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까지 집에서 자랐으니 20여 년을 부모님과 살았습니다. 부모님은 농사꾼이었으니 일이 정말 많았습니다. 기계도 없고 사람 손으로 농사를 지었으니 일손이 항상 필요했습니다. 자식이 여럿이라 일요일엔 항상 일거리를 준비해 두셨지요. 농사일이 왜 그리도 하기 싫었는지 일을 피하기 위해 발버둥 쳤습니다.

여러 농사일 중에 풀뽑기는 가장 하기 싫은 일이었습니다. 밭고랑에 가만히 앉아 풀을 뽑을려면 온몸이 쑤시고 마음이 요동쳤습니다. “이 많은 풀을 언제 다 뽑나?” 뽑기도 전에 풀에 기가 꺾여 다른 생각만 들곤했습니다. 뒷동산엔 아이들이 놀러 나왔을 텐데, 만화영화 하고 있을 텐데…. 이런 마음이 가득해 풀은 안중에 없고 도망칠 생각만 했습니다.

이렇게 살았으니 어머님께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 네가 어떻게 집짓고 산 다니고 농사를 짓는지 믿기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산에 살면서 부모님이 농사꾼이었다는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밭매는 어머님을 두고 도망친 일이 얼마나 후회스러웠는지 모릅니다. 부모님이 하신 농사일과 삶을 어깨너머로 배운 짧은 시간이 산에서 살 수 있게 해준 힘이었음을 깨달으며 고마움에 눈물 흘리곤 합니다.

5월까지 연약한 모습으로 동정심을 불러 일으키던 풀들이 6월부턴 무서운 기세로 집 주변과 밭을 차지합니다. 감자밭, 고구마밭, 도라지밭, 콩밭, 텃밭까지 어찌나 풀들이 잘 자라는지 감자밭 매고 돌아서면 다른 밭에 풀들이 가득합니다.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그 많은 풀들을 손으로 하나하나 뽑아야 합니다. 크고 작은 풀들을 하나하나 시간 잊고 뽑다보면 자라면서 풀뽑기를 왜 싫어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풀은 밭에서만 자라는게 아님을 풀뽑기를 하다보면 깨닫습니다. 마음 밭에도 크고 작은 풀들이 쉼없이 자라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마음 밭에 풀들이 자라고 있음을 알지 못할 땐 시간 잊고 풀을 뽑기란 지루한 일입니다. 고구마밭 풀을 뽑으면서 마음 밭에 풀도 뽑고 있음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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