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골든크로스> 제목은 현재 대한민국에도 존재할 법한, 기득권을 지닌 상류층 1%의 고급 클럽을 말한다. 대한민국 정경계를 좌지우지하는 이들로 모인 클럽이지만, 이 클럽의 멤버인 서동하(정보석 분)는 자신의 권력을 살인과 거짓, 탐욕과 은폐의 도구로 사용한다. 권력을 가진 자이자 악의 축이기도 한 인물이다.

그는 사람을 죽였다. 강도윤(김강우 분)의 여동생을 골프채로 두들겨 패 목숨을 잃게 했다. 그의 괴물 같은 악행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강도윤의 아버지까지 살해했다. 자식을 죽였다는 어처구니없는 누명까지 씌운 것도 모자라 몰래 병실에 들어가 그의 숨통을 끊어 놓아 딸의 곁으로 보내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어제 방송된 <골든크로스> 13회에서는 강도윤까지 죽이려는 시도를 보였다. 사람을 시켜 바닷가에 내던지려 했지만 그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피투성이가 된 채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강도윤은 서이레(이시영 분)의 병실을 찾아가고, 그를 사랑하는 서이레는 어떻게 해서든 강도윤을 지켜주고자 애쓴다. 살인자가 바로 자신의 아버지임을 알게 된 서이레이기에 강도윤을 향한 미안하고 애틋한 마음은 더욱 깊어지기만 한다.

서동하에게 강도윤과 그의 가족은 씨를 말려야 하는 대상이다. 자신이 세운 사회적 위치, 명예, 권력에 대응하는 유일한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강도윤은 서동하의 악마적인 범죄를 찾아냈고 그 꼬리를 물고 늘어지며 위협을 가하고 있다. 그로 인해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어쩌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딸 서이레까지도.

서동하의 악행에 대한 변명은 딸 서이레에게로 압축된다. 그가 죄를 짓고 그 죄를 감추려고 발악하는 이유는 금지옥엽 같은 딸 서이레 때문이다. 그녀에게만큼은 훌륭한 아버지로 남고 싶다. 서이레 앞에 선 서동하의 얼굴은 언제나 인자하고 자상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피를 묻힌 손이 그녀의 뺨에 닿는 순간에는 더없이 따듯한 손으로 돌변한다.

서동하를 보고 있으면 희대의 살인마 스탈린도 제 자식은 끔찍이 여겼다는 말이 떠오른다. 아무리 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일지라도 그 역시 부성애를 지닌 한 아이의 아버지일 뿐이라는 의미. <골든크로스>는 뒤틀어진 부모의 사랑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지를 다소 극단적이지만 명확하게 짚어주고 있다.

이제 서동하가 서이레 앞에 서서 말 그대로 아빠 미소를 지어 보이는 장면이 징그럽기까지 하다. 그는 자신의 딸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위선의 탈을 쓰고 거짓 놀음을 하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의 말을 듣는다면 고개가 끄덕여질 수도 있다. 차분한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일리가 있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이레야! 이 컵도 이렇게 보면 둥근 모양이지만 또 이렇게 보면 직사각형으로도 보이지. 이런 사물도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하물며 살인사건이야 말해 뭐하겠어. 하나의 역사적 사건도 보는 사람에 따라서 얼마나 달라지는데… 너 그거 아니? 유대인을 학살한 건 히틀러였는데 그 히틀러한테 전쟁을 할 수 있도록 돈을 대줬던 사람들 역시 유대인들이었어. 니가 알고 있는 것, 눈에 보이는 것, 그것만 진실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야.’

서동하의 말은 꽤나 설득력이 있다. 자신의 범죄를 은닉하는 데 이보다 더 세련된 포장은 없다.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가 있고, 그 생각의 차이에 따라 사물이나 사건이 달리 해석될 수 있다는 논리. 역사적 사실까지 예를 든 그의 설명은 충분히 그럴싸했다. 그가 은폐한 범죄와 잘못과 악행을 하나도 알지 못한 상태라면, 그의 속이 얼마나 검고 추악한지에 대해서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상태라면 말이다.

서이레의 눈은 눈물로 그렁그렁하다. 강도윤의 아버지와 여동생을 죽인 범인이 자신의 아버지임을 알기에, 그리고 그 아버지가 눈앞에서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위선을 떨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오만함을 보여주고 있기에 슬퍼질 수밖에 없다. 실망의 차원을 넘어섰다. 이는 배신이자 모욕이며 자신의 부끄러움이기도 하다.

서동하를 연기하는 정보석은 <골든크로스>를 통해 천 가지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살인을 저지를 때의 표정은 섬뜩하기 그지없지만, 딸 앞에 서 있는 아버지가 되었을 때는 세상에 둘도 없는 딸바보다. 이중적인 연기가 그에게는 그리 어렵지가 않다. 그가 지닌 명철한 연기력은 어떠한 캐릭터도 소화하고도 남는다.

특히 <골든크로스>에서는 추악한 권력의 아이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며, 그 권력을 남용할 경우 어떤 패악을 낳게 되는지를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의 연기가 너무도 진지하고 사실적이라 마치 권력을 지닌 자들에게 거울을 비추는 것 같기도 하다. 조금이라도 자신을 뒤돌아보며 탐욕을 접고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라는 의미를 지닌 듯하다.

<골든크로스>는 회를 거듭할수록 흥미진진한 분위기가 배가되고 있다. 아마도 김강우와 정보석의 미친 연기가 일조하고 있기 때문일 테다. 이제 <골든크로스>는 종반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강도윤의 복수가 얼마나 통쾌하게 펼쳐질지, 서동하의 파멸이 얼마나 참혹하게 이어질 지가 궁금하다. 모쪼록 위선으로는 추악함을 감출 수는 없다는 진실을 끝까지 전해주는 작품이 되어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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