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관피아 척결’ 등 비정상의 정상화 아젠다를 밀어붙이기 위한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27일에는 국무회의 자리에서 교육·사회·문화 총괄 부총리를 신설하겠다는 입장까지 발표했다.

대통령이 교육·사회·문화 총괄 부총리라고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 때 없어졌던 ‘교육부총리’가 사실상 부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내각에 국무총리, 경제부총리, 교육부총리의 3가지 컨트롤 타워가 설치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같은 자리에서 “경제분야는 경제부총리가 경제관계장관회의를 통해서, 외교·국방·안보의 경우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왔는데 비경제정책 분야는 그러지 못했다”고 발언했는데 이 발언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좌우지간 경제부총리와 교육부총리는 국무총리의 업무를 보좌하기 위한 성격의 자리다.

▲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회의를 개회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새삼스럽게 국무총리의 업무를 보좌해야 할 새로운 부총리직의 신설이 필요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경제정책에 대한 판단의 경우 상당한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경제부총리가 따로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 하지만 교육, 사회, 문화 등 비경제분야의 경우 국무총리의 업무를 뒷받침하는 국무조정실 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따로 이를 관할하는 부총리직을 신설하겠다는 것은 국무총리의 권한과 역할이 집중되는 특정한 아젠다가 고려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아젠다’라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관피아 척결’로 요약되는 공직사회 개혁, 사회안전 강화 등의 부분이다. 즉, 교육부총리직의 신설은 국무총리가 ‘비정상의 정상화’와 관련한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 박근혜 대통령이 안대희 전 대법관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것에는 이러한 구상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일정한 고려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안대희 후보자는 검찰 내 특수수사 부문의 요직을 두루 거친 ‘특수통’이다. 청렴하고 강직한 대중적 이미지를 갖추고 있기까지 하다. 공직사회의 부조리를 찾아내고 개선하는 데에는 나름 적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안대희 전 대법관을 둘러싼 논란은 그의 이러한 ‘적임자’로서의 입장을 약화시키는 요소가 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전관예우’로 표현되고 있는, 대법관 퇴임 후 과다한 수임료를 받은 사실 등이다. 퇴임 후 한 달에 3억원 가까운 수입을 올린 데 대해 대법관 출신 변호사로서 법조계의 오랜 관행인 ‘전관예우’를 통해 일종의 ‘프리미엄’을 누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2011년 1월 이명박 정부 당시 정동기 전 감사원장 후보자가 비슷한 의혹을 사 한 달에 1억 정도의 수입을 거뒀다는 이유로 낙마한 바 있기 때문에 안대희 전 후보자의 수입 규모는 더욱 큰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법조계의 전관예우 문제는 관료사회의 유착 문제와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는 성격의 문제인데, 이것의 수혜자가 ‘관피아 척결’ 등의 임무를 책임지고 추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문제제기가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가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청사 창성동 별관에 도착해 굳은 표정으로 후보자 사무실로 가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법조계의 그런 관행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수입을 얻는 경우 한 달에 얼마만큼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것인지 잘 알려져 있지도 않기 때문에, ‘사람’의 문제로 접근할 경우 안대희 전 대법관보다 이 문제를 책임지는데 더 적합한 사람을 과연 찾을 수 있겠느냐라는 반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관피아 문제’를 척결할 만큼 이름 좀 날려본 법조계 출신 인사 중 과연 ‘전관예우’의 달콤한 혜택을 피해가는 고행을 선택한 이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가 내놓은 해명 중 “낡은 집에서 고생해준 가족들에게 보답하고 싶었다”는 대목이 있었다는 점은 이런 냉소적 추측에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데 거리낌이 없게 만든다. 기업 등 돈을 쫓는 일을 선택했더라면 훨씬 풍족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을, 자기 욕심에 공직을 고집해 가족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식의 귀족적 죄책감의 크기를 그보다 못한 미개(?)한 집안의 자식들이 과연 한 번이라도 가늠이나 해보았겠는가 말이다.

말이 나온 김에 도대체 ‘관피아’라는 것이 무엇인지 끝까지 따져볼 필요도 있다. 신설되는 교육부총리는 교육부장관이 겸할 가능성이 높다. 교육부장관은 교육부 공무원 출신 차관들의 보좌를 받을 것이다. 이 교육부 공무원들로부터 교육청 장학사, 현장의 교사에까지 이르는 어떤 탄탄한 ‘동아줄’들이 과연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교육부총리가 그 ‘관피아 척결’의 대상이 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국무총리가 관피아 척결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해야 하는 교육부총리가 바로 그 관피아 척결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더듬기도 어려운 문제다.

전면 개각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차기 경제부총리의 이름도 세간에 오르내린다. 대표적으로는 최경환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다. 최경환 전 원내대표는 우리나라 경제관료의 양대산맥을 형성하고 있는 경제기획원 출신으로 기획예산처의 전신인 예산청을 끝으로 관료 생활을 마감하고 이명박 정부 이후 정치인이 된 이후 지식경제부 장관까지 거친 이력을 갖고 있다. 최경환에게는 과연 ‘관피아’와 관련한 문제가 없겠는가? 언론을 통해 차기 경제부총리감으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인사 중에는 재무부 출신의 통칭 ‘모피아’에 속하는 이도 있다. 이런 이들에 대한 것도 두말 하면 잔소리다.

박근혜 대통령이나 이 시대의 진정한 실세로 불리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이러한 현실을 모를까? 오히려 그들은 검찰 특수부 출신의 안대희 전 대법관이 아니라 무슨 셜록 홈즈를 데려온대도 몇십년 동안 형성된 그물망 같은 촘촘한 기득권의 질서가 파괴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정부 조직을 프랑켄슈타인 마냥 여기 붙였다 저기 붙였다 뭐를 신설했다 없앴다 하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뭔가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박근혜 정권이 안대희 전 대법관을 기용하는 것은 무엇을 척결하고 뜯어 고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국을 관리하고 통제하려는 알량한 정치적(!) 시도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런 얘기다.

▲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27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회의장 입구에 서 있다. (연합뉴스)

정권과 언론이 무슨 만능열쇠나 되는 것처럼 얘기하는 ‘관피아 척결’의 과제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수행이 불가능하다. 최근 모 드라마에서 이방원의 부하들이 정몽주를 테러해 14세기의 당시 정국이 새삼스런 관심을 받고 있는데, 이성계나 정도전이 정몽주를 그렇게도 아끼고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체를 짓밟고 넘어가야만 했던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하물며 조선시대에도 그랬는데 지금에야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물론 모두 떨쳐 일어나 혁명에 나서자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온건한 방법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심지어 기득권에 안주해 정권을 잡아 뭐라도 한 번 해보자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상황에서 특별히 할 수 있는 얘기들이 많이 있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으로 관료 사회에 대한 민주적 감시를 강화하고, 건전한 시민사회의 상식을 만들기 위한 담론을 형성하며, 이를 위한 시민적 주체들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권을 잡고 있는 세력은 그런 얘기는 절대로 안 하고 시민적 역량을 축소시키는 방법을 새로 개발하는 데에만 골몰한다. 그러면서 카드 돌려막기 하듯, 조금이라도 기득권의 덕을 보려고 했던 사람들만 돌려가며 뭔가를 하기 위한 ‘적임자’로 내세우고 그들을 뒷받침 하겠다며 정부 조직을 이리 저리 헤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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