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에 관심이 많은 야권 지지자들은 6월 4일 실시되는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이 승리할 가능성에 설레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따른 민심이반이 특히 수도권과 40대 여성을 중심으로 일어나면서 긍정적인 여론조사 결과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에선 참사 관련 구설수에 오른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와 전 안전행정부 장관으로 사태에 책임이 있는 유정복 새누리당 인천시장 후보가 어려운 지경에 놓이게 되었고, 경기도지사 선거에서도 당초 크게 앞서던 남경필 새누리당 후보를 김진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많이 따라잡았다는 분석이 있다.
또 참사 여파로 선거전이 냉각되면서 충북·충남·강원 등에서 현역 프리미엄이 작동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부산시장 선거에서도 무소속 오거돈 후보로의 단일화가 이루어진 이후 승리에 대한 기대감이 다소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이 경우 야권은 17개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최대 10군데의 승리를 거둘 수 잇게 된다. 새누리당이 영남권 5군데 외엔 대전과 제주만 가져가게 하는 야권의 ‘대승’이 되는 셈이다. 야권은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도 승리했다는 평을 받았으나 당시엔 17곳 중 8군데에서 승리했을 뿐이다.
▲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초등학교 주변에서 종로구청과 가회동 주민센터 직원 등이 선거벽보를 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론조사 의미 없다, 실제 선거 다를 것"
하지만 야권 지지자들의 희망이 실현되기에는 난관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당장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서부터 경계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내부 사정을 아는 한 관계자는 “지금 여론조사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 실제로 선거를 해보면 새누리당은 여론조사보다 더 높게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들 본다”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일부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여론조사에서 답변을 하지 않거나 새누리당 지지 유보 의사를 밝히는 조류가 보이지만 결국엔 이들이 새누리당 지지로 재결합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그 관계자는 “방송 3사의 보도 분위기는 야권 승리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젊은 층을 선거에 무심하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보수는 전멸’이라는 위기감 속에 이탈했던 새누리당 지지자가 결집할 가능성이 높지 않겠나”라고 전망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이 일종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다른 관계자는 “(그간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워낙 도덕적으로 위축된 상황이었다. 말을 잘 안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눈물 담화 하고 나서부터 현장에 가니 보수층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최경환 의원이 ‘대통령 눈물 닦아주자’ 운운하는 것도 그런 부분을 노린 것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지지층의 입장으로는 대통령이 거듭 사과하고, 사실 여부야 어떻든 대통령에게도 직언을 할 수 있다는 이미지가 있는 안대희 전 대법관을 국무총리로 임명하면서 ‘할 만큼 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 새누리당 경북도당(위원장 이철우)은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 때 눈물을 흘리는 사진을 당사 곳곳에 내걸었다. 경북도당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경북에서 눈물을 닦아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에서 사진을 걸게 됐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 '담화', 안대희 국무총리 지명....'터닝 포인트' 만들어졌나?
새정치민주연합이 첫 선거운동 지역을 경기도로 택한 반면 새누리당이 충청으로 간 까닭도 이런 맥락에 결부해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한 언론사 기자는 “새정치민주연합 입장에서는 수도권에서의 민심 이반 추세를 확실히 추동하여 세 군데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는 것이 여권을 가장 압박하는 길이라 생각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 기자는 “반면 새누리당의 경우 이완구 원내대표가 충청권이고, 고 육영수 여사의 고향이 옥천이며 박근혜 대통령이 세종시 원안을 고수하는 등 충청권에 인연이 깊다. 가장 먼저 되찾아 올 수 있는 지역이라 판단했을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에 가장 유리한 시나리오를 예상해보자. 수도권에서 경기도 한 곳을 건진다. 충청권에서는 안희정이 버티는 충남만 내주고 대전·충북·세종을 가져온다. 강원도에서 승리를 거두고 부산의 바람을 막아 영남권과 제주도를 고수한다. 이 경우 새누리당은 11군데서 승리를 거두고 야권은 호남권 외엔 서울·경기·충남만 가져가는 6군데 승리에 그친다. 몇 군데 선거가 여전히 박빙이라고 가정한다면, 나올 수 있는 결과의 편차가 이렇게나 크다.
세월호 참사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느냐”라고 개탄할 수도 있다. 유시민 전 장관이 그랬듯 “선거 때만 되면 1번을 찍겠다고 다짐하는 유권자들을 보면 화가 난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마침 오늘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일이다. ‘사람이 먼저’라는 가치를 지니고 깊은 공감능력을 가진 정치인에 대한 희구가 절정에 오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숙지해야 할 것은, 통치자 중 몇몇의 도덕성과 공감능력은 그들이 집권했을 때 체제가 그런 가치를 실현해내고 시민에 대한 공감능력을 가지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사태라는 것이다. 그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기 잇속을 잘 차리는 사업가 출신이라 하여 그가 집권했을 때 우리 모두 잇속을 차릴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만큼이나 명백한 것이다.
야권, '사람이 먼저다' 보여줄 수 있는 능력있나?
만약에 유권자들이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 세력이 '사람이 먼저다'라는 가치를 체화하고 있을 뿐 아니라, 체제 속에서 그 가치를 제도적으로 구현할 방책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면,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건 이후 야권의 지지율은 금세 올라갔을 것이다. 새누리당의 지지층까지 이탈하진 않았을지라도 소위 중도파라고 불리는 이들의 합류는 쉽게 가능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러한 믿음이 없었기에 그들은 새누리당으로부터는 이탈했음에도 야권 지지를 유보하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동안 그들은 야권이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믿지 못했기에 눈에 보이는 이권을 약속하는 새누리당 등을 지지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거듭 그런 선택을 내린 것이 세월호 참사 같은 사건이 가능한 나라를 만들어낸 상황과 무관하지 않음을 직감적으로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야권이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불신하는 중이다.
▲ 세월호 참사로 진도 지역 지방선거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은 23일 오전 전남 진도군 진도읍에서 선거운동원들이 음악을 틀거나 확성기를 이용하지 않고 비교적 조용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야권이 할 일은 자신들이 유권자들이 간절히 바라는 그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스스로 성찰하는 일이다. 그리고 만일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한다면, 도대체 왜 유권자들은 그것을 믿지 못하는지를 따져 묻는 것이다. 가치의 우선 순위, 그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 정책과 정부 조직에 대한 개혁방안, 그 정책실현과 개혁을 순차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설계도, 각각의 과정에 대한 적합한 홍보 등 모든 것이 고민되어야 할 상황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러한 숙고의 과정 없이 누군가처럼 “국민들에게 화가 난다”라는 내심만을 품고 있다면, 세월호 참사가 아닌 그 어떤 정권의 실책이 있더라도 압도적 지지를 얻어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설령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거두더라도 2010년의 승리 이후 2012년에 패배했듯 정권 교체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정부와 체제의 부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 속에서도 ‘바람’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는 야권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야당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다시 묻게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