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를 비롯한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첨단 유비쿼터스 시대에 발맞춰 미디어를 활용한 주민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가령 버스 정류장에 단말기를 설치, 버스별 도착시간과 노선안내 등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과거 버스가 중간에 고장이 났거나 교통체증에 걸려 한참 늦게 도착할 예정인데도 아무런 정보가 없어 무작정 기다리던 것에 비하면 그 편리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은 일부 지자체에서는 버스 정류장에서 거리로 정보제공범위를 확대해 나가려는 바람이 불고 있다.

서울 강남구청은 최근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역 일대를 유비쿼터스를 테마로 한 미래형 거리로 탈바꿈하겠다고 밝혀 주목을 받고 있다. 계획에 따르면 강남구는 강남역에서 교보타워사거리까지의 강남대로 구간 760m를 세계적으로 유명한 첨단 디자인 거리로 조성한다. 이를 위해 거액의 시예산과 구예산을 투입해 올해 말까지 사업을 완료할 예정이라고 한다. 맹정주 강남구청장은 “기존에 복잡한 거리 시설물들을 비우고, 통합하여 걷기 편한 거리를 만들고, 통합되는 가로 시설물에는 첨단 IT기술을 적용한 ‘미디어 폴’을 통해 세계적인 유명거리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 서울 강남대로에 들어설 유비쿼터스 테마 거리 개념도. 왼쪽의 기다란 막대형 구조물이 조선일보 기사만 노출하게 될 ‘미디어폴’이다.

강남구청이 발표한 계획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미디어 폴’이다. 폭 1m, 높이 11m의 ‘미디어 폴’이 강남역 7번 출구에서 교보타워 사거리 구간에 22개가 설치된다. 미디어 폴은 컴퓨터가 내장된 단말기(키오스크)를 통해 지역정보나 교통정보 등의 검색과 뉴스 검색 등 웹 2.0 시대에 맞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설치된 ‘미디어 폴’은 국내외 유명 미디어 아트 작가들의 거리작품 전시장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거리가 디지털이라는 옷을 입고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정보와 즐거움을 동시에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하루 유동인구만도 10만명이 넘는 강남역 대로변에 다양한 기능이 장착된 ‘미디어 폴’이 설치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유익하게 이용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유용한 도구라도 잘못 운용될 경우 불필요한 논란과 시비거리를 만들 수 있다. 강남구가 추진하고 있는 ‘미디어 폴’에도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미디어폴에 조선일보만이 서비스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매일같이 강남역을 지나는 10만여명이라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특정신문의 논조가 실린 콘텐츠에 노출되도록 강요하고 있는 셈이라는 지적이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강남구청측은 자신들이 조선일보를 지정해 서비스하도록 한 것이 아니라 사업을 맡은 삼성SDS측에서 임의로 그 신문을 선정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또한 ‘미디어 폴’의 제작과 설치를 맡은 삼성SDS의 관계자는 “신문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검토한 결과 조선일보가 보유한 기술력 때문에 선택한 것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고 주장했다. 기업으로서는 가능한 얘기일지 몰라도 구민 혈세의 집행자이자 이 사업의 발주자인 강남구청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무책임한 입장이다.

무엇보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특정시각을 가진 특정신문의 콘텐츠만 무차별적으로 거리에서 노출된다는 얘기인데 이는 TV로 치면 시청자의 채널 선택권을 빼앗은 것이나 다름없다. 조선일보 애독자의 경우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조선일보를 싫어하는 주민이라면 왜 내가 낸 세금으로 보기싫은 언론사의 콘텐츠를 봐야하는지 화가 날 일이 아니겠는가.

삼성SDS측이 밝힌 특정신문의 '기술력'이라는 것도 그렇다. 이미 다른 신문들도 조선일보의 '아이리더'와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오히려 더 편리하면서도 효율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강남구청이 이런 사실을 알고도 조선일보와만 사업을 추진해왔다면 특정 언론 편들기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혹 강남구청이 이런 사실을 몰랐다면 업체에 휘둘리는 예산집행이라는 반발을 살 수 있다. 모처럼 인터넷 강국의 장점을 살린 강남구청의 야심찬 유비쿼터스 사업이 불공정 시비로 오점을 남기지 않도록 현명한 정책결정이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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