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승원이 연기하는 지욱은 말이 형사지 해결사가 따로 없다. 독고다이로 칼과 흉기를 든 조직원 11명을 거뜬히 제압하는 스타일로, 강력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해결사급 형사다. 하지만 그에게는 꿈이 하나 있다. 여자가 되고 싶은 꿈이다. 지욱 안에 내재하는 여성은 융이 언급한 ‘아니마’의 차원에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아니마를 외면으로 표출하기를 바란다. 성 정체성을 바꾸고 싶은 게 지욱의 꿈이다. 하지만 부모에게 물려받은 성을 외과적인 수술로 바꾸는 건 돈이 많이 드는 일, 지욱은 강력계를 정리하고 남성을 여성으로 바꾸는 트렌스젠더가 될 것을 굳게 결심한다.

장진 감독의 신작 <하이힐>은 두 가지 새로움을 선사한다. 하나는 성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요, 다른 하나는 느와르적 정서다. 장진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두 이야기를, 터미네이터 같은 형사가 성 정체성을 고민한다는 설정으로 하나로 묶는 데 있어 서툴지 않아 보인다.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느와르를 하나로 묶는 하이브리드에 있어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씨줄과 날줄을 치밀하게 직조한 결과 덕이다.

헌데 <하이힐>에서 눈에 띄는 건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사이의 딜레마였다. 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기계발서를 보면 100이면 100,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고 쓰여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고 직업으로 삼을 때 일의 능률이 높아지고 일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찾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게 있다. 좋아하는 일이 잘하는 일일 때 시너지 효과가 생기는 것이지,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별개의 것일 때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모 개그맨은 골프를 좋아해서 잠시 개그를 접고 골프로 전향했다가 프로 골프 세계에 발자국을 남기는 데 실패하고 다시 개그로 돌아왔다. 해당 개그맨은 자기계발서에 쓰여 있는 것처럼 좋아하는 골프를 천직으로 삼고 싶어 하다가 자신이 제일 잘하는 일인 개그로 돌아온 셈이다. 이는 농구 스타 마이클 조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해야 해당 직업군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지,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다.

다시 <하이힐>로 돌아와 보자. 지욱이 잘하는 일은 ‘조폭 때려잡는 형사’ 일이다. 회칼과 몽둥이로 무장한 조폭도 두려워하지 않는 대담함과 싸움 실력은 그를 강력계에서 ‘원 톱’으로 부각시키기에 충분하다. 지욱은 잘하는 일인 강력계 형사보다는 트렌스젠더가 되겠다는 희망이 더욱 커 보인다.

하지만 그가 트렌스젠더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지욱의 내면에서 그토록 바라던 여자의 몸으로 강력계에 돌아오기는 버겁다. 여자의 몸으로 깡패와 맞서는 것은 무리다. 그래서 지욱은 강력계를 떠나고자 마음먹고 트렌스젠더가 되고자 하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향해 달려가지만 그 과정은 험난하기만 하다. <하이힐>의 지욱은 자신이 잘하는 일보다 좋아하는 일이 우선순위가 되었을 때 삶이 얼마나 고단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느와르 방식을 빌린 장진의 서글픈 농담이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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