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희야>는 여러모로 참 재밌고 흥미로운 영화였습니다. 일단 포스터만 보면 역시나 음울하고 암담한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을 그릴 것만 같아서 관람을 꺼리게 됩니다. 그것도 '학대를 당하는 어린 소녀'라는 소재는 <도희야>를 바라보는 불편한 심리를 더더욱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본 영화는 걱정했던 것에 비하면 거부감이 적고 밝았습니다.

영남은 어촌 마을의 파출소로 전임을 온 경찰입니다. 어딘지 폐쇄적이고 주민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는 것이 그녀에게 말 못할 사연이 있다는 걸 짐작케 합니다. 영남은 이 마을로 온 첫날부터 한 소녀를 만났습니다. 도희라는 이름의 소녀도 영남만큼이나 우울해 보입니다. 설상가상 계부로부터 툭하면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도희를 보며 영남은 측은지심을 갖고 본인의 직무에 걸맞은 보호를 합니다. 이것이 나중에 다른 파장을 몰고 오면서 두 사람을 난처한 상황으로 몰고 갑니다.

<도희야>가 흥미로운 건 감독이 은근슬쩍 긴장을 형성하면서도 그걸 장르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프닝에서 도희는 무당벌레와 개구리를 가지고 '살인교사', 아니 '살충교사'를 저지릅니다. 영화 속 주인공이 가정폭력의 오랜 피해자라는 걸 알고 본다면 이 장면에서 도희가 하는 행동의 근원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폭력의 전이일 것이고, 결국 자신이 늘 당하는 폭력의 주체(계부)를 향한 분노의 해소와 복수를 욕망하는 것입니다. <도희야>는 시종일관 이걸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관객으로 하여금 의심을 거두지 못하게 합니다. 만약 감독이 장르적으로 작정하고 연출하려 했다면 <도희야>는 지금과는 사뭇 다르고 <프라이멀 피어>에 가까운 영화였을 겁니다.

<도희야>는 영남이 어떤 캐릭터인지도 도입부에서 은유적 묘사를 통해 전달합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울면서 내달리는 도희를 멀찍이에서 본 영남은 굳이 뛰어서 몇 개의 골목을 거쳐 쫓아갑니다. 그 길의 끝에서 영남은 망망대해와 맞닥뜨리고는 도희를 따라가는 걸 멈추고 자리에서 멈춰버립니다. 이 장면은 영남의 캐릭터를 묘사하는 동시에 앞으로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날 일에 대한 암시의 역할을 합니다. 나중에 영남이 겪었던 곤란의 당사자(친구)가 그녀에게 말하는 걸 들어보면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영화의 결말에 다다라서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입니다. <도희야>를 보는 관객이라면 영남이 과연 그걸 극복할 수 있는지 또는 다시 한번 좌절하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됩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이유는 개봉일이 절묘했다는 것입니다. <도희야>는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와 같은 날에 개봉했습니다. 배급사에서 왜 이런 전략을 택했는지 알 수 없지만 두 영화에는 커다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주류로부터의 편견에 따른 폭력과 억압에 시달리는 소수자를 그렸다는 것입니다. 물론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경우에는 소수자지만 약자라곤 할 수 없습니다. (엑스맨이 소수자를 대변하는 캐릭터가 될 순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반면에 <도희야>의 소녀와 여자는 소수자면서 약자라는 이유로 다수의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처우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두 사람을 괴롭히거나 외면하는 쪽이 다수의 침묵과 동조에 의해서 이뤄진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한공주>도 그랬던 것처럼 <도희야>도 이런 현상을 매우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어서 더 끔찍합니다. 왜냐하면 일상에서 쉽게 맞닥뜨릴 수 있는 존재인 그들을 함부로 악이라고 재단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라거나 일부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가 없을 만큼 사회의 근간이 악의 토대를 이루고 있기에 그걸 바라보는 건 난감하고 무기력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공포영화 따위는 "저건 영화다"라는 주문으로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한공주>나 <도희야>와 같은 영화에게는 그것이 통하질 않습니다. 두 영화가 우리의 현실이라는 걸 인지하는 순간부터 더 없는 공포영화로 돌변합니다.

<도희야>를 보면 <델마와 루이스>나 <몬스터> 같은 소위 말하는 페미니즘 영화가 떠오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극히 보기 드문 여성 버디 영화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스릴의 요소도 살짝 첨가하여 더 흥미로운 관람을 유지합니다. 다만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소재로 끌어서 쓴 바람에 주제의식이 좀 혼란해진 감은 있습니다. 그래도 <도희야>는 관람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혹시 저와 같은 이유로 꺼릴 수도 있을 분들에게 권하고자 스포일러라는 걸 알면서도 밝히자면, 다행스럽게도 이 영화는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으로 우울함을 달래는 동시에 우리에게 희망을 제시합니다. 마지막에 카메라가 클로즈업으로 잡아서 관객에게 보여준 영남의 얼굴과 눈은 이 세상 모든 도희를 향한 위로의 메시지였습니다. 아울러 이 제스처는 부당하고 억울한 상황에 놓인 사람을 구하고 더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말합니다.

★★★★

덧 1) 배두나는 역시 연기가 좋고, 김새론도 이제는 아역 딱지는 떼도 좋을 만큼입니다. 근데 너무 말라서 안쓰럽네요.

덧 2) 결말부에 다다르면 정말 기이한 현상이 펼쳐집니다. 억울하게 덮이고 누명을 쓰게 된 진실을 거짓으로 규명해야 하는 세상이라니, 이것도 참 씁쓸하더군요. 진실을 진실로 보지 못하는 사회의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봤습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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