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선거 판세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평범한 유권자들 뿐만 아니라 공표 금지된 여론조사 결과를 쥐고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지방선거가 원래 예측이 어렵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선거 분위기가 가라앉고 유권자들이 말을 아끼면서 한 겹의 안개가 더해졌다. 단위가 크고 사람들의 관심도 제법 높아 비교적 예측하기 쉬운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조차도 여전히 예측이 어렵다.

‘보통 정치인’ 된 안철수, 광주 시장 선거에 따라 '낙폭' 결정된다!
물론, 안개가 다소 옅은 지역도 있다. 제주도지사 선거의 원희룡 새누리당 후보 정도는 캠프 내부적으론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서울시장 선거와 충남도지사 선거에서 제법 격차가 나는 승리를 기대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여전히 보수파 결집에 따라 뒤집어질 수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민주당의 전통적 텃밭인 호남은 광주에 전략공천한 윤장현 후보가 무소속 단일화한 강운태 후보를 꺾을 수 있을지가 여전한 관심사다. 새누리당 역시 심지어는 부산시장선거와 대구시장선거에서도 의외의 결과가 생길 수 있다고 걱정하는 분위기다. 나머지 박빙지역들까지 생각한다면, 이 선거 결과는 ‘여권 압승’으로 나와도, ‘야권 압승’으로 나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다.
▲ 지방선거를 하루 앞둔 3일 오후 김한길·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한 뒤 취재진에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도 고약하게 지방선거 이후 야권의 정치지형의 변동을 예측해봐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은, 선거 결과와 상관 없이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현상’의 주인공에서 '보통의 정치인'으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안철수 대표의 모든 정치적 기회가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안 대표는 홀로 거대 양당에 맞먹는 지지를 받던 정치인에서 야권의 고만고만한 차기 주자 중 한 사람으로 격하된 것만은 분명하다. 반면, 김한길 대표의 경우 기존 민주당에서도 지분이 별로 없었던 사람이기에, 합당을 이루어내고 당대표의 임기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본전 이상’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김한길 대표는 안 대표와는 달리 지방선거가 ‘여당 압승’으로만 귀결되지 않는다면 자신의 지분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철수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방선거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는 경우에도 머리가 복잡해진다. 특히 전략공천한 윤장현 후보가 무소속 강운태 후보에 패배할 경우 지도력에 엄청난 상처를 입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안철수 대표가 부산시장 선거에는 별다르게 개입하지 않고 광주시장 선거만 적극 지원 유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광주시장 선거 결과에 따라 정치인 안철수의 낙폭이 결정된다.
박원순은 'No.1'이 될 수 있을까?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서울시장 선거는 박원순 시장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당장에 야권의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가 된다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한 정치부기자는 “박원순 시장의 캠프에는 이미 야권의 ‘전문가’들이 다 모여 있다. 그에 대한 기대감을 보여준다”라고 설명한다. 서울시장 선거 재선에 성공한다면 박원순 시장이 당장 지난 대선 유력한 야권후보였던 문재인·안철수 두 주자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No.1'의 지위도 점할 수 있을 것이다.
▲ 박원순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장 후보가 3일 서울 서초구 반포쇼핑타운 3동 상가 앞에서 유세를 마친 뒤 차량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분석에 걸맞게 박원순 후보는 극심한 내거티브 공세 속에서도 미래를 내다보는 '스탠스'를 잘 잡고 있단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KBS에서 <정도전> 42회 방영 직후 한 TV 연설은 그간 야권에 부족한 선거전술을 보여줬다는 평이다. <50대, 두 번째 청춘을 응원합니다>라는 이름이 붙은 이 연설은 “존경하는 서울시민 여러분! 오늘은 저와 제 친구들인 50대, 여러분들의 아버지이고, 남편이고, 아내인 우리 세대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라며 50대를 타겟으로 삼았다. 이 연설은 잘 짜여져 있었는데, 민주당의 취약 세대로 구분되는 50대를 향한 그의 '멘트'는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보여준단 평가까지 받고 있다.
“저는 1956년생인데요, 1955년부터 1963년까지 태어난 50대들을 베이비부머세대라고 하지요.우리 친구들이 서울에만 150만 명입니다. 50대 여러분! 우리가 대한민국입니다. 한강의 기적, 88 올림픽, 모두 우리가 만들었습니다. 세계 경제 규모 12위의 경제 강국 우리가 만들었습니다. 다시 자부심을 회복합시다. 우리의 미래, 우리가 안정되게 만듭시다. 제가 당사자의 마음으로, 친구의 마음으로 여러분들의 인생 후반전을 준비했습니다.”
이 연설에서 박원순은 산업화세대의 자긍심을 치켜세워 주면서 자신이 고안한 복지정책을 제안했다. 평생 새누리당만을 지지해온 60대 이상의 세대와는 달리, 2002년에는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 기억이 있는 그 세대를 적극적으로 호명했다. 이러한 호명이 있었더라도 2012년 대선에서 그들이 박근혜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했을지 의문이 든다면, 박원순 시장이 대선후보로서의 강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물론, 선거전에서 여전히 능숙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 박원순 후보이기에 정치인으로서의 장래는 낙관하기 어렵다는 시선도 있다. 한 일간지 기자는 “냉정하게 말해 이번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는 본인이 잘해서 유리한 것이 아니라 정몽준 후보의 자책골 때문에 유리한 것이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트위터 등 SNS에서의 소통이 활발한데도 지지자들도 납득하지 못할 선거 포스터를 제작하고, 정몽준 후보의 네거티브 공세에 제대로 대처하고 역공을 보여주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다른 야권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더 가다듬어야 할 것이 많다는 지적이다. 박원순 시장이 재선에 성공해 야권의 ‘유력한 차기 후보’가 될 지 아니면 추가적인 바람이 불어 독보적인 대선후보로 부상할지 이번 선거의 가장 큰 관심 사항이다.
안희정은 '차기' 혹은 '차차기'를 향해 진군할 수 있을까?
안희정 충남지사의 재선 여부에도 상당수 야권 지지자들은 관심이 많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참여정부 시절 이광재 전 강원지사와 함께 ‘좌희정 우광재’라 불렸을 만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확실한 정치적 측근이었다. 그럼에도 안희정 지사는 여전히 한미 FTA에 찬성의사를 밝히고 있고, 이승만과 박정희 등 독재자에 대해 어느 정도 공로를 인정하는 등 주류 친노와는 다른 행보를 걸어왔다. 이번 선거전에서도 문재인 의원의 ‘경남지역에서의 통합진보당 후보와의 야권 단일화’ 주장에 대한 견해를 새누리당 후보가 묻자 “그걸 왜 저한테 묻죠?”라고 받아치는 재치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안희정 새정치민주연합 충남도지사 후보가 2일 천안의 선거캠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희정 충남지사가 택할 수 있는 전략적 유연성은 박근혜 대통령의 그것에 비유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물학적 딸이기 때문에 그가 아무리 다른 시도를 하더라도 박정희 지지자들의 지지는 견고하다. 다른 보수 후보가 진보적 요소를 받아들일 경우 비난을 받을 수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강행돌파할 수 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나 복지공약을 내세웠을 때에도 ‘집토끼’를 유지한 채 중도층을 공략할 수 있는 힘으로 작용했다.
안희정 지사 역시 마찬가지다. 안희정 지사가 아무리 다른 시도를 한다 한들 ‘친노’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그가 중도층을 공략하기 위한 여러 시도를 할 경우 그것은 그대로 그의 정치적 자산이 될 수도 있다. 그 역시 재선에 성공한다면, 친노의 '적자'로 차기를 도모해 볼만하다. 다만, 정치권 관계자들은 안희정 충남지사에 대해 ‘무리하지 않고 차분히 준비해서 탄탄하게 일을 처리하는 성품’이라 설명한다. 안희정 지사의 생각으로는, 비록 임기의 대부분을 마친 상태라고는 하나 충남지사를 중도사퇴하고 2017년 대권에 도전하기보다, 충남지사 3선 임기를 끝낸 후 반년 후에 닥치는 2022년 대선에 출마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부산의 오거돈, 문재인에게도 영향?
부산시장 선거에 대해서 야권에게 희망적인 전망이 있다. ‘엄살’일 수도 있지만, 새누리당 내부에서 끊임없이 무소속 오거돈 후보의 승리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부산시장 선거의 결과의 의미에 대해서는 선을 긋는다.
▲ 선거를 하루 앞둔 3일 오거돈 무소속 부산시장 후보가 부산 서구 충무동 교차로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누리당을 취재하는 정치부 기자들은 “새누리당은 부산시장 선거에서 패배할 수 있다고 보지만, 패배한다 해도 서병수 후보의 개인문제로 몰고 갈 것 같다”라고 전한다. 새누리당 관계자들은 “부산 지역의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나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율은 여전히 높다. 이러니 부산에서 진다 한들 이게 정권심판 여론일 수는 없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새누리당이 부산의 패배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고 읽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오거돈의 승패는 야권 지지자들의 기분에는 큰 영향을 미치겠지만 의외로 야권의 정치 지형도 변화에는 큰 영향을 못 줄 수 있다. 부산 지역의 특성상 오거돈 후보는 당선될 경우라도 끝까지 약속한 대로 무소속을 고수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새누리당 김무성 선대위원장이 서병수 후보를 적극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오거돈 후보의 승패는 향후 여권의 정치 풍향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부산지역의 선거 결과가 지원 유세에 나섰던 문재인 의원의 입지에는 다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시각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오거돈 부산시장 후보의 승패와는 큰 관련이 ㅇ. 지역정계에서는 오히려 문재인 의원과 친분이 있는 황호선 새정치민주연합 사상구청장 후보의 당락이나 득표 현황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문재인 의원의 부산지역에서의 영향력이 확인될 경우 그가 원하건 원치 않건, 다시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될 수 있다. 물론, 정치권의 복수 관계자들은 “문재인 의원이야 당내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선주자가 되려면 시민의 열성적인 지지와 본인의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이 두 부분에서 다른 정치인을 압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라고 설명한다.
▲ 2일 오후 경남 김해시 율하 카페거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이 한 어린이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문 의원은 이날 같은 당 김맹곤 김해시장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유세 활동을 벌였다. (연합뉴스)
김부겸은 패배해도 흥할 수 있다
의외로 이번 선거에서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대구시장 후보다. 김부겸 후보는 지역정서에 맞춰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을 플래카드로 내걸고 '김부겸 대구시장 대박. 박근혜 대통령 대박'을 구호로 삼았을 정도였다.
이에 대해선 야권이나 진보진영에선 비판할 수도 있지만, 김부겸 후보가 40%대를 돌파하는 수준의 성과를 거둘 경우 당내 발언권이 커지는 것은 피할 수는 없는 현실이 될 것이다. 김부겸 후보는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정치인 중에서는 안철수 공동대표에 가까운 성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철수 공동대표가 아직 민주당과 합당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당시 안철수 측으로 합류할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지방선거 과정에서 안철수 공동대표의 존재감이 많이 희석된 가운데, 김부겸의 당내에서의 부상이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관전 포인트다.
▲ 6·4 지방선거를 하루 앞둔 3일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대구시장 후보가 북구 침산동의 한 아파트 앞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 외에도 김진표 경기도지사 후보 선거에 손학규 고문이 적극 결합하는 등 여러 변수들이 있다. 손학규 고문은 경기도지사 선거 이후 7월 재보선에 포함될 수 있는 수원의 몇 개 선거구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7월 재보선의 판이 커지면서 손학규 고문과 정동영 고문 등 새정치민주연합 당내 중진들의 여의도 복귀 시도에도 파란불이 들어온 상황인데 이는 야권의 권력 지형을 바꿀 잠재력이 있는 사안이다. 6월초 지방선거에서 7월말 재보선까지의 두 달의 기간 동안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의 권력지향의 변화가 2016년 총선을 대비하는 야권의 진용을 결정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야권 지지자들에게 지방선거의 결과를 기대하게 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 6·4 지방선거 D-1일인 3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수지장애인종합복지관을 찾은 새정치민주연합 김진표 경기지사 후보(왼쪽에서 2번째)가 손학규 공동선대위원장과 함께 용인시민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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