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희(김새론 분)는 천덕꾸러기 왕따 소녀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집에 들어오면 의붓아버지 용하(송새벽 분)와 할머니에게 ‘비오는 날 먼지가 날 만큼’ 맞고 또 맞는다. 고달픈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이라도 안식처가 되어야 하겠건만, 집이나 학교나 도희에게 안식처란 없다. 시골 버전 ‘소녀 잔혹사’가 따로 없다. 용하라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피해자가 도희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고, 이런 도희에게 한 줄기 빛이 찾아든다. 파출소장으로 영남(배두나 분)이 새로 부임했는데 영남은 왕따 소녀 도희에게 관심을 보인다. 할머니에게 두들겨 맞고 의붓아버지 용하에게도 학대당하는 도희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미성년자 보호라는 법의 보호 아래 도희를 두고자 하니, 도희에게 있어 영남은 수호천사가 따로 없다.

용하가 억압의 대상으로 삼는 건 의붓딸 도희만이 아니다. 용하가 고용한 외국인 불법 노동자가 없으면 어업을 하는 마을의 노동력은 상당 부분 손실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마을 사람들은 용하의 외국인 불법 고용이나 혹은 외국인을 향한 비하, 욕설과 구타마저도 용인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마을의 경제력을 꾸준하게 유지하려면 용하가 저지르는 불법과 폭력을 용인하고 눈 감아야 한다. 용하의 불법을 용인하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에서 한나 아렌트가 언급한 ‘악의 평범성’이 감지된다. 용하가 아무리 외국인에게 모멸감을 안겨주고 학대한다 해도 마을의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서라면 모든 마을 사람, 심지어는 경찰마저도 못 본 체하고 눈 감을 수 있기에 양심이 통째로 마비될 수 있는 악의 평범성을 마을 사람들과 경찰의 태도를 통해 얼마든지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도희를 둘러싼 의붓아버지 용하의 영향력이 영남에게 통할 리 만무하다. 하지만 장노년층 세대가 가득한 마을에서 용하를, 그것이 미성년자 폭력 행사든 불법 노동자 고용이든 영남이 어떤 방식으로든 법적 테두리 안에 가둔다면 마을 경제는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젊은 년 하나가 마을을 어지럽힌다”는 동네 남자들의 푸념은, 불법 체류 외국인노동자가 용하의 굴레 안에서 착취당하는 것은 얼마든지 용인할 수 있지만 반대로 용하의 발을 묶어 마을 경제에 위해를 가하는 영남의 태도는 결코 용인할 수 없음을 시사하는 마을 주민들의 이중적인 태도를 반영한다.

미성년자 도희와 불법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 보호보다 중요한 게 마을의 경제적인 이익이다 보니 경제 논리 앞에서는 기본적인 인권이 어느 정도 훼손되어도 상관없다는 마을 사람들의 ‘악의 평범성’이 작동하는 대목이다. 인권 보호를 경제 논리보다 앞세울 때 기득권자인 용하와 마을 사람들이 반발하는 건,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확고하게 다질 때에야 마을 경제가 건사할 수 있다는 개발 지상주의에 인간의 기본권이 함몰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도희야>는 이처럼 견고하게 다져진 용하와 마을 남자들의 카르텔에 도희와 영남이라는 두 여성이 어떤 방식으로 맞설 수 있을 것인가, 혹은 이들이 철저하게 얽어놓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순순히 백기 투항할 것인가를 묻는 영화다.

동시에 경제 지상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악의 평범성이 어떤 방식으로 마을 사람 전체에게 작용하는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경제 지상주의와 맞닿을 때 인간의 기본권이 얼마만큼 유린당할 수 있는가를 관찰할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마을 사람들의 태도를 마냥 나쁘다고 비난만 할 수 있을까. 지금과 같이 지독한 경제 불황 가운데서 경제에 유익이 되는 일이, 타인의 기본권이나 유익에 침해를 가하는 일이라면 양심의 가책으로 그 일을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을까. 아니면 양심의 소리를 묵인한 채 악의 평범성에 함몰되어 타인의 기본권을 저해하면서까지 경제 이데올로기의 종으로 남을 것인가 하는 점을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용하의 안하무인격인 태도조차 눈 감으며 경제적인 유익을 추구할 것인가, 혹은 양심의 소리에 따라 악의 평범성을 따르지 않을 용기가 있는가를 관객에게 묻는 영화가 <도희야>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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