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 퀴어문화축제가 벌어지는 신촌 연세로 앞에서 동성애에 반대하는 단체 회원들이 반동성애적 주장으로 가득찬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흡사 한국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느낌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국 사회를 감싸고 있는 갈등을 눈앞에서 확실하게 보는 장이었다. 정작 행사를 주도하는 이들은 그렇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곳은 지난 7일, 2014 퀴어문화축제, 그리고 축제의 메인 이벤트인 퀴어퍼레이드가 열린 신촌 거리 한복판이었다. 2000년 처음 대학로에서 시작한 퀴어문화축제는 을지로, 이태원, 청계광장, 홍대입구 등에서 개최되다 역대 최대 규모로 신촌에서 15회 행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행사 제목에 박힌 ‘퀴어’ 정도를 제외하면 행사는 대학교 축제나 지역 행사와 외견적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단순히 술로 범벅이 되는 축제에 비하면 더 활기차고 생기 있는 행사였다. 길거리에 즐비한 부스에서는 단체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 각종 기념품이나 주전부리를 팔았고 성소수자들의 권리, 그리고 한 달 이상의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세월호 참사에 대한 서명을 받고 있었다. 몇 달 전부터 신촌 거리는 주말마다 차량의 통행을 제한해 ‘걷고 싶은 거리’로 탈바꿈했고 이따금씩 다양한 행사가 열렸지만 이번 퀴어문화축제 만큼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찬 적은 흔치 않았었다.

하지만 수많은 부스들에서 펼쳐진 각종 이벤트 못지않게 많은 의미로 뜨거웠던 행사는 신촌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서 벌어진 퍼레이드였다. 친구사이, 언니네트워크 등을 비롯한 각종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인권단체들이 참여한 퍼레이드는 이렇다 할 말로 설명하기 곤란한 열기로 가득 차있었다. 다섯 개의 퍼레이드 차량에 탑승한 활동가들은 퍼레이드 참여자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때로는 재미있고, 때로는 끈적끈적한 춤과 노래로 사람들을 흥겹게 하였다. 68 혁명이나 그 시기를 전후해 열린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열렸다면 아마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물론 여전히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열리고 있고, 68 혁명 당시 나왔던 각종 문화 코드를 이용한 여러 물품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 물품들에 이미 내용은 사라진지 오래고 또한 그러한 세계적 흐름을 함께하지 못한 한국 같은 나라에 있어서는 더더욱 맥락과 동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의미에선 이번 행사가 한국 사회에 어떤 이정표를 세웠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신촌번영회를 비롯해 구글코리아, 그리고 한국에 위치한 미국, 프랑스, 독일 대사관이 공식적으로 행사를 후원했다는 것도 이번 행사가 단순히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행사라는 점을 반증하는 하나의 증거였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 이 행사가 한국 사회의 이정표임을 증명한 사건은 따로 있었다. 바로 행사가 벌어지는 신촌 연세로 앞, 축하 공연이 벌어지는 현대백화점 U-FLEX 앞 광장, 그리고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신촌 기차역으로 가는 길을 가로 막은 일군의 사람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동성애‘회복자’모임, 또는 기독교나 예수라는 문구를 강조한 피켓을 들고 있었다. 연세로 앞에 있던 이들은 확성기와 스피커를 크게 틀어 놓고서 한창 풍물놀이를 하던 사람들 바로 옆에서 이들의 죄를 용서해달라는 기도를 올렸다. 퍼레이드를 가로막은 이들은 동성애는 죄악이며 지옥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몇몇 사람들은 퍼레이드 행렬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어 말싸움을 하기도 했다.

계속 이들이 길을 터줄 생각을 않자 경찰이 출동했지만 이들은 오히려 바닥에 드러누우며 저항을 하였다. 평소에 이들이 경찰의 엄중한 처벌, 법치주의를 강조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들의 이러한 모습은 어떤 의미에선 하나의 블랙 코미디였다. 한국 사회를 감싸는 거대한 블랙 코미디 말이다.

▲ ‘하나님 앞에 동성애는 죄악이고 지옥이다!’는 기독교 단체의 피켓 앞에 ‘교회에서 기타치던 그 오빠 사실 게이야!’라는 재치있는 문구의 피켓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더욱 돋보였던 것은 계속 행사를 방해하고 시비를 걸어오는 이들에 대한 사람들의 대처였다. 동성애를 비하하는 문구를 드는 피켓 앞에서 어떤 사람은 한 쪽 면에 ‘교회에서 기타 치던 그 오빠 사실 게이야!’, 그리고 다른 쪽 면에는 ‘교회에서 반주하던 그 언니 레즈야!’라는 재치 있는 문구를 내건 피켓을 들고 있었다. 계속 동성애자들로 하여금 동성애는 죄악이니 회개하라고 외치는 사람들에게는 당신부터 회개하라는 말을 외쳤다.

어떤 사람들은 계속 행사를 가로막는 이들에게 그렇게 가만히 있지만 말고 어차피 거리로 나온 겸 함께 놀자는 말도 했다. 증오의 장막으로 두 겹, 세 겹 자기 몸과 마음을 감싼 채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에 대한 최고의 명약은 그 증오를 조금만 뒤트는 순간 한 편의 희극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마치 무조건 웃기게 보인다고 해서 웃기는 게 아니라 어딘가 부조리한데 정작 당사자는 너무나도 진지한 상황이 연출될 때 웃길 수 있는 것처럼, 이들은 희극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충분히 입증하였다.

사실 이러한 한 편의 희극은 비단 신촌 거리에서만이 아니라 한국 이곳저곳에서 열리고 있는 일련의 장편 희극이다. 몇 년 전 SBS에서 방영된 김수현 각본의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이 동성애자이고, 남자 파트너와의 사랑을 보여주자 몇몇 단체들이 신문 광고로 이 드라마는 동성애와 에이즈를 조장한다는 주장을 펼쳐내었다. 물론 그들은 에이즈의 원인은 동성애가 아니라 충분한 피임이 없는 성관계, 그리고 잘못된 수혈 등으로 에이즈 보균 환자의 혈액이 섞이는 사고 등에 있다는 사실은 도외시하기에 바빴다.

2011년에 방송되었던 KBS의 단막극 시리즈 <드라마스페셜>의 한 편인 <클럽 빌리티스의 딸들>은 기독교 단체들의 항의로 다시보기가 잠정적으로 중지되는 일도 있었다. 마포구청은 성소수자들의 인권 단체가 내건 현수막을 불허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저지르기도 했었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동성애라는 것은 최악의 범죄이자 당장 지옥으로 떨어져야 할 행동 이상도 이하도 아닐 따름이다. 그리고 정작 그들은 동성애를 몰아내야만 한다는 신념 아래 혐오를 부추기는 각종 발언과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어디 그 뿐이랴. 한국은 비단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떠나 각종 집단과 단체에 대한 혐오가 이미 극에 달해있다. 조금만 정부에 비판적인 행동과 말을 하면 바로 ‘종북’이라는 수식이 붙고,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해낸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출신이 호남 지역이라면 ‘홍어’, ‘피떡갈비’ 와 같은 비하어가 나붙는다. 전교조를 비롯한 노동조합과 진보 정당에 대한 비하는 이제 그들에게는 일상이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은 혐오를 먹고 사는 이들로 가득찬 세상이 되고 만 것이다. 정작 말로는 법치주의, 준법, 팩트를 운운하면서도 실제 언행과 행동은 비하와 혐오만으로 가득 차있는 그들의 모습은 그런 말로 밖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처지가 되고 말았다. 대체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번 퀴어문화축제의 슬로건은 ‘사랑은 혐오를 이긴다’였다. 물론 단순히 계속 사랑만 한다고 해서 이들이 갑자기 혐오를 먹고 사는 행위를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운운하는 법이 바로 자신들에게도 똑같이 적용이 된다는 사실 역시 몸소 알게 해줘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러한 혐오가 도저히 이제 더 이상 먹힐 수 없으며 당신들이 아무리 혐오를 해도 우리는 당당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 날, 혐오로 뭉친 자들 앞에서 소리를 외치고 사랑과 열정을 나누웠던 모습은 그들에 내뱉는 하나의 고함이었다. 그리고 그 고함은 당분간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지게 될 것이다.

▲ 퍼레이드가 동성애에 반대하는 시위대로 가로 막혀 장시간 동안 움직이지 못하는 와중에서도 퍼레이드 행렬의 맨 앞에서는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대형 무지개 깃발을 많은 사람들이 흔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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