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만큼 얻어맞고 바닷물에 던져진 김지혁(강지환 분)이 다시 살아 돌아왔다. 바다 어딘가에서 시신으로 발견될 수밖에 없었던 그가 어떤 이유로 인해 가까스로 살아남게 된 것이다. 26일 방송된 <빅맨> 9회는 주인공 김지혁의 구사일생으로 시작됐다. 세상에서 가장 비천하고 처절한 모습을 한 채로 말이다.

어느 요양병원 병실 구석에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잔뜩 웅크려 몸을 부르르 떨던 김지혁을 시장통에서 만나 함께 자란 양대섭(장태성 분)이 찾아낸다. 그의 몰골이 가엽고 안쓰럽다. 지금이라도 당장 김지혁을 만신창이로 만든 놈들을 찾아가 그와 똑같이 만들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이제 양대섭에게도 현성그룹은 죽을 때까지 복수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렸다.

김지혁은 모든 것을 잃었다. 현성유통의 사장 자리는 원래부터 그의 것이 아니었기에 빼앗겼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을 키워준 시장통 사람들을 잃었고, 그가 돌아가야 할 자리를 잃었으며, 삶에 대한 애착과 희망을 잃었다. 그에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철저하리만큼 가진 것이 없는 자가 되어 세상에 홀로 남게 됐다.

그를 더욱 가슴 아프게 하는 건 자신을 믿고 따라준 시장통 사람들이 길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가게마다 폐업, 점포정리라는 스티커가 붙어있고, 현실을 비관한 한 상인은 급기야 제 목숨을 끊기까지 했다. 엄마라고 부르던 해장국집 주인 홍달숙(송옥숙 분)은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파는 신세가 됐다. 김지혁은 자책과 절망에 오열한다.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이 그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이유일 테다.

반대로 강동석(최다니엘 분)은 모든 것을 거머쥐게 됐다. 김지혁을 현성유통에서 내몰게 됨으로써 자신의 자리가 더욱 확고해졌다. 김지혁에게로 향했던 약혼자 소미라(이다희 분)의 싱숭생숭한 마음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가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으니, 아니 바닷물에 던져져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으니 이제 부모님으로부터 그녀와의 교제를 허락받기만 하면 된다.

현성그룹의 후계자이니 돈으로 하지 못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는 사람의 마음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은 자들 중 한 사람이다. 소미라를 백화점으로 끌고 가 좋아하는 가방을 마음껏 고르라고 한다. 소미라 여동생의 환심은 자그마한 명품 핸드백 하나면 충분하다. 강동석은 한쪽 벽에 진열된 가방 전부를 포장해달라고 말하며 소미라를 향해 미소를 짓는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의 표현이다.

김지혁은 모든 것을 잃었고, 강동석은 모든 것을 가졌다. 김지혁은 힘이 없고 나약하며, 강동석은 강하고 든든하다. 겉으로 보이는 모양새만 따지면 그렇다. 어떤 형태로든 이들이 서로 싸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를 두고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봐도 강동석에게 김지혁은 상대도 되지 않는다.

김지혁은 야구방망이를 들고 맨발로 뛰어가 현성그룹 정문 앞에서 선다. 그의 울분과 분노가 그를 미치게 만들고 말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렇게 무작정 덤벼든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야구방망이를 휘두르고 난동을 부리며 소리를 질러댄다고 해서 현성그룹이 무너지지는 않을 거라고.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야구방망이를 떨어뜨린다. 현실을 자각했다는 뜻이고 복수를 위한 다른 방법을 강구하겠다는 의미다.

김지혁은 구팀장(권해효 분)의 도움으로 조화수(장하선 분)를 만나게 된다. 그는 악마라는 별명을 지닌 현성유통 대주주이자 검은 세계의 대부다. 그가 축적한 부를 놓고 보면 얼마든지 김지혁의 복수를 이루게 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그는 철두철미하게 사리사욕을 챙기는, 상당히 위험한 인물이다. 자칫 잘못하면 김지혁 역시 잔뜩 이용만 당하고는 고층 빌딩에서 떨어져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

일단 김지혁은 조화수가 벌인 테스트에 성공한다. 돈을 좋아하지만 돈을 쫓으려 하는 자는 싫어하는 그의 마음에 김지혁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믿을만한 사람을 찾았던 조화수에게 김지혁은 듬직한 일꾼으로서의 존재가 됐다. 앞으로 김지혁은 조화수의 눈에 들어 그를 이용해 현성유통에 손을 뻗으면서 강동석에게 도전장을 내밀 것으로 보인다.

<빅맨> 9회의 마지막 장면은 현성유통 매각을 위해 마련된 자리에서 강동석과 김지혁이 만나게 되는 장면이었다. 강동석의 놀란 표정과 김지혁의 다부진 표정이 겹쳐지면서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그들이 본격적으로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될 것임을 암시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드디어 시작되고 만 것이다.

<빅맨>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 ‘물질만능주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거울을 비추고자 함일 것이다. 가진 자 강동석, 없는 자 김지혁의 대결 구도는 기득권과 피기득권의 대립이다. 이 작품의 성공여부는 그들의 싸움을 얼마나 현실감 있고 그럴싸하게, 그러면서도 속을 후련하게 그려내어 공감을 얻어 내느냐에 달려 있다. 어설프고 억지스러운 해피엔딩은 이제 그만, 모쪼록 억눌린 피기득권에게 조금이라도 힘과 위로가 되어주는 결말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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