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후 9년 뒤인 1954년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고지라가, 60년 후 할리우드에 의해 <고질라>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되었다. 1998년에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고질라를 단순히 ‘거대한 파충류’로 묘사해서 수많은 고지라 팬들에게 원성을 산 바 있는지라, 이번에는 단순히 덩치 큰 파충류로 묘사하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일본 원작 고지라에 다가서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이번에 리메이크된 <고질라>는 제임스 러브록이 주창한 ‘가이아 이론’에 충실하다. 가이아 이론은 지구가 자정 능력이 있다고 믿는 가설로, 지구에 위해를 주는 세력이 나타났을 때에는 지구가 이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 스스로의 힘으로 정화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곤충 혹은 갑각류 같은 괴물 ‘무토’는 인간이 초래한 재앙의 은유다.
무토는 이런 인간의 자연 파괴적인 행동이 낳은 산물이다. 괴물 무토가 방사능을 먹고 산다는 영화 속 설정은, 원자력발전이 일상화된 오늘날에 얼마든지 인간에게 위협을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은유가 아닐 수 없다. 영화 속에서 무토가 방사능 물질을 질겅질겅 씹어대는 모습을 보라.
핵에 대한 공포로 인해 일본에서 원작 고지라가 탄생되었다면, 이번 할리우드 리메이크 영화에서는 방사능을 먹고 사는 괴물 무토, 혹은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일본 핵발전소 붕괴와 같은 설정으로 핵이 더 이상 안전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에게 엄청난 위해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야누스적 존재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자랑하는 최첨단 무기로 무토를 요격하면 될 게 아니겠느냐고 생각하겠지만 무토는 생각처럼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무토는 전자기기를 무력화하는 EMP와도 같은 존재다. 미사일로 무토를 요격하려 해도, 랩터 같은 첨단 전투기로 사살하려고 해도 무토가 마시일이나 랩터를 무력화하면 그만이다. 무토가 도시를 습격할 때 인간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이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괴물 무토를 정화하기 위한 지구의 정화작용이 고질라로 해석이 가능한 건 가이아 이론을 토대로 바라볼 때 가능한 일이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