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 출신답다는 소리가 저절로 나올 만큼 화끈하다. 불도저처럼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6개월 동안 절치부심하고, 청와대 뒷산에서 촛불을 보며 와신상담하더니 확실하게 챙겨줬다. 정부 스스로도 솔직하다 못해 노골적이다. ‘감세효과는 세금을 내는 소수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인정한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명박 정부의 부자를 위한 첫 번째 선물’이라고도 했다.

‘부자만을 위한 감세’라는 비판이 쏟아지니까 ‘근로자의 50%가 세금을 못 내고 있기 때문에 감세를 해줄 수 없는 것’이라고 ‘친절한 만수씨’가 되기도 한다. ‘재벌경제와 서민경제는 함께 가는 것’이라는 궤변도 쏟아낸다. 더불어 ‘저소득층은 세출을 통해 지원하게 될 것’임을 강조한다. 매번 거짓말을 숨 쉬듯 내뱉는 정부이긴 하지만, 믿어 보자. 믿는 자에게 복이 있고, 구원이 기다린다고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 지난 6월16일 열린 '빈곤철폐! 생활임금 쟁취를 위한 기자회견' .ⓒ빈곤사회연대
감세 규모가 ‘억…억…’이 아니라 ‘조, 조’로 넘어가니 숨이 막혀 뇌로 가는 혈액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까닭에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안 가니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그래야 ‘세출을 통해 지원한다’는 말의 진위를 나중에 검증이라도 할 터이니 말이다. 감세 2년차인 2010년 감세 규모는 2007년과 비교하여 17조9천억원, 2012년에는 21조3천억원에 이르게 된다. 연도별 감면액을 5년간 합산하면 무려 75조원에 이른다. IMF가 터지고 나서 경제 살리기를 위해 투입된 공적 자금 150조원의 절반에 이르는 액수이다. 이러 어마어마한 규모의 ‘에누리’는 대부분 1%도 안되는 기업과 소득이 상위 10%정도인 부자들에게 집중된다고 한다.

17조, 21조, 75조…. 대체 어느 정도 크기인가? 감을 잡을 수 있게 비교할 수 있는 걸 찾아보았다.

하나, 2008년 1월부터 7월까지 건강보험재정으로 지출된 돈이 15조8천억원쯤 된다. 건강보험 재정 수입은 17조3천억원 정도 된다. 17조원은 7개월 동안 5.08%정도 되는 보험료를 한푼도 내지 않고도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돈이다. 10%의 국민만이 아니라 온 국민이 말이다. 17조원을 건강보험 재정에 지원하면 보험료를 더 내지 않고도 모든 치료를 공짜로 받을 수 있다. 온 국민이 말이다. 그래도 돈이 남아돈다. 7조원 정도에 해당하는 돈이 말이다. 저소득층에게 세출을 통해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했으니 두고 보자.

둘, 2008년 보건복지가족부에 배정된 예산이 16조원 정도 된다. 이 예산으로 기초생활보장, 취약계층지원, 공공의료사업, 노인·가족·보육·여성·장애인 정책, 공적연금 등을 운영하고 지원하고 집행한다. 21조원이나 되는 돈은 보건복지가족부를 통째로 하나 더 만들고, 관련 사업과 정책을 지금보다 두 배로 더 해도 된다. 그러고도 남는 5조원으로는 소위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혀 온갖 차별과 억압, 피해를 당하고 있는 금융피해자의 빚을 모두 탕감할 수 있다. 그런데 9월 2일 정부에서 밝힌 신용회복지원기금은 고작 2천억원이다. ‘새발의 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복지를 확충하라는 요구에 항상 돌아오는 메아리는 똑 같다. ‘예산이 부족하다’라고. 지금도 사회 곳곳, 전국 곳곳에서는 2009년도 ‘예산 배정’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전쟁이 전개되고 있다. 파이가 점점 줄어든다는 걱정 속에서 전쟁은 더욱 치열하다. 힘없는 자, 권력에서 먼 곳에 존재하는 이들은 배제된다.

셋, 전기, 가스, 교통 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이 추석 이후 줄줄이 예고되어 있다. 지역난방요금은 이미 지난 8월에 10% 올랐다. 난방을 사용하지 않는 여름철에 요금을 올려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없게 하려는 얄팍한 술수를 쓰면서도 얼굴색 하나 안 변한다. 이러한 요금인상은 10%의 국민만 부담지는 게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그 부담이 돌아간다. 소득이 적은 이들에게 가는 부담은 더욱 크다. 그런데 올해 추가경정예산으로 한전과 가스공사에 1조2천억원이 지원되었다고 한다. 이 돈으로 24% 요금인상요인을 12%로 감소시켰다는 얘기가 전해졌다. 감세로 인한 돈의 20%이면 공공요금을 하나도 인상 안하고도 남는다는 얘기가 된다. 공기업 적자는 정부 재정지원과 공공요금인상을 통해서 메워주고, 감세로 인해 줄어드는 세수는 공기업을 팔아서 메우고, 그렇게 해서 돈 버는 공기업은 감세선물을 듬뿍 받은 대기업에게 팔고, 모든 부담은 국민들이 진다. 아무리 ‘비즈니스 프렌들리’라지만,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공기업 노조는 민영화 반대 이전에 공공요금인상 반대 총파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 정도 선에서 그치자. 얘기를 꺼내면 꺼낼수록 혈압만 높아지고, ‘소 귀에 경 읽기’이다. 21세기 초반 ‘좌파 바람’으로,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기 시작한 남미는 1980년대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잘 나가던 50~60년대를 뒤로 하고 국민의 절반 정도가 빈곤으로 내몰렸었다. 잘 사는 부자들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그들만의 도시’에서 안락한 생활을 누렸다. 한국사회는 땅덩어리가 좁은 탓인지, 아니면 천국을 향한 욕망에 기인해서인지 ‘담장 도시’가 아니라 하늘과 점점 가까이 하는 ‘도시 속의 도시’에서 부자들이 살아가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담장을 둘러치든, 오르지 못할 곳으로 올라가든, 사람들 사이에 벽과 차별을 만드는 사회는 비정상적인 사회다. 거품은 아무리 부풀어 오르더라도 결국 어느 순간 꺼지게 마련이다.

우리 사회 빈곤층은 정부 통계로도 700만명에 달한다. 이대로 가면 몇 년 안에 전체 인구의 30%를 넘는 계층이 빈곤층으로 떨어진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이들 빈곤층은 정치적이든, 사회적이든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와 요구를 내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지금은 많이 수그러들었지만 촛불집회에서 구속된 이들의 상당수가 실업자와 자영업자들이었다. 이들이 단지 다음날 ‘출근’에서 자유로운 처지였기 때문에 밤늦도록 촛불을 들지는 않았을 게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