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록 정부의 계획 첫머리에는 국민소득 3만불, 국가브랜드 가치 제고, 콘텐츠 해외 진출과 같이 시장의 외견적 모습과 ‘창조경제’에 치중되어 있지만 세부 계획들에는 주목해 봐야할 내용들로 가득 담겨 있다.

지난 22일 개최된 제4차 콘텐츠산업 진흥위원회에서 심의, 확정된 ‘제2차 콘텐츠산업진흥 기본계획’과 이에 포함된 ‘만화산업 육성 중장기계획’의 요약문이 28일 공표되었다. 콘텐츠산업진흥에 대한 계획은 올해부터 2016년까지, 만화산업 육성에 대한 계획은 올해부터 2018년까지 추진할 것을 상정하고 작성되었다. 정부는 보도자료에서 콘텐츠 산업에 대한 정부-민간 투자 금액을 현재 1조 1,221억 원에서 16년까지 1조 6,500억 원까지 확대한다는 내용을 중점적으로 홍보했다. 또한 만화 관련 계획에서는 ‘세계가 함께 즐기는 한국만화’를 비전으로 내세우면서 콘텐츠산업에 대한 계획과 비슷하게 창작 지원, 수출 확대를 표방하는 골자의 내용을 중점적으로 삽입하였다.

하지만 정부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이에 대한 반응은 썩 좋지 않다. 산업을 죽일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눈 먼 돈을 퍼붓고 있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반응은 단순히 서브컬쳐 팬들 사이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만화가를 비롯한 실제 만화, 콘텐츠 산업 종사자들 사이에서 냉소적인 반응이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왜 이런 비아냥거림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팬들 사이에서는 최근 논란이 되었던 강영만 감독의 <김치 전사>(김치 워리어)라는 작품으로 가지게 된 선입견이 가장 클 것이다. 해당 작품은 원래 독립적으로 제작되던 소규모 애니메이션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2010년, 서브컬쳐 팬들에게는 한국의 대표적인 서브컬쳐 동인 행사 ‘코믹월드’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김치홍보와 세계화를 위한 2D 애니메이션 시리즈 제작’ 사업에 선정되면서 약 1억 5천만 원의 지원금을 받게 된 이후 단순히 개인 프로젝트로 남을 것 같던 작품은 스케일이 커지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실제로 공개된 작품은 그다지 좋다고 말하기 어려운 수준의 완성도를 보였다. 곧 <김치 전사>는 정부의 서브컬쳐 지원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쓴 소리를 받게 되었다. 여기에 최근 논란이 되는 셧다운제,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중독 예벙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중독법), 그리고 아동 ‧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등에 대한 갈등이 끼얹어지면서 여론은 악화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러한 시행착오와 갈등과 별개로 발표된 계획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서브컬쳐 팬은 물론 종사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단순히 정부가 하는 일은 전부 나쁘거나 망할 수밖에 없으며 정부가 손을 끊으면 알아서 잘 될 것이라는 생각에 흠뻑 빠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정부 당국이 지난 세월 동안 신뢰도를 스스로 깎아 내리는 일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90년대 중반 이전까지 만화에는 ‘불량’이라는 불명예가 덧붙여져 왔었으며 90년대 후반에는 만화계 전반에 막대한 해프닝을 낳았던 청소년 보호법과 관련된 소동이 있었다. 또한 최근 몇몇 규제 정책을 추진하면서 원활한 대화와 정보 전달을 대신 일방적인 주장 전달에 그치는 부분이 크게 두드러지는 것도 맞다. 여기에 최근 발생한 세월호 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처가 상당히 실망스럽다는 점이 겹쳐지며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종류의 정책을 나쁘게 보기 쉬운 상황인 것도 있다.

그러나 몇몇 이들의 주장과 달리 만화를 포함한 콘텐츠의 다양성과 육성에 정부 및 관계기관의 지원은 큰 역할을 해왔었다. 특히 시장에서 사랑받지는 못하지만 문화의 근본을 다지는데 중요한 요소인 독립적 콘텐츠를 만드는 것에 있어 정부의 지원은 제작비에 허덕이는 이들 제작자에게 단비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오히려 만화의 경우, 지난 몇 년간 독립-대안만화에 대한 지원이 큰 폭으로 축소되며 작품 제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마당이다. 물론 <김치 전사>와 같은 사례가 있지만 애초에 <김치 전사>의 지원기관은 전문적으로 콘텐츠에 대해서 다뤄온 기관이 아니라 콘텐츠와는 거리가 한참 멀었던 농수산물 유통에 대한 기관이었다. 해당 기관의 지원 실패 사례를 침소봉대하여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사례를 막기 위해서라도 정부 당국에서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지원 및 진흥 계획을 유심히 봐야만 한다.

그렇다면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정책에는 크게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을까. 일단 계획에서 밝힌 수립 배경에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계속 강조했던 창조경제에 대한 내용이 두드러진다. ‘창조경제’라는 내용이 얼마나 애매모호한 단어인지는 이미 많은 이들이 언급해왔던 부분이기에 여기서 깊게 다루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단어의 사용과 별개로 계획에 담겨 있는 내용은 주목할 부분들이 상당하다.

비록 콘텐츠산업 진흥계획의 거시적 내용은 콘텐츠 펀드 확대, 인재 양성, 해외 진출 확대, 경쟁력 강화 등과 같이 예전에도 이미 여러 번 나왔던 내용들로 가득 차 있으나 수도권으로 과도하게 집중된 콘텐츠 산업, 향유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은 상기할 만한 내용들이다. 지역 영상미디어센터를 19개로 확대하며, 영화 상영 시설이 없는 지자체의 ‘작은영화관’을 올해 말까지 20개를 시범 운영한다는 계획들이 눈길을 끈다. 특히 ‘작은영화관’의 경우 이미 강원도 홍천 같이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에서 운영되며 지역 주민들의 호응을 끌고 있는 정책이다.

그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콘텐츠 등급분류에 대한 개선에 대한 내용이다. 이미 계획 발표 이전부터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영상물 심의 경우, 등급 분류 기준을 세분화하는 동시에 심의 신청자가 자신들의 콘텐츠를 직접 등급을 분류한 뒤 그 신청서에 따라 간편하게 등급을 분류하는 간이 등급 분류제도가 운영 중이며 게임물의 경우 청소년 이용불가 이하의 콘솔, PC 온라인 게임에 한해 게임제작사들의 뭉쳐 만든 민간기관인 게임문화재단에 등굽분류가 이관된 상황이다. 여기에 이번 계획에는 관련 법 개정을 통해 뮤직 비디오의 등급 분류를 민간 자율로 전환하며 웹툰의 경우에도 업계 자율 심의로 전환할 것임을 밝혔다.

비록 현재 비중이 많이 줄었으나 여전히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도서 및 출판만화에 대한 언급, 또한 영상물 심의에서 계속 뜨거운 감자로 자리 잡고 있는 제한상영가/제한상영관 문제를 비롯해 민간 이관 논의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것이 흠이나 조금씩 오랜 시간 동안 갈등의 대상이 되었던 정부 중심의 심의 제도를 바꿔나가는 노력은 좋게 보아야 할 것이다. 그 밖에 저작권 및 게임 과몰입 에방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통합 저작권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등 콘텐츠의 인식 및 유통에 대한 부분을 개선하고 또한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를 신설해 콘텐츠의 사용, 개발, 저작권 논란 등에 대한 분쟁을 처리하도록 하는 부분 등을 주목할 만하다.

▲ 정부는 만화산업 육성에 대한 계획을 설명하며 매출 증대, 해외 수출 확대와 함께 만화산업 자체를 공정하게 만들 것을 밝혔다. 이에는 불법복제에 대한 단속도 있지만 표준계약서 작성, 복지 정책 강화, 전문 교육 확대와 같은 사안들도 포함되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상대적으로 콘텐츠 진흥계획에 가려진 만화산업 육성 계획에 담긴 내용들이다. 계획서의 첫 머리에서 정부는 현재 한국 만화산업의 현황과 문제점을 짚으며 한국 만화의 중심이 웹툰에 있으며 계속 빠르게 전환되고 있지만 정작 그와 별개로 불공정 계약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그 문제의식의 일환으로 정부는 만화가와 포털-출판사들 간에 작성하는 표준계약서를 개발하는 한편 공정 계약을 유도하고 만화가 대상의 복지 정책,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것을 밝혔다. 또한 매년 우수만화를 선정해서 공공도서관에 배포하겠다는 계획도 참신하다.

계속 문화체육관광부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을 중심으로 일반도서 중 우수작을 선정하고 배포하는 일은 몇 십년간 꾸준히 계속되었지만 만화의 경우 오늘의 우리만화상, 대한민국 콘텐츠대상의 만화 부문을 통해 정부 차원의 우수작 시상은 있어도 시상에 그쳤던 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현재 네이버, 다음 등의 대형 포털에 치우친 웹툰 플랫폼을 중소 플랫폼 지원을 통해 다양성을 늘리며 현재 작품 연재 지원으로 편중된 만화 산업 지원도 만화 배경 소스, 창작 소재, 만화 평론지 및 다양성 만화잡지로 확대하는 부분도 주목해야 만 할 것이다.

이렇게 이번 정부의 콘텐츠/만화 산업에 대한 진흥 계획은 겉으로는 그저 그런 뻔한 틀 안에 있었지만 속 안의 내용들은 주목할 만한 것들로 차 있다. 특히 만화산업에 대한 육성 계획은 업계 사람들이 그간 주장하고 바라왔던 내용들이 담겨 있어 큰 주목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없지는 않다. 창조경제, 수출 확대 같은 틀로 싸여져 있는 것이 아쉬운 것이 아니다. 참신한 내용들이 분명 있지만 여전히 단순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몇몇 계획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콘텐츠 산업에 대한 계획에는 창작, 창업을 지원하는 ‘콘텐츠 코리아 랩’과 콘텐츠 업계 구직자들로 하여금 4, 5개월 간 현장 경험을 제공하는 ‘창작 인턴제’에 대한 내용이 있다. 건강한 생태계 조성을 이유로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제도는 있지만 여전히 개개인에 대해서는 창업, 인턴제 등 그간 계속 비판받아 왔던 내용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정부는 계속 청년 창업을 청년 실업 타개 및 경제 육성 정책으로 주장해 왔지만 창업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며, 또한 청년 인턴제 역시 사실상 싼 값으로 인력을 부려먹는 제도가 되었다는 사실은 여러 차례 문제가 되었던 부분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만화 관련 정책의 경우 재교육 프로그램 운영, 복지 확대, 만화 생태계 다양성 증진에 대한 부분은 분명 확연하게 발전한 사항이지만 정작 만화가 개개인에 대해서는 표준계약서 개발과 공정 계약 체결을 유도한다는 내용으로 그친다. 애초에 만화가 표준계약서는 이미 2000년대 중반에 만화계 양대 단체인 한국만화가협회, 우리만화연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공동으로 추진해서 만들었지만 정작 일선 현장에서는 사용되지 않아 사실상 사문화된 사항이었다. 애초에 매번 노동권에 대한 문제가 터지면 정부는 언제나 사업자들로 하여금 공정 계약을 유도한다고 하지만 정작 실제 현장에서는 정부의 그러한 유도가 아니라 노동자의 단결과 행동이 더 효과적이었다. 이상의 정책들에서 드러나는 모습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정부가 여전히 산업 육성과 노동권 보장이 별개가 아니라는 것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씁쓸한 상황이다.

애초에 문화 산업계가, 특히 만화가와 같이 개인 단위로 움직이는 산업 현장이 노동권이 더 보장받지 못하고 심지어는 종사자 개인도 자신의 노동권에 대해서 인지를 못하는 현실임을 생각하면 그에 대한 적극적인 조치만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해결책이 될 수있다. 물론 만화가 단체들조차도 이에 대한 접근을 하지 않은 마당에 정부에게 이러한 조치를 바라는 것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중소기업의 지원을 늘리고, 레진코믹스와 같은 중소 만화 유통 플랫폼을 많이 늘리는 것도 좋지만 그 전에 실제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콘텐츠 산업이나 문화 산업에 있어 더 많은 활발함을 가져올 것이다. 그에 대한 인식 개선이 가장 시급하지 않을까. 덧붙여 정부의 행보와 모습을 바라보는 종사자 및 팬들의 시각도 겉모습만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져 왔던 문제에 대해서 세밀하게 비판하는 섬세함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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