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빅데이터 분석가다. 그는 7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좋은정책포럼과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실 주최로 열린 세월호 참사와 한국 사회, 선 자리와 갈 길> 토론회에서 “새누리당의 경우 부적절한 처신으로 10만여건의 버즈량을 기록한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6천여건에 불과했다”면서 야당의 존재감이 전혀 없었음을 지적했다. 유 대표는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정치의 역할이 없다면, 정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를 묻게 된다”라고 비판했다. <미디어스>는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를 직접 만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우리의 정치적 대처에 대한 고민을 들어 보았다.

미디어스(이하 ‘미’):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측에도 억울한 일은 있을 것 같다. 민주당 시절부터 흔히 야권에서 하는 얘기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자신들이 일을 열심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공정한 언론지형에서 반영되지 못하고 지지로 연결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유승찬(이하 ‘유’): 정치는 어떤 일을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떤 일을 했는데 그걸 뭐라고 또 어떻게 설명하는지도 중요하다. 가령 새정치민주연합의 ‘을지로 위원회’를 보자. 이 위원회는 합당 이전 민주당 이전부터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는데 국민이 잘 모른다. 분명히 열심히 하는 의원들이 있다. 을지로 위원회의 어떤 의원은 이미 백 개 정도 되는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그런 정도 일을 하고 나서 만족하면 되는 자리가 아니다. 문제를 백 개를 해결해도 천 개 만 개가 남아 있다. 그 국회의원이 어떤 종류의 문제를 백 개를 해결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그걸 알고, 그 문제제기에 공감하고, 상황을 공유해야 여론이 형성된다. 그래야 문화가 바뀌고 천 개 만 개의 문제를 해결하자고 압박할 수 있다.
그런데 세상이 너무 복잡해지면서, 야권 정치인들의 뚜렷한 지향이 사라졌다는 게 문제다. 2011년 3월경부터 몇 달 동안 민주당이 새누리당에 비해 지지율이 앞선 시기가 있었다. 무상급식이란 이슈가 살아 있었던 시대다. 한국 사회가 복지국가로 이행할 수 있을 거란 기대, 설렘이 있었다. 정치는 그런 기대와 설렘을 줘야 한다.
야권, '증세없는 복지'가 문제였다
: 왜 민주당은 그런 기조를 이어가지 못했을까.
: 언제부터 하강했는지 아는가. “증세없는 복지” 담론을 내세웠을 때부터다. 이건 일종의 자기모순이다. 일단 사람들이 안 믿을뿐더러 이렇게 해선 새누리당과 차별화가 안 된다. 새누리당도 그런 정책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선택형 복지, 맞춤형 복지 등, 훨씬 그럴듯해 보이는 용어를 들고 나왔다. 최근 일어난 기초연금 정책의 후퇴 문제도 결국엔 세수 부족의 문제다. 야권이 증세를 내세웠으면 패배했을 거라고 말하곤 한다. 그렇더라도 증세를 전면으로 내세운 이후의 패배는 의미있는 패배였을 거다.
: 만약 당시에 졌다고 해도 박근혜 정부의 ‘증세없는 복지’ 공약이 비현실적임을 깨달은 이후엔 반전이 가능했을 거란 얘기인가.
: 그러하다. 증세는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공동체 윤리의식을 환기하는 차원이 있다. 최근 드블라지오라는 민주당 후보가 뉴욕시장 선거에서 증세를 내세워 수십 년 만에 당선되었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양극화를 없애자고 주장하면서 이룬 성과다. 복지정책을 ‘사탕’으로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증세라는 감수할 고통으로 설명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증세가 단지 고통에 그치게 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 부분을 설명해 내야만 한다.
정치를 왜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가령 김대중을 생각해보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대중경제론이 있다. 정치철학이 뚜렷했다. 게다가 독재정권을 종식하고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해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을 자신에게 부여했다. 정치철학이 뚜렷하고 역사적 사명이 있는데 리더십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 현재의 정치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그런 게 없으니 국민, 유권자들이 호출해서 자신이 나왔단 식으로 말한다.
: 그런 부분이 있다. 박근혜처럼 ‘통일대박’이라도 있어야 한다. 계급, 계층, 세대의 문제를 뭐라고 지적할 것이며 그들을 어떻게 포괄할 것인지, 이 시대의 진보란 게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과 해답이 있어야 한다.
▲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정당은 전문가 그룹을 교체해야 한다
미국 민주당이나 영국 노동당을 보면 전문가 그룹을 꾸준히 교체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이 진화가 안 된다. 지금의 야권에게 부족한 것이 그런 거다. 정치인은 바뀔 때가 있어도 조언그룹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하나마나한 조언과 진단이 나온다. 야권 토론회를 가면 어떤 학자가 세대론에 반대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50대를 잡아야 한다고 한다. 누가 그걸 모르나? 그럼 그들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50대를 잡으려면 청년층을 배제해야 하는가?
이른바 베이비부머 세대, 55년생부터 63년생 유권자가 740만명이다. 어마어마한 숫자다. 이들이 박근혜를 선택했다. 그런데 이들은 민주정부 10년을 만들어낸 그 사람들이기도 하다. 김대중과 노무현을 선택했던 이들이 왜 박근혜로 갔느냐, 그 부분을 설명해야 한다. 바로 그 앞 세대를 보면, 50년에서 55년생들이다. 이 세대들의 대학진학률은 10% 이하였다. 그래서 학력콤플렉스를 가지고 자녀에게 투자를 했다. 자녀들은 대체로 대학에 보냈고 본인들은 이제 집 한 채를 가지고 있다. 청년층의 높은 대학진학률, 그리고 하우스푸어 문제 등이 이 50년에서 63년생까지의 세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적 가치를 경험한 세대다. 하지만 기존 민주화 운동 진영, 소위 486세대가 주동이 되어 만들어낸 대결적 민주주의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들이 원하는 건 비전이 있는 나라다. 이들은 20대가 발언한다고 서운해 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60대 후반이라면 모를까, 청년층의 문제를 다 자기 자녀 문제라고 생각하고, 같이 대책을 마련할 의지가 있는 이들이다.
이들이 보기엔 정치인들은 여나 야나 모두 기득권세력이다. 그런데 야권은 같은 기득권자인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이들이다. 지지하고 싶은 마음이 들 리가 없다. 이들은 ‘유능’에 대단히 집착한다. 안철수가 잠깐 먹혔던 것도 안철수는 유능해 보인다는 인상이 있었기 떄문이다. 그런데 안철수도 합류한 새정치민주연합은 무능하다는 도식을 깨는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죄인'이란 느낌에 정치권이 반응해야
: 어떤 지점에서 실패했다고 보는가.
: 가령 기초연금법안 통과 문제를 봐도 안철수 의원의 발언이 이해가 안 된다. 나쁜 법안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통과를 시켜준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 나도 납득이 안 되는데 지지자들은 납득을 하겠는가. 현재의 기초연금법안 개정안은 국민연금 납부자들에게 불공정한 법안이다. 노년층을 달래기 위해 4-50대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된다. 이런 상황을 보면 쟁점에 대한 안철수의 설득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세월호 이후 기성세대는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운다. 나도 기사 하나를 보고 울었다. 학부모 한명이 단원고 다니는 딸에게 사고 이후 며칠 후 참다 참다 “지인 중에 죽은 이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딸이 아무 말 없이 방에 들어가 일주일 넘게 부모에게 아무말도 안 하다가 희생자 가운데 선생님과 후배, 친구 동생이 있는데 유해가 돌아오면 시신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로 시신을 지키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 슬픔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분노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을 잊지 않고 이들과 함께 진심을 갖고 문제해결에 나서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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