 PIGS 국가 중 하나인 이탈리아에서 <캠걸>을 만들었다는 건 ‘웹 캠’이라는 소재로 이탈리아 젊은이의 실업난을 묘사하기 위해서라고 본다. 만일 <캠걸>이 여성 육체의 관능미를 내세우고자 제작되었다면 이보다 수위는 더 세고 농염해졌을 테지만, <캠걸>은 관능미보다는 우리 시대 젊은이의 실업난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힌다.

자, 그럼 영화의 어떤 부분이 실업난에 대한 알레고리일까. 지금 한국은 고용 없는 발전에 시달리고 있다. 1인당 국민 소득은 2만 불을 넘는다고는 하지만 20대 젊은이들은 취업에 좋다는 스펙이나 자격증을 한 아름 달아도 회사에서 일하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나라나 기업은 부자일지언정 젊은이들에게는 취업이라는 수혜가 분배되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대학을 나오면 취업 전선 하나만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니다. 고가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융자를 받은 학생이라면 대학을 나오자마자, 혹은 대학을 다니면서 빚에 시달리다보니 청춘이라는 꽃을 피우기도 전에 이중고에 허덕이게 된다.

PIGS의 대표 국가인 이탈리아라고 해서 한국과 사정은 다르지 않아 보인다. 두 자리 실업률에 시달리는 이탈리아 경제가 이탈리아 젊은이들의 취업 욕구를 만족하기란 쉽지 않다. 취업을 하고는 싶어도 취업하기가 바늘구멍이다 보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로 하는 식의 아르바이터, 비정규직에 몸담기 쉽다. 좋은 대학을 나와서 청춘의 꽃을 피우고자 하지만 암울한 이탈리아의 경제 상황은 이탈리아 청춘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진다.

여기에서 젊은이들의 선택은 세 가지다. 이력서를 수백 통씩 써가며 바늘구멍을 뚫을 것인가, 아르바이터로 ‘프리터’ 인생을 살 것인가, 혹은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유혹에 빠질 것인가 하는 세 가지 선택이다. <캠걸>은 세 가지 선택 중 마지막 선택을 한 이들의 이야기다.

이들이 캠걸이라는 선정적인 직업을 선택했다고 해서 도덕적인 돌팔매를 가하는 건 온당하지 않아 보인다. 알리체(안토니아 리스코바 분)가 캠걸 사업에 투신한 건 단물만 쏙 빼먹는 기업의 부도덕한 행태에 대한 반작용이다. 정식 채용할 듯하면서 알리체가 제안한 아이디어만 쏙 빨아먹고는 나 몰라라 해고하는 영화 속 팀장의 작태는, 직원을 인격체로 보지 않고 기업을 위한 ‘수단’으로만 보는 기업관을 투영하고 있다.

네 명의 아가씨가 프리터로 남거나 구직자로 남지 않고 포르노 웹 캠 사업에 투신한 결정에 대해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선택이라는 돌팔매를 날리기 전에, <캠걸>은 알리체를 고용할 듯하면서 단물만 쏙 빼먹고는 해고하는 작태를 보여줌으로 네 명의 아가씨가 웹 캠 사업에 뛰어들게 만든 사회 구조의 불합리함을 영화는 고발하고 있다.

캠걸이라는 극단적인 소재로 프리터 혹은 구직자 신세를 벗어나고자 하는 이탈리아 청춘의 자화상을 그리면서, 동시에 이들에게 도덕적인 정죄를 가하기 전에 청춘들이 취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선정적인 소재를 빌어 보여주고 있다. <캠걸> 속 알리체가 운영하는 웹 캠 사업은 경영인의 흥망성쇠를 알레고리화해서 제시하기도 한다. 인건비를 동결하느냐 줄이느냐 하는 알리체의 선택은, 경영 악화를 타개하기 위해 종업원의 임금을 줄이거나 해고해야 하는 사업주의 선택과 유비하여 살펴볼 수 있기에 그렇다.

하나 더, <캠걸>은 구글 같은 포털과 사업의 수익성이 얼마만큼 긴밀하게 연결되는가를 보여주는 포털과 기업의 공생 관계도 보여준다. 광고비를 대지 못해 포털 검색어 상위에 오르지 못하는 기업은 제아무리 실속 있는 벤처기업이라 해도 도태되기 쉬운 비애를 알레고리로 보여주고 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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